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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그 Dec 19. 2018

친한 사이

[직장 일기] -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기

동료처럼 언니처럼 그렇게 지내던 같은 팀 과장님이 어느 날, 팀장이 되었다.

우리 팀의 팀장 자리는 몇 번의 교체를 거쳐오다 공석인 상황이었는데

경력이 많지 않고 나이도 어린 여자 과장이 팀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알게 모르게 주변의 우려가 많았다.

평소에 곁에서 그녀를 지켜본 우리는, 잠시 동요했지만 힘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녀가 팀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소개]였다.

며칠 동안 열심히 PT자료를 만들고 팀원들을 회의실로 모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서는

자기가 왜 팀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팀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복되는 팀장의 교체와 전문가의 부재 등으로 흔들리는 팀 안에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날씬한 다리에 펜슬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에서,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났다.

초반에 세운 그녀의 야심 찬 계획들과 우리를 위한 작은 베네핏들은 하나씩 지적받고, 뭉개지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강해 보이지만 여린 속을 가진 그녀는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받는 상처들에 갉아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힘이 되어주겠노라 다짐했던 4개월 전의 우리들은 편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볼멘소리를 마구 뱉어 나고, 점심시간과 업무시간을 자유롭게 쓰기도 하고 가끔 듣는 잔소리에도 싫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한마디로 그녀를 괴롭히는 가장 큰 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잘 안다는 것은, 소통과 이해의 범주를 넓히기도 하지만 함부로 굴기와 무시하기라는 나쁜 옵션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지난 4개월간 점심시간마다 불편한 얼굴로 밥도 먹지 않고 자리에만 앉아있는 그녀를 누구 하나 진심 어린 걱정으로 챙기지 않았고, 잠시 모여 떠드는 시간에도 그녀가 먼저 일어나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누군가는 변했다고 조롱하곤 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매출 압박과 회사의 위기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받아내면서도 우리 앞에선 그저 한숨 쉬고 뚱해있는 작은 투정밖에 할 수 없었음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든든한 팀원이 되어주고 싶었고, 능력 있는 팀장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이렇게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팀 안에서도 나는 전문성을 띄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매출이나 경영진의 압박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그렇게 자위하며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함께 고민하고 걱정을 나누어주지 못했다.



지난주에 결국 그녀는 팀원 하나를 다른 팀으로 보냈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해당 팀원은 면담 내내 울고, 결국 퇴근시간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은 채 사라졌다.

경영진의 의사가 다분히 영향을 준 결정이지만 악역은 정해져 있었다.

친분이라는 족쇄를 깨고 결정을 해야만 했던 그녀는 또다시 갉아먹히겠지. 사람들은 언제나 상처 받은 사람만을 걱정하니까.

상처 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은 모두 힘들다. 그것이 개인적인 미움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 때에는 더더욱.

내일 나는 두 사람을 어떤 얼굴로 만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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