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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언니 Aug 24. 2021

에피소드 8. 가깝고도 먼 그들:상사 이야기(1st.)

ft. 첫상사와 좋은 상사

지난 2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내 위엔 소위 '상사'라는 분들이 항상 존재해 왔다.

회사에서 업무만큼 중요한 부분이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겪어온 상사 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 상사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2001년,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지만, 내 머릿속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다.

나의 첫 상사 분은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게 나를 뽑아주신 분이셨다.

별명이 '살찐 여우'셨는데..^^

조금(?) 통통한 몸에 비해, 머리가 굉장히 비상하시고, 행동을 여우같이 하시는 그런 분이시라..


이 분과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모대학 교수님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하셨다.

이 교수님이 OO분야 전문가이시니, 오늘 식사 자리를 통해 좋은 과정 하나를 만들어 보자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팀장님의 차를 타고 모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어딘가에서 모 교수님을 차에 태우셨다.


팀장님 왈~

"교수님, 저녁식사 뭘로 드실까요?"

모 교수님 왈~

"근처에 순대 괜찮게 하는 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실래요?"

"(나를 쳐다보시며) 순대 괜찮으시죠?"

나 왈~

"(별생각 없이) 저, 순대 못 먹는데...."

(약간 당황하시며) 모 교수님 왈~

"그럼 근처 삼겹살 집으로 가시죠."

결론은 삼겹살 집에 가서 삼겹살을 먹으며 얘길 나눴다.


다음 날 출근 후, 팀장님께서 날 부르셨다.

"OOO씨(나), 어제 그 자리가 OOO씨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간 자리야?

 갑자기 순대 못 먹는다는 말을 왜 해 가지고...

 교수님이 순대가 먹고 싶으셨던 거잖아~ 눈치가 없어! 눈치가!!"


헐........

24살의 나는 그냥 순대를 못 먹으니 못 먹는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게 눈치가 없는 건가? 

사회생활 '사'자도 몰랐던 나는 당시 팀장님을 조금 원망했었다.


그래도 별 스펙 없는 날 뽑아준 분이셨다.

눈물 쏙 빠질 정도로 혹독하게 트레이닝시키셨고,

가끔은 애정 어린 조언으로 감동시켜 주시기도 하셨다.

신입사원이 하기 힘든 막중한 책임감이 요구되는 업무도 과감히 맡겨 주셨다.


힘들었지만,

나는 이 분 밑에서 업무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내 첫 사회생활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한계도 경험해 보았고.

정치가 뭔 지, 아부가 뭔지도 몰라, 

눈치 없는 돌직구만 날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걸 밉게 보지 않고, 

정말 뭘 몰라서 악의 없이 행동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던, 나에게는 진정한 멘토셨다.


그래서, 내 사회생활의 첫 단추가 이 분 덕분에 잘 끼워졌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상사님, 많이 감사합니다.^^



"좋은" 상사 이야기


내가 경력 7-8년 차쯤 때 일이다.

어느 정도 업무에 관해 자신이 붙고 있을 때였고, 운도 나쁘지 않아

제안서 성공률이 꽤 괜찮았을 때다.


그렇지만, 나의 자신감이 자만감으로 보이고,

나의 성공이 팀의 성공이 아닌, 팀장의 무능력으로 생각하신 못난 상사 분이 계셨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급기야 이 분은 나에게 성과평가 C를 하사하셨다.


그때 나는 젊었고, 

이직 기회도 많은 편이었고,

자신감도 충만했기에 말도 안 되는 처사라 생각하고 더 엇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회사 오너께서 나를 부르셨다.

한 달이 1-2번 회사에 나오셨는데, 방으로 부르시더니..

"박 팀장이 김대리(나)에게 성과평가 C를 줬네. 둘이 사이가 안 좋아?

그래도 김대리(나)가 아랫사람이니 먼저 맞춰주고 그래.

업무 열심히 하는 거 잘 알고 있고, 성과는 나쁘지 않다고 들었어.

그런데, 회사는 업무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야. 

업무만큼 관계도 중요한 곳이지.

김대리(나)가 앞으로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써 준다면 훨씬 지금보다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성과평가는 내가 조정했고, 연봉도 올려줄 테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내게 성과평가 C를 준 팀장이라는 분이 많이 미웠다.

그땐 나도 어렸고, 성숙하지 못했을 때니까...

모든 일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이 일 이후에도 팀장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있었고, 굳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오너 분께 말씀드렸다.


"김대리(나), 지금 회사생활 7-8년 정도 했나? 

앞으로 더 길게 회사생활을 할 텐데, 박 팀장보다 더 안 맞는 상사를 만날 수도 있고..

그때마다 회사 그만둘 거야?

안 맞는 상사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직장생활 성공할 수 있어.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면 그 결정 후회할 수도 있고..

내가 안 들은 걸로 할 테니 한번 더 생각해봐!"


이번에도 많이 감사했다.

정말 날 진심으로 생각해 주시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고 퇴근하던 어느 날,

남편이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온 적이 있었다.


그날 오너 분께서도 다른 일로 사무실에 있으시다가

차를 타러 내려오셨는데,

기사 분께서 

"김대리 남편이 지금 데리러 왔어요. "하시니,

바로 차에서 내리셔서

"김대리(나) 남편이 왔다고? 그럼 내가 내려서 인사를 해야지~" 하시며,

내 남편에게 김대리(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열심히 잘하고 있고,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셨었다.


당시 사회적 명성과 부를 다 가진 분이셨고,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오너 분이신데,

일개 직원 남편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차에서 내리신 거였다.


지금 와서 차근차근 되뇌어 생각해 보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크다.

이런 분을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 상사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20년 직장생활을 되짚어 보니, 앞으로 영영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이 오너이신 회사에서 오래 일 했으면 더 큰 성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난 결국 팀장과의 관계를 좁히지 못하고 퇴사했다.

퇴사하는 날까지 팀장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린 치기와 자존심이 퇴사하는 날까지 눈도 마주치기 싫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좋은 상사가 있었던 회사가 아닌가?

비록 직속 상사가 아니라, 함께 업무를 협의하고 논의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고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 준 분이셨다.


좋은 상사는 분명 내게 더 큰 성장을 가져다준다.

업무로든, 내적으로든, 관계로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집단에서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를 좀 더 성장시켜 줄, 직장생활의 롤 모델!

진심이 통하는 그런 상사를 나는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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