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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RA Jan 01. 2019

나를 소름돋게 만드는 것

DAY3. 푼힐~반탄티~타다파니~츄일레

일자 : 2018년 12월 10일 - 트레킹 3일차
코스 : GHOREPANI(2,860m) → POON HILL(3,210m) → BANTHANTI(3,180m) → TADAPANI(2,630m) → CHUILE(2,560m)
거리 : 약 19km
시간 : 약 12시간

이제 오를 만큼 다 올랐나보다. 능선을 따라 걸어가는데 바로 옆이 완전 낭떠러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산 아래까지 다 보였다면 더 무서웠을 것 같다. 열심히 오르니 이제 다시 열심히 내려간다. 3천 밑으로 내려오니 구름 밑으로 내려왔는지 날씨가 조금 풀린 듯하다. 내려가는 길도 계단이 높아 쉽지 않았다. 무릎보호대를 하지 않아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다.


내려가다보니 험함 산이 끝나고 마을의 풍경이 눈 앞에 보인다. 지난 번에 봤던 모자가게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모자를 팔고 있길래 모자를 골라본다. 안그래도 너무 추워서 털모자가 필요했었는데 잘됐다. 여러개 모자를 써보고 NEPAL이라고 쓰여진 회색 털모자를 골랐다. 800루피 부르는 걸 깍아서 700루피에 구입했다. 바로 모자를 쓰고 계속 산행을 했다. 한참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한참 또 오른다. 날씨는 풀리는 듯 싶더니 계속 구름이 또 온 하늘을 에워쌓다. 아침부터 계속 추워서인지 몸도 풀리지가 않는다.

도대체 저 나무들은 몇 미터가 될까


계속 되는 계단에 모두 힘들어한다. 홍삼캔디로 에너지를 보충해가며 겨우 반탄티에 도착했다. 야외 밖에 자리가 없는데 햇빛이 비치는 자리에는 이미 손님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늘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신라면이 이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따뜻한 햇살이 정말 몸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광합성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며 구름 속에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잘 쉬었으니 이제 다시 힘내서 출발이다. 오늘 도대체 산을 몇 개를 넘는거야? 내려가고 올라가고 무한 반복이다. 타다파니에 거의 다다라서는 가파른 업힐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가파른 계단을 만나면 어김없이 나무늘보가 나타난다. 세월아, 네월아 한걸음씩 올라가다보니 타다파니 지도가 보인다. 각 마을에서 직접 그려놓은 것 같은데 안나푸르나 트레킹지도에서 현재 내가 어디쯤 왔는지를 알려준다. 각 마을의 스타일대로 그려놓은 그림지도가 너무 귀엽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지도와 히말라야 산맥 그림지도


타다파니 롯지에 도착하니 어제 만났던 한국 단체 관광 어르신들께서 쉬고 계셨다. 아마 이제 우리와 일정이 거의 비슷해서 계속해서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다. 구름에 가려져서 산들이 보이진 않았지만 파란 하늘이 너무 예뻤다. 여기서부터 츄일레까지는 'Easy way'라는 씨얀의 말에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다.

구름이 점점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촘롱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


정말 씨얀 말대로 츄일레까지는 계속 완만한 쉬운 길이 이어졌다. 고도가 낮아지니 확실히 공기의 느낌과 숨쉬는 기분이 한결 편해지는 걸 느꼈다. 어젯밤 2,900m에서 고소맞고 헤롱헤롱 거렸는데 오늘 2,500m에서 낮아지니 한결 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정말 편하게 느껴졌다. 산을 내려가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려고 한다. 해 지기전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에 우리 모두 빠르게 리듬을 타며 내려가본다. 무사히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4시 40분쯤 츄일레 롯지에 도착했다.

안녕, 히말라야 토퍼와 츄일레 롯지 풍경


잔디밭이 있어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롯지가 우리 숙소다. 넓은 잔디밭에 앞이 탁트여있어 전망도 좋다. 이제부터는 화장실이 딸려있는 방은 없다고 한다. 다행히 핫샤워는 가능한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씻어야한다고 하여 MJ와 동반 샤워를 하기로 했다. 비좁은 샤워실에 옷을 다 입고 가서 씻은 후 옷을 다 입고 나와야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핫샤워할 수 있는게 어딘가. 폭풍 샤워를 마치고 다음 타자 뇽에게 턴을 넘겼다. 마지막 타자였던 쪼는 머리를 헹구기 시작할 떄부터 물이 미지근해지더니 결국 핫샤워가 끊겨 찬물 샤워를 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샤워실은 좁았지만 방은 아주 넓어서 속이다 시원했다. 고레파니 롯지는 방이 너무 좁고 어두워서 짐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었다.


개운한 기분으로 식당의 난로불을 쬐러 갔다. 식당도 크고 난로도 화력이 좋아서 겨울밤 팬션같은 곳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난로위에 왠지 고구마를 구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훈훈한 분위기다. 분위기에 빠져 롯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바로 바.퀴.벌.레. 처음에 벽을 타고 기어가는 한마리를 발견하고 눈이 계속 벌레를 쫓다보니 천장에 바퀴벌레 파티를 하고 있었다. '설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앉아있었는데 마주앉은 MJ의 의자 등받침을 따라 유유자적하는 바퀴벌레를 또 보고야 말았다. 으악!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쫙 돋는다. 더이상 이 자리에 편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어 벽에서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MJ 후배가 줬다는 라면스프 티백을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순한맛과 매운맛이 있었는데 순한맛보다는 매운맛이 좀 더 먹을 만 했다. 하지만 티백이라 그런지 정말 라면 스프의 느낌을 별로 나지 않았고 그냥 칼칼하게 마실만한 티처럼 마실 수 있었다. 오늘은 네팔 전통빵이라는 구릉빵을 먹어보았다. 그냥 빵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같이 나오는 꿀맛에, 쨈맛에 먹을 만한 빵이었다.

구릉빵은 한번 먹어보고 다시 안먹었다고 합니다


방으로 가는 길에 본 밤하늘의 별은 정말 말도 안되게 많았다. 별이 너무 밝고, 별과 별 사이의 별들이 다 보이니 별들 사이에 선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별이 많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이 순간을 더 길게 즐기고 싶었으나 너무 추워서 방으로 들어왔다.


가민시계를 충전하려고 보니 충전케이블이 안보인다. 가방을 다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고레파니 롯지에 두고 온 모양이다. 방이 워낙 좁아서 침대에서 충전을 해야하는 구조였는데 아마도 침대와 벽사이로 떨어진 모양이다. 아침에 나올 때 뭔가 빼먹은 기분이 계속 들었는데 바로 너였구나. 정말 너무 아쉽고 속상했지만 다시 가지러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충전케이블 잃어버리고 시계 안잃어버린걸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MJ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래, 시계 잃어버렸으면 백만배는 더 속상했을거야.

속상한 마음에 잠이 들어서인지 밤새 고소가 또 왔다. 어지럽고 토하고 심하게 고소맞아서 하산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어서 다행이야.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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