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고레파니~푼힐
일자 : 2018년 12월 10일 - 트레킹3일차
코스 : GHOREPANI(2,860m) → POON HILL(3,210m) → BANTHANTI(3,180m) → TADAPANI(2,630m) → CHUILE(2,560m)
거리 : 약 19km
시간 : 약 12시간
오늘은 히말라야에 온 이래 가장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이다.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려면 5시에는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푼힐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 데 계속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아직 깜깜한 새벽이라 헤드랜턴이 필요하다. 우리는 두 개 밖에 없어서 잘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느라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갑자기 발 밑이 환해져서 보니 포터와 씨얀이 핸드폰 플래시로 우리를 비춰주었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별이 빼곡하다. 360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아봐도 별들이 가득 차 있다.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본다. 별에 감탄도 잠시, 푼힐로 올라가는 계단의 경사가 꽤 힘들어 마냥 멈춰있을 수가 없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뒤로 줄줄이 외국인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 때문에 밀리는 것 같아 쉬어가는 공간에서 길을 양보한다. 물도 한 모금 마실 겸 쉬면서 별자리 어플로 별을 보니 너무 밝아서 인공위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인공위성이 아니라 금성이었다. 오, 금성이 이렇게 밝게 보이는구나.
다시 힘을 내서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보니 드디어 푼힐이다. 어제저녁 날씨가 흐려져 구름이 가득 끼어서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날이 좋아 산이 잘 보일 것 같다. 아직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안나푸르나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내 눈으로 이렇게 안나푸르나를 보다니! 정말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 믿기지가 않는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점점 밝아지면서 산맥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까맣게 보이던 산맥들이 점점 밝아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삼각대만 있었더라면 타임랩스로 촬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주변이 다 밝아지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디올라기리부터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까지 모두 보였다. 일정이 하루만 빨랐어도 아마 푼힐에서 보는 멋진 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너무 좋다. 덩달아 기분도 너무 좋다. 히말라야 3대 뷰 중 하나인 푼힐에 와서 일출을 볼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사진첩을 보니 비슷한 사진들이 엄청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셔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멋진 광경이 사진으로는 50%도 표현이 되지 않음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안나푸르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보니 디올라기리 쪽 하늘이 파스텔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분홍색과 하늘색이 어우러져 있다. 디올라기리 쪽으로 이동을 하여 또 사진 찍기에 돌입했다.
어느새 날이 다 밝은 것 같고 '너무 오래 있었나'라고 생각이 들어 슬슬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려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동그랗게 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해 뜬다, 해 뜬다. 해 뜬다고 소리를 치며 일출을 구경했다. 산이 높아서 해는 안 보이나 했는데 내려가려는 찰나 아주 동그란 모습을 드러낸 해가 너무 고마웠다. 정말 푼힐에 와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내려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정말 이건 트루먼쇼가 아닐까 싶을 만큼 믿기 어려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맘껏 보고 간다.
원 없이 푼힐 전망을 즐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계단 옆의 풀들이 새하얗게 얼어있었다. 올라올 때는 너무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계단 하나를 내려올 때마다 감탄을 하며 롯지에 도착했다. 어제 롯지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이 끼어서 풍경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롯지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의 모습도 절경이다. 푼힐에서 30~40분 정도 머물 계획이었는데 한 시간 넘게 구경하고 있었나보다. 씨얀이 오늘 가야 할 거리가 길어서 내리막은 조금 빠르게 가야 한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마치고 나니 거의 9시가 다 되어간다. 긴팔티에 바람막이를 입고 나왔는데 날씨가 꽤 쌀쌀하다. 패딩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가다 보면 더워질 거라서 괜찮다는 노빈의 말에 패딩을 포터 가방에 넣는다. 고레파니를 벗어나기까지 계단을 계속 올라 간다. 미미한 편두통이 계속된다. 가민 피닉스 시계로 고도를 계속 체크하면서 가는데 3,100m까지 올라간다. 기분 탓인지 고도 탓인지 모르겠지만 3천을 넘어가니 숨도 더 차는 것 같고 순간순간 어지러운 것도 같다. 날이 개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눈이 내리면서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구름 속 산봉우리를 산행하는데 구름과 눈으로 인해 시야는 좁아지고 바람을 맞으며 올라가려니 흡사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산봉우리에 있는 가게에서 따뜻한 티를 한잔 마시고 가기로 한다. 우리의 최애티인 진저티가 없어 아쉬운 대로 허니티를 주문한다.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덜덜 떨며 티를 마신다. 이렇게는 너무 추워서 고소가 올 것 같은 기분이다. 패딩을 포터 가방에 넣은 터라 쪼의 패딩과 MJ의 모자를 빌려 썼다. 지금의 내 모습은 말 그대로 패션 테러리스트다. 패션 대테러여도 어쩔 수 없다. 날이 흐리니 컨디션도 안 올라온다. 오늘 갈길이 멀다는데 무사히 츄일레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