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애 실패, 그러나 구직 성공
분명 문제의 그 후배님을 만나기 전 까지만 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나는 괜찮게 잘 살고 있던 내 삶을 외로움으로 가득 차게 만든(본인은 전혀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소개팅 남에 대해 매우 심통이 나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좋은 거절 시나리오를 서른여덟 개 쯔음 미리 짜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두부 과자라는 것에 딱히 끌리지 않았기도 하고.
그런데 그 후배라는 사람에게서 장문의 연락이 왔다. 뭐야...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이잖아...? 사업 내용도 꽤 구체적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약간 마음이 녹아내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일주일 후, 나는 소개팅남이 아닌 그의 후배님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소개팅 남은 아주 비범한 사람이었고, 그의 후배님 또한 같은 사람이기에 서로가 친구 사이라는 것을.
나는 면접 당일 아침부터 옷장 문을 열고 최대한 취직 생각이 없어 보이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취직 생각 없어 보여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신중하게 코디를 했다. 친구들은 흡사 어둠의 조직 입사를 노리는 것 같은 나의 착장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머릿속으로 거절 시나리오 모음집을 다시 들춰보며 비장한 마음으로 후배님을 마주했다.
그런데 이 후배님도 범상치가 않은 사람이었다. 후배님은 차갑기 그지없는 나를 앞에 앉혀 두고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있다니. 대체 왜? 어떻게? 갑자기 이 두부 과자라는 것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분명한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건 범죄라 할 만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건 재밌는 일이다.'
설명을 듣던 중 직감이 왔다. 그래서 하고 싶었다. 아직 형태가 확실하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그것은 다시 말해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두부 과자에 꽂히고 나자 어느덧 소개팅남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고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함과 경외감이 샘솟았다. 그래요, 당신이 옳았습니다. 난 연애보다 두부 과자 디자인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러나 당장 나를 뽑아 달라고 하기엔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정리된 포트폴리오도 없었고, 혼자 끼적댔던 작업들은 너무 다양한 분야로 뻗어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목적 달성을 위해 고 스트레잇 직진만을 고수하는 나는 간절함을 담아 최대한 모든 것을 끌어 모았다. 저, 영상 쪽 일도 가능합니다. 소소한 어필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면접을 보던 날, 나는 자리를 파하며 꼭 나를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덤덤하게 말하고 나왔지만 밤마다 유튜브에서 타로 카드 영상을 틀어 놓고 내 운명을 점쳤다. 사건이 해결되면서 돈이 들어온다는데, 그럼 일하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좋겠다. 진짜, 제발요!
무교인의 대상이 없는 기도도 간절하기만 하면 통하는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님에게서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저 할게요. 일 할게요! 망설임 없이 바로 답장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알고 있는 친구는 내게 '너 정말 두부 과자 만들 거야?' 하고 물어왔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여기서라면 정말 재밌게,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개팅을 통해 취직을 했다. 시간을 거슬러 한 달 전의 나에게로 날아가 일이 이렇게 될 거라 설명한다면 분명 과거의 나는 절대 그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소설 좀 작작 쓰라며 오늘의 나를 엎어 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정말로 두부 과자를 만들고 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연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어디로 뻗어 나갈지 모르겠지만, 분명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그리고...
재밌는 일을 하다 보면 또다시 재밌는 인연이 생기지 않을까? 없음... 말고!
이렇게 약 한 달간 방황하던 내 삶은 두부 과자 사업이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며 평안을 되찾았다.
이름: B
나이: 20대 후반
직업: 프리랜서 작가 BX 디자이너
특징: 인생 재밌게 살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