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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바다 Apr 04. 2019

어느 작은 사건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16)

몇 년 전이었습니다. 동업자가 핵심 기술을 갖고 다른 나라 같은 업계로 나가면서 큰 타격을 입은 내담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척 수척해 보였지요. 엄청난 충격으로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허무함과 박탈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타격만큼이나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아픔이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실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는 그렇게 세상에 항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내담자에게 루쉰의 자적적 단편, 〈어느 작은 사건〉을 권했습니다.    


인력거꾼 앞에 작아진 지식인 

당대 최고의 사상가로서 누구보다 뛰어난 지식인이라고 자신하던 루쉰, 그에게 아주 작지만 큰 울림을 준 사건이 벌어집니다. 1917년 이른 아침, 루쉰은 간신히 인력거를 잡아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루쉰이 탄 인력거와 할머니가 부딪히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천천히 넘어졌지만, 일어나지 않는 할머니를 보고 루쉰은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했죠. 보는 사람도 없는데,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루쉰은 인력거꾼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인력거꾼은 망설임 없이 인력거를 내려놓고, 할머니를 살피고, 파출소까지 데려갑니다. 그 순간 루쉰은 인력거꾼 앞에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온통 먼지투성이인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커지더니, 그가 걸어갈수록 점점 더 커졌습니다. 나중에는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커졌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나의 가죽 외투 속에 감추어진 나의 ‘왜소함’마저 들추어내려 했습니다.        -루쉰 <어느 작은 사건>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가치

내담자의 시선이 한 페이지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그려진 페이지였는데요. “나처럼 사는 누군가가 여기 있었네요.”라며 혼잣말처럼 말하시더군요. 인력거꾼은 당시 중국에서는 가진 것 없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하층민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학식과 교양을 갖췄다는 루쉰보다 큰 존재였습니다. 그의 뒷모습을 견고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정직하고, 성실한 삶이 갖는 가치이지요. 누가 보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인력거꾼의 모습에 지식인임을 자부하던 루쉰은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미처 인력거 값을 치르지 못한 루쉰은 다른 인력거를 타면서 동전 한 움큼을 경찰에게 건넵니다. 그 인력거꾼에게 주라고 말이죠.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또 한 번 반성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는 게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 전의 일은 잠시 젖혀 놓더라도 동전 한 움큼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에게 상을 준다는 건가? 내가 인력거꾼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 루쉰 <어느 작은 사건>    


수치심에까지 닿지 않도록

저를 찾아온 내담자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에 배반당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이렇게 사는 건 다 쓸모없구나.’하는 확대해석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아가 자신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수치심에까지 도달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죠. 수치심은 죄책감과 같이 특정한 행위에 관한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존재와 직결된 것이죠. 수치심이 커지면 결국에는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수치심에 발목이 잡혀 의욕과 에너지마저 잃고 말죠. 그래서 미국의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수치심을 ‘비밀스러운 살인자’라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정직한 삶, 성실한 삶이 아름답다

반듯하게 걸어가다 보면 급하게 가로질러 가는 사람보다 뒤처지기도 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도 같이 그렇게 걸어가야 할까요? 

성실한 하루하루가 층층이 쌓이고, 그 사이사이에 땀이 배어 이루어진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하고 솟아올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값지고 아름답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때로는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다른 누구의 인정도 아닌, 스스로를 인정해 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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