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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문 Feb 23. 2023

복직을 했습니다

다시 뉴스 PD로 돌아왔습니다

첫째와 정월대보름 달에 소원을 함께 빌었습니다. 사실 그날이 정월대보름인지도 몰랐습니다. 주말이었고 하루종일 집에서 4살인 큰아이와 이제 5개월 된 둘째와 피곤에 지친 신랑과 복작복작했고, 저녁을 먹이고 찬 바람을 쐬이고 싶어 황급히 얼마 차지 않은 음식쓰레기통을 가지고 나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때 구슬 같은 첫째가 “엄마 나도 같이 나가고 싶어요”라는 말에 내복 위에 점퍼만 입혀서 손을 잡고 나갔습니다.


오후 7,8시쯤의 아파트 밖은 참 어둡고 조용했습니다. 이 시간의 밖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어두움이 무섭기도 한지 첫째는 쓰레기를 버린 내 빈 손에 안겼습니다. 꽤 무거웠지만 밤기운이 쌀쌀하기도 하고 나도 그 적막이 조금은 무섭던 차라 기꺼이 아이를 안고 함께 아파트를 걷고 들어가리라 하고 걸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외쳤습니다. “달님이다!” 안겨서 걷던 아이는 아파트 사이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정말 큰 달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밝은 데로 가서 달을 보려고 자리을 옮겼는데 그새 아파트 뒤로 달이 가려서 보이지 않아 한참 하늘의 달을 찾아 이리저리 아파트 단지를 걸었습니다.


달은 우리가 나온 아파트 동의 현관 앞에서 바로 보였습니다. 아주 크고 아주 노랗고 예뻤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 ‘안녕 달님’의 달님 같았습니다. 달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도 그 감성에 빠져들어 한참을 아이를 안고 밤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가 달님을 구해줬어요!”


아파트 사이로 숨은 달을 찾아가는 여정을 아이는 달을 구해줬다고 말했습니다. 참 아이가 기특하고 3살의 아이가 말을 요목조목하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는구나 참 대견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만 온전히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서만 살았던 스스로에게 번뜩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20대부터 경력으로 뉴스 pd로, 또 교사로 두세 가지의 경력을 정처 없이 살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엄마로만 살아왔습니다. 따뜻한 가정이 감사했지만 답답했고 더 큰 세상에 나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름달을 나의 아이와 보고 소원을 비는데 내 마음속의 진심을 깨달았습니다.


나도 한 인간으로 오롯이 세상에 서고 싶고, 내 아이도 큰 세계관을 가진 엄마의 아이들로 키워야겠다는 마음. 전업주부로서 행복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멋진 엄마들도 많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우리들을 키워서 늘 존경하지만, 나는 살림도 젬병이고 늘 무언가 다른 자극과 내 마음대로의 몇 시간 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조금 부족한 엄마이고 사회에서도 그런 사람일 테지만 일단 부딪쳐 봐야겠다는 마음.


내 마음대로의 생활비를 모아 아이들과 마음껏 여행도 다니고, 나를 닮아 카페 가는 걸 좋아하는 큰 아이와 어디든 다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엄마가 사회로 나가서 온전히 나 스스로가 되고, 우리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친구로 더 많이 웃으며 행복하게 살자고.


그리고 그날 고민하던 자리에 지원을 했고, 그 이틀 후 면접을 봤고, 다시 뉴스 pd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달님과 아이와 바람들이 모였고, 다시 출근을 했고, 첫 데뷔부터 방송사고를 내서 사고 게시판에 경위서를 썼습니다. 그래도 힘을 내서 그날의 간절함을 떠올려야겠지요.


다시 삶의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 흔들리는 나를 위해, 바다 위의 부표 같은 내 목표인 구슬 같은 아들들과 바깥사람들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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