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울레리~낭게탄티
일자 : 2018년 12월 9일 - 트레킹 2일차
코스 : ULLELI(1,960m) → NANGGETHANTI(2,430m) → GHOREPANI(2,860m)
거리 : 약 11km
시간 : 약 6시간 40분
일찍 잠이 든 덕분인지 새벽 6시부터 눈이 떠졌다. 사실 네팔이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느리기 때문에 6시에 일어났다고 해도 한국시간으로는 9시에 일어난 셈이다. 시차적응이 필요없는 시차이다. 반대로 네팔시간이 더 빨랐다면 아침엔 눈이 안떠지고 밤에는 눈이 안감기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화장실 갔다오는 소리에 MJ도 일찍 잠이 깬 모양이다. 일찍 일어난 김에 일출을 보러 나가려고 했는데 숙소에서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다. 밖에서 잠글 수 있고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의 문이다. 낑낑대며 문을 밀어보다가 문 열기를 포기하고 돌아왔다. 방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2층 테라스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창문에 머리부터 밀어넣어 보았다. MJ가 무사히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뒤따라 창문으로 탈출을 했다. 아직 구름이 끼어 있어서 일출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새벽공기를 마시며 이렇게 높은 산 위에서 아침을 맞는 기분이 오묘하다. 해가 점점 떠오르고 구름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산을 둘러보다가 구름 속에 감춰져있던 설산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푸른 산 사이로 위엄한 모습을 드러낸 설산이 진짜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에버랜드 입구에 있는 그림 병풍처럼 누군가가 그려서 세워놓은 것은 느낌이 계속 든다.
어젯밤 씨얀이 알려준 오늘의 일정은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하는 일정이다. 아침엔 다이소에서 구입한 신송 우거지 된장국 즉석식품을 핫워터에 타서 볶음밥에 김자반을 뿌려서 먹었다. 추운 아침, 뜨거운 된장국물이 몸을 녹여준다. 설산을 배경으로 넷이 출발샷을 남기고 오늘의 트레킹을 시작한다.
울레리 마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야했다. 해가 쨍하니 떠서 등으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며 올라가니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고소를 예방하기 위해선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옷을 입고 벗는 걸 절대 귀찮아해서는 안된다. 쉴만한 롯지에서 바람막이를 벗고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트레킹을 하기로 한다. 산을 오르며 무수히 많은 롯지들을 지나가게 된다. 롯지 마당을 지나가야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롯지 마당을 지나간다고 해서, 롯지의 테이블 자리에 앉아서 쉰다고 해서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사먹지 않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화장실을 사용해도 친절하게 화장실 위치를 안내해준다. '어서와, 히말라야는 처음이지'하며 맞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울레리를 지나고 오솔길같은 숲속길을 계속 걸었다. 트레킹 중에 롯지에서 파는 예쁜 털모자를 살 생각으로 한국에서 털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때마침 알록달록한 털실로 만든 모자, 덧신, 장갑 등을 파는 롯지가 있었다. 산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은 롯지에서 기념품 구경도 할 겸 쉬어가며 진저티를 마셨다. 딱히 마음에 드는 털모자가 없어서 다음 포인트를 기약하기로 했다.
숲 속으로 계속 걷다보니 날이 다시 흐려져 구름에 해가 가려지고 강줄기도 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강가 앞 작은 낭게탄티 레스토랑에서 쉬어가기로 했는데 너무 추워서 핫워터를 시켜 가지고 온 티백을 타서 마셨다. 점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서 바람을 피했다. 우리가 떠나야 할 때 즈음 4~6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 셋을 데리고 백인부부가 나타났다. 레스토랑 주인이 진저티를 마시겠냐고 물어보니까 아이 엄마가 'No Ginger, No Ginger' 하며 손사래를 쳤다. 외국인들 입맛에는 진저티가 영 인기가 없나보다. 레스토랑이 작아서 우리가 실내자리를 다 차지하고 않아 있어 백인가족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세찬 바람에 너무 추워하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아이 엄마가 'Very kind, very kind.'라고 하며 고맙다고 이야기하는데 'You're welcome'이나 'My pleasure.'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Thank you'라고 말해버렸다.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어제는 양떼들을 많이 보았는데 오늘은 말이 많이 보인다. 동네마다 주력 동물들이 다른가보다. 말과 더불어 말똥도 정말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나는 똥냄새와 아궁이에 불때는 냄새가 가득하다.
12시쯤 낭게탄티의 LALIGURANS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랄리구란스는 네팔의 국화로 빨간색 꽃이 크고 풍성하게 핀다고 한다. 달밧을 한 번 주문해 보았는데 달밧은 무료리필이 된다고 한다. 오믈렛은 계란풀은 계란후라이처럼 나온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당이 떨어진 기분이다. '밥먹고 믹스커피마셔야지.' '나는 껌도 씹어야지.' 각자 밥먹고 부릴 사치스러움에 대해 선언을 했다.
커피를 한잔씩 타서 난롯가에 모여들었다. 우리말고 또 식사를 하던 외국인 가족이 있었는데 남자아이 두명과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사는 호주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푼힐까지만 간다고 한다. 막내가 다섯 살정도 되어보이던데 푼힐까지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야풀에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힐레까지 지프로 왔다고 하니 지프가 가는 걸 봤다면서 '저렇게 가는 방법도 있었어?!'라고 했다고... 푼힐에서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롯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