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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Feb 18. 2020

도킨슨 씨에게 쓰는 편지

우수한 인간에 대하여

오늘 트위터에 리처드 도킨슨이 트윗 하나를 남겼다. 짧은 영어로 내용을 옮기면 대강 이렇다.

"우생학을 이념적, 정치적,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별개다. 우생학은 소, 말, 돼지, 개나 꽃에게도 적용되듯,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팩트는 이념을 무시한다."

덧붙이는 말이 흥미로웠다. 팩트가 이념을 무시하다니. 본인이 가장 이념적인 말을 해놓고선.

그러니까 도킨슨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수한 소, 우수한 말, 우수한 돼지, 우수한 개, 우수한 꽃이 있는 것처럼 우수한 인간도 분명 있다. 이건 팩트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아니오 도킨슨 씨. 당신은 팩트가 아니라 이념을 얘기했고, 세상은 딱히 그걸 윤리적으로 그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수한 인간이란 당장 우리나라에도 지천에 즐비하게 널려있는 걸요. 빽빽하다 못해 미어터지는 하루 일과 안에서 일에 치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이곳에 많은 걸요.

솔직히 말하면 도킨슨 씨, 나는 그들을 존경합니다. 또 쉽진 않겠지만, 나도 맘을 독하게만 먹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죠.

그렇지만 그들에게 '우수하다'는 표창장을 내려주자는 주장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내가 내 스스로를 우수하지 않은 인간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어쩌면, 저는 그냥 이대로 인정받고 싶은 것일 수도 있구요. 아, 지금 제가 칭얼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도킨슨 씨. 무엇인가를 우수하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 그의 기준에 나를 빗대고 맞춰버리고 맙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요. 내 천성이나 성격 따위는 인류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열성인자가 돼버리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저 우수한 사람을 따라잡아야만 내가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네,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죠. 사람들이 본인이 가진 고유의 것을 하나둘씩 버려간다는 것 자체는 슬픈 일이지만... 모두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요. 쓸모 있는, 우수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요.

그렇지만 우리 그걸 쓸모 있다, 우수하다 이렇게 부르지만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이미 누가 쓸모 있는 인간인지, 누가 우수한 인간인지 다 알고 있죠. 그렇지만 우리 그들을 쓸모 있다, 우수하다고 부르지만은 말기로 합시다.

왜냐하면 세상 어딘가에서 쓸모 있는 인간 한 사람이 만들어질 때, 그와 반대되는 어떤 인간 하나는 쓸모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쓸쓸히 죽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 부지런한 사람, 착한 사람, 상승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쓸모 있는 사람, 우수한 사람은 없는 걸로 해요.

사실 저는 우수한 사람에게 "너 참 우수하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썩 무례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곤 하거든요.


네? 제가 당신을 오해하고 있다구요? 당신이 말한 "우수한 인간"은 전혀 다른 생물학적인 의미라구요?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도킨슨 씨. 세상에 있는 모든 "우수하다"는 말은 사실 다 똑같은 말이랍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도킨슨 씨, 제가 한 가지 가르쳐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우수하다"는 사실, 이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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