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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Mar 13. 2019

멋대로 쓰다 #1. 영화 <사바하> 해석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

 아래 내용은 영화의 내용과 반전, 결말 등이 아주 많이 담겨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 역시 전문적이지 않다. 주의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개봉 며칠 전 예고편을 본 뒤부터 영화 '사바하'가 끌렸다. 감독의 전작이 '검은사제들'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나는 늘 오컬트에서 오는 공포가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악마숭배 같은 것. 초자연적인 것, 미지의 것과 맞닥뜨리면서 자아내는 공포보다,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의 광기에서 더 공포를 느꼈다. '숭배'가 사람이 공포와 마주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 나도 저렇게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사바하'도 그런 종류의 대중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킬링타임용. 보고나니 그렇지는 않아보였지만.


 지금부터는 '사바하'를 내멋대로 해부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가부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스탭롤이 흐르고 가장 먼저 나오는 배우의 이름이 박정민 배우님(이하 배우님들에게는 존칭을 생략한다. 또한 작중 인물 역시 배우님들의 이름으로 대신한다.)이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흐름을 쫓는데 도움을 준다. 플롯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 중요한 것은 '이정재'라는 주어를 지우는 일이다.




 Q. <사바하>는 어떤 영화인가?


 A. <사바하>는 과거에 아버지를 죽인 적이 있었던 자가, 불멸을 꿈꾸는 아버지를 다시 한번 죽이는 이야기다.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의 화자는 왓슨 박사이지만, 그 누구도 작품의 주인공이 사설 탐정 '셜록 홈즈'라는 데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사바하의 화자는 이정재였지만, 작품의 주인공은 박정민이었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다. 며칠 전에 본 영화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박정민의 족적을 따라 사바하의 여러 장면들을 회상해보자.


 영화는 관객과 박정민이 만나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이정재라는 캐릭터를 사용한다. 이정재는 사이비를 쫓는 목사인데... 사슴동산이라는 단체를 만났고... 그 부근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도 접하게 되는데... 그 순간 관객은 별안간 사건의 실체와 관련이 있어보이는 미스테리한 인물, 박정민을 만나게 된다.


 이정재의 이야기는 박정민의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드는 재료일 뿐이다. 이정재가 사슴동산이 악귀를 잡는 사천왕을 모시는 단체란 걸 알게 되고... 사슴동산의 경전을 김 풍사 = 김제석이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김제석이 어느 소년원에서 네 명의 아이를 간택했다는 사실도 알게되고... 걔네는 김제석을 모시는 사천왕의 포지션에 있다는 것도 알게되고... 그 네명 중에 살아남은 놈은 박정민 하나 뿐이란 것도 알게 되고... 이렇게 박정민은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된다. 이때 관객은 박정민이 이전에 아버지를 죽인 적이 있고, 박정민과 김제석이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이다. 박정민이 사슴동산의 대리자, 유지태를 만나러 간 이후다. 관객은 박정민의 임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뱀'을 잡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 유지태가 '그 놈이 바로 뱀입니다.'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장면 바로 다음, 우리는 이재인(금화 역)이 집의 돈을 훔치고 달아나는 장면과 맞닥뜨린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재인이 '꽃뱀'이구나."




 사실 서사를 좀 진행시키면서 감독은 "이재인이 '꽃뱀'이다"라는 은유를 계속 삽입해왔다. 랜덤 채팅에서 모르는 이성에게 나를 데리고 가달라며 쇄골과 어깨를 노출한 사진을 찍어보내는 장면. 집의 돈을 훔치고 달아나는 장면. 이재인과 관련된 몇몇 장면들, 이재인은 하필 여성 캐릭터였다는 사실, 그리고 작품이 적그리스도를 이르는 단어가 '뱀'이었다는 사실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을 '꽃뱀'으로 돌려놓는다.


 나는 저 장면을 보자마자 감독이 미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영화의 악역은 '꽃뱀'이란 말이야? 그러나 영화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시 이정재로 돌아온다. 이정재는 서사를 진행시키는 핵심 윤활유다. 이정재는 기어이 네충텐파를 찾아가 김제석에 대해 묻는다. 이것이 살면 저것이 살고 이것이 죽으면 저것이 죽는다. 그 인연생기의 그물 속에서, 김제석의 적그리스도는 1999년(사실 년도는 기억 안난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럼 김제석이 해야할 일은? 하나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는 1999년생 전원을 몰살시키자. 그럼 난 불멸을 손에 넣게 될거야!


