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워치 사용자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애플 워치의 광고를 보고 있으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에 나오는 광고는 언제 어디서나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심전도 측정은 물론 환자에게는 중요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소구 할 수 있는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갤럭시 워치도 심전도 되나고? 업데이트를 통해 되도록 바뀌었다. 혈압도 측정이 된다. 혈압 측정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혈압 측정계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수치를 보정해줘야 하지만 말이다.
갤럭시 워치가 나에게 가장 많이 알려주는 사항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문자 수신과 “일어날 때가 되었습니다”란 메시지다.
솔직히 말해 갤럭시 워치는 카피캣이다. 애플 워치가 심전도를 도입하면 갤럭시 워치도 따라가는 식이다. 그럼에도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 갤럭시폰 유저로서는 갤럭시 워치가 나름대로 쓸모 있는 스마트기기라고 생각한다.
애플 워치는 손 씻을 때 시간도 재준다는데, 그런 기능이 없어서 아쉬울 것은 솔직히 없다. 스마트워치가 없으면 손도 제대로 못 씻는단 말인가.
스마트워치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과연 이것이 ‘스마트’한 기능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모션 센서를 통해서 40가지 이상의 운동 종목을 인지한다는데 나는 평소에 걷기 밖에는 하지 않는다. 걸을 때마다 운동 시간을 재주는 갤럭시 워치가 나름 기특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수영도, 사이클도 하지 않는다.
수중에서 온갖 화려한 동작을 하는 애플 워치 사용자를 보여주는 광고는 볼 때만 괜찮을 뿐이지 실제로 사용할 때에는 손을 씻을 때 물이 안 들어간다는 정도의 메시지 이상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는 필요에 의해서 사는 물건이라기보다는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사치품이다.
수십만 원짜리 스마트워치의 기능을 100% 다 사용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심 100미터에서도 작동한다는 다이버 전용 전자시계를 차고 다녔던 사람도 불과 1미터도 잠수할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마트워치가 사치품이라는 전제를 두고 말하자면 디자인은 어떤가. 고무로 된 스트랩이 거슬리지는 않나. 가죽 스트랩으로 바꿔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갤럭시 워치나 애플 워치나 심미안적인 관점에서는 똑같이 동그랗게 생긴 멋없는 시계일 뿐이다. 30~40대 직장인들이 차고 다니는 묵직한 시계가 제공해주는 중후함은 없다.
스마트워치를 찬 사람은 높은 확률로 IT 계열에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스마트워치야말로 새로운 롤렉스다. 공대 오빠들의 체크무늬 셔츠처럼 스마트워치도 그들을 상징하는 무미건조한 아이템이다.
정작 IT 계열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나는 어째서 갤럭시 워치를 차게 된 것일까. 집에서 독립하는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주셨다. 집에 가끔 놀러 오는 처남의 손목을 장식하고 있는 애플 워치가 그럴듯해 보이셨나.
본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없었다. 갤럭시 워치가 생긴 후로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시계를 차고 다닌다. 한동안 불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 수십만 원짜리 물건을 단지 문자 알림용으로만 쓴다 하더라도 꾸준히 차고 다닌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남자와 차지 않는 남자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간극 같은 것이 있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남자는 자신의 액세서리에 신경을 쓰는 남자다. 그는 소비에 있어서 기호가 확실하다. 마치 항상 마시는 커피 종류가 있는 것이나 자주 듣는 음악 장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계는 패션이다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패션이 되기에는 스마트워치의 이질적인 존재감에 어울리는 옷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체크무늬 셔츠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스마트워치는 소매에 가려져 있을 때가 가장 멋스럽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갤럭시 워치 액티브 2는 초침 소리를 구현했기 때문에 조용한 환경에서 귀를 기울여 들으면 아날로그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내게 갤럭시 워치는 진동으로만 존재감을 표현한다. 짧게 두 번 진동하면 문자나 텔레그램 메시지고, 길게 한번 진동하면 카카오톡 메시지다.
갤럭시 워치의 소리를 들을 때는 아침에 자명종이 울릴 때다. 스마트워치로 전화를 받고 거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무전기처럼 집안에서 장난을 칠 때를 제외하고는 굳이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 스마트 워치만으로 통화를 할 일은 없다.
갤럭시 버즈나 에어팟을 산 사람은 또 다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세계는 스마트기기의 자장 속에서만 소리를 내는 공간이다. 무선 이어폰 없이 스마트워치를 통해서 통화를 하는 건 지나치게 프라이버시에 관대한 사람뿐일 것이다.
나는 스마트워치 예찬론자도 무용론자도 아니다. 다만 스마트워치의 필요성에는 의문이 든다. 명품 시계가 없다면 손목에 차고 다녀도 무방할 정도로 비싼 장난감이긴 하다.
스마트워치란 존재 자체가 시대에 약간 뒤처진 듯한 느낌이 든다. 애플 워치가 처음 나왔을 때는 트렌드에 밝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기분이다.
그만큼 스마트워치가 우리 사회 속에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스마트 글래스처럼 사생활을 위협하는 우스꽝스러운 기기보다는 훨씬 더 빠르게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빅스비를 부르기 위해서 스마트워치에 중얼대는 것은 80년대 미국 드라마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스마트워치도 얼마든지 우스꽝스러워질 여지가 있는 기기다.
앞으로 완전 자율 주행차가 상용화된다면 정말로 스마트워치를 통해서 음성으로 자동차를 불러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 현재의 세계에서 스마트워치는 시계 이상의 의미를 얻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설령 그 업데이트가 소비자에게는 시계 하나 사용하는 데 이렇게 소프트웨어를 자주 업데이트해야 하는 거야라는 불평으로 돌아오더라도 말이다. 스마트워치는 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느새 손목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기계다.
오늘은 혈압과 심전도를 재주고, 내일은 갑작스러운 낙상사고가 일어날 때 구급차를 불러준다. 애플 생태계 안에 있다면 마스크를 쓰고도 애플 기기의 잠금을 해제하는 방법으로 스마트워치가 사용되기도 한다.
스마트워치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제품이 아니다. 특정한 생태계 영역 내에서만 의미를 갖는 제품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폰을 갖느냐 아니면 갤럭시폰을 갖느냐에 따라 자신의 IT 운명을 점쳐보곤 한다. 어느 쪽이 더 나와 상성이 맞는지 또 가격대는 부담할만한지.
사람들의 선택 결과는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이 설명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우리나라 1위라면 애플의 시가총액은 미국 1위다. 한마디로 노는 물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갤럭시 워치 액티브 2만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또 다른 업데이트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