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대였을 때 핸드폰이 없었다. 당시에도 핸드폰은 대중화되었던 시기였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나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거나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습관은 20대가 되어서야 고쳐졌는데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면서부터다. 나는 군대에서 ‘관심사병’이었고 매일 부모님께, 정확히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리는 것이 임무였다.
매일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다보니 핸드폰이 필요했지만 손에 닿는대로 공짜폰을 쓰고는 했다. 30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시민단체에서 간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간사의 월급은 알량한 것이었지만 원하는 핸드폰을 살 정도의 돈은 있었다. 문제는 내가 핸드폰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던 나이 든 박사님의 중고 핸드폰을 대신 받아서 썼다.
갤럭시 시리즈였는데 아주 오래된 기종이어서 수시로 전원이 나가곤 했다. 상사는 아무래도 내가 오래된 핸드폰을 고장날 때까지 쓰는 것이 불편했는지 지인에게 부탁해서 아이폰5S를 얻어다 주었다. 그게 처음으로 기종을 인식하고 썼던 핸드폰으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기기이다.
핸드폰을 바꾼지 얼마 되지 않고서 나는 시민단체를 그만 두고 라이선스 잡지를 만드는 곳에 취직을 하게 됐다. 매일처럼 야근을 하고 때때로 밤샘을 하는 고단한 날들이었다. 나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여자친구를 사귀었고, 그녀와는 아무래도 잘 되질 않았다.
공짜폰만 쓰던 나에게 아이폰은 놀라운 발전이었다. 아이패드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손안에 꼭 들어오는 핸드폰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태블릿과는 달랐다. 물론 중고 핸드폰이어서 전원 버튼이 약간 잘 눌리지 않는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어엿한 애플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애플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아이폰은 묘한 녀석이다. 이후에 나는 화웨이를 거쳐 갤럭시 시리즈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아이폰의 촉감을 느낀다. 아이폰 5S는 잡스가 기획한 마지막 아이폰이며 세계 최초로 64비트 AP가 적용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스펙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나도 남들처럼 괜찮은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는 감동이 더 컸다. 그것도 공짜로.
직장도 인턴 신분에다 야근, 철야를 하는 신세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곳이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직장 중에서 사람이 제일 많았다. 내 기준으로만 많은 게 아니라 보편적인 기준으로 봐도 큰 회사였다.
나는 아이폰5S로 많은 일을 했다. 공연장을 돌아다닐 때 사진을 찍기도 했고, 인터뷰를 할 때 음성을 녹음하기도 했으며, 수시로 게임을 하고, 카톡을 날리며, 섭외 전화를 돌렸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아이폰 5S는 부족하기는 해도 2021년인 지금까지도 단순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기종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핸드폰을 바꾸는 시기가 다르겠지만 이 녀석을 그렇게 오래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대개 그런 사람이 나무위키 항목을 작성하는지도 모른다.)
아이폰이라고 하면 사진이 잘 나온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폰 5S는 A7 칩셋을 탑재하면서 다양한 카메라 촬영 기능을 넣어서 선명한 셀카를 찍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폰 후면 카메라가 아니라면 셀카를 찍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이폰 5S가 가졌던 의미를 알만한 대목이다.
더군다나 아이폰 5S는 아이폰 중 유일하게 7년 이상 기술지원을 받은 기종으로 갤럭시 시리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외국산 기술지원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제품이기도 했다. 아이폰을 주구장창 써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한국에서 아이폰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소비생활에 있어서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는 표식인 동시에, 앱등이라고 공격받을 수 있는 이중의 포지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삼엽충들의 공격을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플의 매니저와 ‘영어로 대화를 프리토킹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더라도 아이폰을 즐겁게 사용할 것이다.
이때는 몰랐다.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위험성을. 아니 중고로 팔아도 어느 정도 가격이 나오는 핸드폰을 가지게 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만취를 했고, 깨어보니 홍대 어딘가였다.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은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그리고 핸드폰이 사라져 있었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에 취한 적은 많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플을 이용해서 흔적을 찾아봤지만 회식 장소 근처에서 핸드폰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눈치 채지는 못했지만 내 한계를 다 써버렸던 모양이다. 과음을 한 것도 술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했다는 이야기였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말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야근을 하는 것도 철야를 하는 것도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에 내 핸드폰은 KT에서 단기간 빌린 핸드폰이었다. 머릿속에서 잃어버린 아이폰 5S가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나는 침대에 누웠고 2일 정도를 잔 후에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다시 직장을 가지고 핸드폰을 새로 사고 다른 사람들처럼 일을 하며 돈을 벌게 된 것은 거의 1년이 지나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수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살았고 내 손에는 여러가지 핸드폰과 태블릿이 쥐어졌다가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남들 같이 산다는 것은 뭘까. 아니, 남들만큼 산다는 건 뭘까. 아이폰 5S를 가지면 남들만큼 산다고 할 수 있을까. 테슬라를 손에 넣으면 남들만큼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산다는 건 뭔가 물건을 계속해서 산다는 말과 같다.
이 글은 일기처럼 보이지만 일기가 아니다. 내가 샀거나 얻었던 물건에 대한 기록이다. 모든 물건에는 소유주의 기억이 남아있다. 내게 아이폰 5S는 외부와의 적극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상징이었다. 아이폰을 잃어버린 날은 새 직장에 대해 가졌던 내 기대가 사라졌던 날로 기억한다. 나는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더 밝은 이야기를 하려면 새로운 기기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새 물건을 사고 있다. 내가 물건과 맺는 기억의 흐름에는 끝이 맺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이 끝없는 사는 것의 연쇄고리에서 ‘남들만큼’ 사는 사람이 될지의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