 이제 김제석은 누구인가? 박정민의 입장에서, 김제석은 등불도 미륵도 뭣도 아닌 그저 불멸을 꿈꾸는 아버지로 전락한다. "아버지가 '불멸'을 꿈꾼다"는 주제는 제법 문학적으로 들린다. 인간 문명 깊숙이 뿌리박힌 가부장적 문화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그 생존을 꾀한다는 뜻일까? "'불멸'을 꿈꾸는 것은 '아버지'다"라고 얘기하는 감독이 정말로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일까?


 감독은 그 핵심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툭 던져준다. 김제석의 추악한 진실이 밝혀진 바로 그 다음 장면. 김제석은 차를 타고 영월로 향하다가 행군 중인 군인들과 맞닥뜨린다. 도로 통제를 하던 간부가 김제석의 차를 세운다. 김제석은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거수 경례를 한다. 통제 간부도 자세를 고쳐잡고 김제석에게 거수경례한다. 마치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예우하듯. 김제석은 씨익 웃는다.


 감독의 세계관에서 계급 사회와 가부장제는 이렇게 일치된다. 군대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명백히 존재하는 조직이며, 권력의 일방향적인 흐름으로써 조직이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제석이 군인에게 거수경례를 받는 장면은 은유가 된다. 계급 그 자체로 상징되는 '군대'와 박정민의 아버지 김제석이, 아니 어쩌면 모든 종교의 지도자이자 주신으로 상징되는 '아버지'가, 아니 어쩌면 현대 문화의 근원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그 이름 모를 '아버지'가 하나가 되는 지점이다.


 '아버지'가 현대 문화의 근원에 존재한다고? 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짧은 우화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죽었다'는 대사는 마치 종교를 비롯한 문명의 가부장성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갔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을 죽이는 군인과 김제석이 만난 것도 아마 그 메타포의 일부겠지. 확대해석인가? 뭐 그럴수도.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를 소비하는 지금 우리들도, 아기 예수만을 기억하지 그를 위해 죽어간 아기들을 기억하지는 않지 않은가?


 또한, 바로 그 부근부터 영화의 서사는 '김제석이 '악'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명백하게 밝히고 넘어가자. 영화가 얘기하는 '악'은 무엇이었나? 나쁜 놈이 악한가? '악'은 있는가? '선'은 있는가? 이정재의 등장 씬에서부터 영화는 답을 얘기한다. "가짜가 '악'이다." 김제석으로 돌아오자. 김제석은 '악'이다. '악'은 가짜다. 김제석은 '아버지'이며, '계급'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 가능한가?




 "가부장제는 가짜를 조장하는 '악'이다."




 이렇게 유지태에 의해 이재인이 '꽃뱀'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은 가짜에 의해 가려져있던 눈을 뜨게 된다. '뱀'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쪽은 바로 김제석이었다. 그런 김제석을 처단하는 역할은, 우리의 주인공 박정민이 맡게 된다. 왜? 박정민은 캐릭터들 중 유일하게, 이전에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떠오르지 않는가? 박정민의 어머니로 상징되었던 인물, 김제석에게서 박정민이 지켜야하는 누군가, '아버지'의 아치 에너미, 적그리스도이자 진정한 등불, '그것', 바로 이재인의 쌍둥이다.


 이재인의 쌍둥이에 대한 얘기는 더 길게 하지 않겠다. '아버지'의 적은 '어머니'인가? '아버지'는 가짜고 '어머니'가 진짜인가? '어머니'는 무엇인가? 여러가지 의문점이 많지만, 우린 이 모두를 감독의 부덕의 소치라 생각하자. 애초부터 아버지의 적이 어머니라는 구도 자체가 한참 낡은 생각이다. 영화와 감독의 한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영화는 박정민이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한번 더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이다.


 박정민의 마지막 대사 '추워요'에 대한 의미를 곱씹으며 글을 줄일까 한다. 유지태가 코끼리의 눈동자에 대한 우화를 들려주는 장면이다. 이른바 '문화'는 우리에게 자꾸만 정의를 내리라고 종용한다. "사랑은 무엇이니? 남성은 무엇이고, 여성은 무엇이니? 국가는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이니?" 우리는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충고한 점을 떠올려야 한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자꾸만 미사여구를 붙이려 드는 자들은, 코끼리의 눈동자에 의미를 붙이려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 진짜는 여기 보이는 그대로의 코끼리이다. 춥고 어두컴컴한 곳에 가두어져 있는, 불쌍한 코끼리 한마리.




 Q. 코끼리의 눈동자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니?


 A. 그냥, 추워보여.




 박정민의 죽음은 거창한 의미를 갖고있을 거야.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무거운 책임을 진 그런 장면이겠지?




 A. ...추워요.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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