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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Mar 08. 2024

디자인은 감각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

디자인이 어려운 이유는 논리와 감각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하기 때문 아닐까. 논리만 강조해도 매력이 떨어지고, 감각만 내세워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둘 중 더 중요한 걸 굳이 하나만 뽑으라면 3:7의 비중으로 감각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실 논리는 어느 정도의 근거만 있으면 어떻게든 꿰어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의 수준을 바로 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논리는 할수록 쌓이지만 감각은 잴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매번 갱신해야만 효력이 생긴다.

이 건 '뛰어난 디자인'이다라고 하는 디자인을 보면  논리는 기본이고 대체로 감각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중간 수준의 디자인은 논리만으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지만,  우리가 아는 최고 수준의 디자인까지 갈 수는 없다. 감각의 수준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압도적인 최상위 감각까지의 수준이 아닌 나같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두려운 말은 이게 아닐까. ‘의미는 알겠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요’라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왔던 논리가 와장창 무너지고 한동안 멍해진다. 의미나 설명은 얼마든지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감각의 주파수가 어긋날 경우는 정말 난감하다. 감각이라는 건 서로의 느낌과 호흡 같은 거라 저쪽에서 딱 짚어 말하기도 내 쪽에서 설명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사람의 취향에 따라 산업과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다르기까지 하다.


​ 의미는 알겠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요


‘눈에 안 들어 오는‘ 이유를 끝내 밝히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뿌연 안갯속에서 길을 헤맬 가능성이 무척 크다. 이 럴땐 '디자인은 결국 감각이 전부인가?'라고 생각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첫 번째는 시간을 들여 새로운 디자인안들로 이런저런 감각과 표현법들을 나열해 보여줄 수밖에 없다. 상대와 맞출 수 있는 주파수 라인의 개수와 범위를 넓혀 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렇게라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주파수를 찾는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한 가닥 주파수를 기준 삼아  따라가다 보면 딱 맞는 주파수와 찾을 가능성도 커진다.

두 번째는 내 디자인이 이렇게 무수한 감각의 주파수가 일렁이는 망망대해 앞에 놓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요 의사 결정권자의 취향과 성향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즐겨 쓰는 브랜드나 스타일을 예측할 수 있는 소품, 기호를 알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한 감각의 주파수를 탐색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다. 특히나 브랜드 프로젝트의 경우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분들의 뉴스 기사나 관련 영상들을 보며 숨은 감각 코드를 찾아내야 한다. 인터뷰할 기회가 있다면 감각에 대한 질문을 해서 최대한 많은 힌트를 얻는 것도 좋다.

세 번째는 내 디자인 감각을 올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좋은 감각을 판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가능하다. 감각을 직접 표현하지는 못해도 디렉팅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평소 감각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좋은 디자인을 많이 보고 비평해 보고 선택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내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는 걸 표현해 줄 디자이너를 찾고 확보해 놓는 일이다. 딱 맞는 감각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함께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 감각까지도 AI가 대체할 날이 머지않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세한 감각을 잡아내고 표현해 내는 아이디어를 아직까지 써먹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디자인 감각에 대해 많이 강조했지만, 사실 감성과 이성이 칼처럼 나눠지고 논리와 감각이 완전히 분리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디자인적인 접근과 사고의 장점 또한 이 둘을 오갈 수 있는데 있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과 디테일한 차이를 만드는 건 '감각'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너무 논리와 근거에만 잠식되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감각이라는 신선한 공기로 머리를 환기 시킬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감각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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