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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B Dec 30. 2020

그래요, 전 얼빠예요.

Seoul tofu club 이야기 #1.

   그것도 아주 지독한.


   이미 이 전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알아챘을 테지만, 굳이 이렇게 한 번 더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대표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내 취업 동기 중 하나는 대표님이 잘생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에는 훈훈한 사람이 말을 하면 설득력이 채 50점밖에 되지 않아도 알아서 가산점을 33점 정도는 더 붙여 주는 진리의 법칙이 있다. 나는 지독한 얼빠이기 때문에 보통 37점 정도를 더 붙여 주지만. 어쨌든, 대표님의 훈훈한 외모 덕에 나는  우리의 시작이 이상한 상황(지난 글 참고) 임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의 말을 경청할 수 있었다. 훈훈한 사람은 없던 인내심도 생기게 만든다 이 말이야.


   물론 취업을 결정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각기 제 역할을 한 덕이 크다. 그러나 개 중에 하나가 얼빠라는 것을 콕 집어서, 나를 잘생긴 악마면 영혼도 팔아먹을 지독한 얼빠라 비난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얼빠 기질이란 인류 전체의 공통분모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미남을 보며 자연스레 입꼬리를 올린 일이 없는 사람만이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다고!


그치만... 그냥 악마가 아니고 열라 잘생긴 악마인 걸...!

 

  게다가 우리 대표님은 훈남인 것뿐만 아니라 달변가이기도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1:1로 대화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는 정말 자신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까지 자기 객관화를 잘하고 계시다니. 실제로 나는 대표님이 입을 여는 순간, 그대로 두부 과자의 시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원래도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이 자신이 열정을 가진 것에 대해 말을 하니 더더욱 시너지 효과가 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시큰둥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도 그렇게나 두 눈을 반짝이며 열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정말이지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 당시 대표님의 눈빛과 말투는 최강창민의 생일을 축하하던 유노윤호의 그것과 같았다. 내가 두부 과자에 대해 토를 단다면 당장이라도 왜(keep your head down)냐고 캐물을 것 같았다. 아마 대표님이 그 날 나에게 옥장판을 팔았다면 1장 정도는 구매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마도 우리 대표님은 서울 지부 최고의 영업 킹이자 다이아몬드 회원이었겠지...



물론 픽션입니다 (...대표님...아니죠?)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숨에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대표님의 그 능력, 그건 분명히 먹힐 것 같다고. 게다가 얼굴까지 훈훈하니 분명 뭘 팔던 잘 팔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는 살면서 경영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사업 운영에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사업을 할 자질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할 수는 있었다. 외주 일과 작은 사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해보며 자연스레 익혀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부모님의 영향이 더 컸다. 거기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규모가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다 망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 롤러코스터 같았던 20년 동안 내가 배운 것은, 잘 되는 사업을 하려면 좋은 아이템을 고르는 것 우선으로 그 사업체를 잘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대표님의 회사처럼 아직 제대로 된 제품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사업의 형태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업을 이끌어 나갈 대표가 어떤 사람인가 뿐이었다.


   그 점에서 대표님은 일단 합격이었다. 성실하고 솔직하지만 적당히 숨길 줄 아는 능력이 있었고, 일에 열정이 넘치지만 그것을 나에게 강제로 투영하지도 않을 만큼 배려심이 있었다. 확고한 취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으며, 아주 똑똑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묻는 것을 꺼리지도 않았고, 타인으로부터의 배움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점을 두 번째 만남 동안 모두 보여줬다. 여기에 화룡정점으로 대표님은 자신이 정말 잘 팔 자신이 있으니 같이 잘 만들어 보자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완전히 홀려 버리고 말았다.


   외모도 합격, 자질도 합격. 그럼 더 이상 고민할 거리가 뭐 있겠어? 야, 일단 끝까지 가보자. 대표님이 내 앞에서 열심히 두부 과자에 대해 설명하시는 동안,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먼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제품 잘 만들고 나면 우리 대표님을 TV 인터뷰 프로그램에 꼭 출연시켜야지. 키도 크고 훈훈한 것이 멋지게 코디해서 조명 앞에 딱 앉혀두면 아주 기 깔 날 것 같단 말이야. 아 어떡하지~ 유튜브에 클립 뜨면 조회수도 터질 것 같은데~ 완전 대박 나는 거 아니야? 하... 진짜... 진짜 너무너무 재밌겠잖아?

 

  "저희 꼭 성공해요, 대표님."

   "네? 아, 네! 그럼요!"

 

  성공해서 대표님은 꼭 TV에 나가야 해요. 꼭.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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