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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B Mar 03. 2021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seoul tofu club #3. 스타트업에 딱 맞는 인재 잇츠미

너무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마.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이것저것 관심이 많던 나를 늘 걱정했다.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하기보다는 하나에 집중 하라며 늘 나를 다그쳤다. 그 당시만 해도 하나만 죽어라 파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었으니까. 부모님은 당신의 딸이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자라, 혹여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부모님의 우려처럼 잡식으로 자라났다. 본래 타고 난 나의 기질이 그런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게 다 편식 못하게 가르쳐서 그래. 음식을 안 가리고 다 잘 먹으니까 배움도 가리지 않는 거라고.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먹었고, 배움 또한 그랬다. 일단 입에 집어넣고 맛있으면 삼키고 아니어도 삼켰다. 다시 손을 뻗지 않더라도 일단 삼켜야지. 이 아까운 걸 어디다 버려, 떽! 일단 삼키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니까? 이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출처가 다양한 두둑한 지방을 아랫배에 품은 잡식 어른이 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부모님의 말이 반 정도는 맞았다. 취직의 문턱에 서고 나니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었다. 일단 할 줄 아는 건 많으니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특정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 타이틀을 달고 아침 방송의 패널로 살아가는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보통 그런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는 스타가 되는 건데... 난 스타(부자)가 되고 싶은데 어떡하지!


   그래서 취업 시장에 떠밀려 나가기 직전 즈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하나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했다. 그래, 종합 예-술-인-의 최고 정점에 서 보자. 그러나 이 말에도 함정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무엇을 하든지 '종합' 따위의 말을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종합 분식, 종합 선물 세트, 종합... 종합적으로 잘생긴 남자... 애초에 스페셜리스트는 나를 위한 타이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 주어지는 합격 목걸이



   

진짜 망해버렸네...


   두 번째 면접 전날, 대표님의 카톡을 받고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가 있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보여줄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면서 너무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이냐고? 그게 말이죠...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디자인 학부를 지원해 들어가서 영화/영상 디자인을 전공했다. 말이 디자인이지 실상은 영화과의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어서 나는 영화 연출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했었다. 실제로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러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배우겠다고 훌쩍 떠난 프랑스에서는 갑자기 아트 전공을 하겠다고 설쳐대며 페인팅, 조각, 사진, 판화 등 여러 가지에 대해 공부를 했고, 결과적으로는 애니메이션 판화 그리고 사진 작업을 주로 하여 졸업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전공이자 직업으로는 만화 창작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마추어 시절까지 합하면 근 10년을 넘게 해왔으니 말이다. 근데 지금은... 독립 출판물 제작자로 살고 있네?


   어떻게 살아온 거야 나는... 이렇게 쭉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고 나니 대체 난 어떻게 살아왔던 것인가 숙연함과 약간의 경외감이 생겨났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여주냐는 것이었다. 전부 펼쳐놓고 보여주자니 이건 뭐 백과사전 펼쳐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바로 이런 고민이야 말로 스타트업의 최고의 인재상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N잡러야 말로 스타트업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열정이라는 기름이 묻지 않은 순백의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외장하드를 뒤지며 머리를 쥐어 싸맬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여줘도 되나? 아 이건 좀... 그럼 이건 되나? 아... 이것도 좀...


   그 고민의 끝은 합격이라는 소중하고 위대한 결실이 되었지만, 사실 대표님이 나를 뽑은 이유는 내가 고른 작업물의 퀄리티나 다양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N잡러로 살며 다져진 <일단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가리 테스커력>과 재밌기만 하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노빠꾸 킵 고잉력>, 그리고 아가리 커리어를 마구 만들어 내는 <입만 벌리면 허풍이 자동으로 나와력>, 이 삼박자로 인해 뽑힌 게 아닌가 싶다. 왜냐고? 그것이 바로 스타트업에서 사랑하는 인재상이니까.


스타트업 인재 3 자매 (특: 전부 내 이야기)


   나는 불과 3개월 전 까지만 해도 크고 경직된 조직 안에서도 잘 순응하며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거기 당신... 왜 코웃음을 치시죠? 그래요. 저도 안다고요. 난 스타트업에 정말 찰떡같이 달라붙는 이 시대의 연어라는 것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요! 노동을 사랑하는 스타트업의 초대 멤버로 살아가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저의 과거가 만들어 낸 필연이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이 회사에 꽂아 준 소개팅남도 내가 스타트업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던데... 아 물론 맞긴 하는데! 날 어떻게 그렇게 잘 파악한 거지? 헤드 헌터야 뭐야~! 하여튼 간에 짱 웃긴 사람이야 진짜~! 츠암나~!


   어찌 되었든 간에... 요즘은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더욱 빡세게 노동을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원래도 노동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딱 맞는 곳에 들어왔으니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열심히 헤엄은 쳐봐야지. 대표님, 저는 꼭 서울 두부 클럽을 성공시켜 초대 멤버로 나날이 칭송받으며, 성과급으로 포르쉐 타이칸 4S를 뽑아 카푸어의 삶... 흠흠 아니지... 차를 뽑고 나서 서울에 작은 집도 하나 마련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위해 저의 영혼을 갈아 회사에 바칠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준비 된 인재 입니다! 이상, 저의 포트폴리오 소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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