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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RA Jan 02. 2019

3,700개의 계단을 올라 시누와에 도착하다

DAY4. 츄일레~촘롱~바누와~시누와

일자 : 2018년 12월 11일 - 트레킹 4일차
코스 : CHUILE(2,560m) → CHHOMRONG(2,170m) → BANUWA(2,100m) → SINUWA(2,360m)
거리 : 약 17km
시간 : 약 8시간




고소맞은 꿈 때문인지 6시에 잠이 깼다. 어제 계단을 많이 오르내려서 다리가 뻐근해 30분간 스트레칭을 했다. 그동안 스트레칭을 안한 탓에 다리 구석구석이 엄청 땡기고 아프지만 시원했다. 어제 허리가 아프다는 MJ에게 허리 테이핑을 붙여주었는데 테이핑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오늘 코스도 계단이 많고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가야하는 코스라서 오늘은 허리와 무릎에 테이핑을 했다. 준비해간 테이프를 다 붙여서 오늘 붙인 테이핑을 하산할 때까지 떼지 않기로 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을 하기로 한다. 또 어김없이 우리는 짐을 챙기다가 8시를 넘겨 출발을 한다. 잠옷을 넣고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화장품 등을 정리하려면 결국 포터가방을 다 꺼내서 다시 넣어야해서 아침마다 생각보다 준비시간이 길어진다. 떠나기 전 점프샷도 남겼다. 점프를 너무 많이 하면 체력이 낭비될 것 같아 자제하며 점프샷을 찍었다.


촘롱까지는 전체적으로 내리막 길이다. 히말라야의 내리막길은 절대 그냥 내려가는 법이 없다. 내리막 길이라고 해도 올라갔다 내려갔다의 반복이다. 출렁다리를 또 만났지만 다행히 보수한지 얼마안된 무지무지 튼튼해보이는 출렁다리여서 그나마 잘 건널 수 있었다.


지금까지 트레킹을 하면서 학교를 본 적이 없는데 멀리서부터 큰 운동장 같은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학교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고 그 옆으로 도네이션 박스가 놓여있었다. 100루피 정도 주면 된다는 씨얀의 말에 우리는 200루피를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초콜릿을 달라고 했지만 책에서 초콜릿을 주면 잘 씻지 않는 네팔 아이들이 이가 썩어 안좋다는 글을 읽고 주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줄 걸 그랬나 싶다. 단 것을 잘 못먹어서 우리에게 달라고 한 거일 텐데...


소를 많이 키우는 마을을 지나는데 소가 길을 막고 있다. 실제로 소가 정말 커서 옆으로 지나가는데 약간 무서웠다. 소에게는 일상인지 우리가 지나가도 눈 하나 꿈뻑하지 않고 제 갈길을 갔다. 소가 많은 만큼 길에 정말 소똥이 너무 많아서 피해가느랴 애를 먹었다. 이 동네는 소를 키우고 채소를 키우는 마을이었다. 네팔사람들이 사는 일상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소
네팔 산마을의 평범한 가정집


촘롱에 도착하니 한국말 간판이 많이 보인다. 모든 롯지에서 한국말로 메뉴를 적어놓았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하나보다. 촘롱만 오지는 않을 텐데 이 동네에서는 특히나 한식을 팔기로 유명해서 신기했다. 롯지가 높아서 저 멀리 강가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이 차서 쉴때마다 바람막이를 입어주었다. 고소를 맞지 않으려면 옷 입고 벗기를 귀찮아해서는 안된다. 땀이 날 것 같으면 바로 옷을 벗고 쉴때는 추워지기 전에 미리 옷을 입어주어야 한다.

김치볶음밥을 잘하던 피쉬테일 게스트 하우스
롯지에서 내려다본 풍경
네팔 특유의 파란색집과 알록달록 경전이 예뻐보인다


참치김치찌개는 참치맛이 너무 강해서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김치볶음밥은 정말 잘 볶았다. 가져온 참기름과 김자반을 뿌려주니 정말 한국에서 먹는 김치볶음밥 맛이 나서 흡입했다.

단연 제일 맛있는 음식은 피자였다


롯지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바누와와 시누와 마을이 보였다. 씨얀이 촘롱에서 바누와까지 2시간, 바누와에서 시누와까지 1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한다. 씨얀의 도착예상시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우리의 페이스와 길을 다 파악하고 걸릴 시간을 기가막히게 알려준다. 알고보니 15년동안 이 길을 다녔다고 한다. 200번 정도 트레킹을 했다니 안나푸르나가 씨얀 손바닥안에 있다.


촘롱마을의 거의 정상에 위치한 롯지에서 식사를 하고 이제 내려가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누와, 시누와 마을이 있는 산을 오른다. 이 때 3,70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우리나라 여행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계단 갯수를 센거지? 내가 올라가면서 정말 3,700개가 맞는지 세어보려고 했으나 힘들어서 갯수를 셀 생각이 1도 들지 않는다. 출렁다리를 지나 홍삼캔디를 먹으며 계단을 오를 준비를 한다.

촘롱마을과 시누와마을을 연결해주는 출렁다리
포터들이 우리를 지나쳐 3,700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계단이 생각보다 가파르다. 스틱이 없었다면 정말 오르지 못했을 것 같다. 생전 처음 스틱을 사용해보는거라서 초반에는 발과 같은 쪽 스틱을 짚기도 하고 스틱이 바위에 계속 걸려서 '스틱이 정말 더 편하게 올라가게 도와주는 거 맞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틱 없이는 걸을 수가 없다. 정말 트레킹 내내 스틱없이 걸은 적이 없다. 이제는 내 몸과 같은 스틱과 함께 나무늘보가 되어 계단을 오른다. 그나마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중간 완만해지는 구간이 나와서 숨을 돌리면서 올라갈 수 있었다.


바누와(로우 시누와)에 도착하니 새끼강아지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 히말라야에는 두 종류의 개밖에 없는 것 같다. 검둥이와 누렁이. 모든 동네에 다 똑같이 생긴 개들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진돗개 같은 종인가? 어쩌면 그냥 똥개일지도... 자고 있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건드려서 깨워보지만 잠시 눈을 떴다가 자세를 바꿔 다시 잠을 잔다. 개팔자가 상팔자. 특히나 히말라야 개들 팔자가 그렇게 좋다고 한다.

세상 제일 팔자 좋은 히말라야 검둥이


바누와에서 시누와 가는 길이 매우 가파르다. 역시나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가는데 계단이 높으니 내려갈 때 무릎에 무게가 실려 아팠다. 무릎보호대가 없었으며 무릎이 남아나지 않았을거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려고 할때쯤 시누와마을에 도착했다.

힌출리와 안나푸르나 남봉이 잘 보이는 시누와 그림지도


오늘부터는 고도가 높아져서 씻으면 체온을 뺏겨서 고산증이 올 확률이 커진다고 하여 안씻으려고 했는데 해지기 전에 도착을 한데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오며 땀을 마니 흘려서 오늘까지만 핫샤워를 하기로 한다. 고소가 걱정되어 머리를 감지 않기로 하고 MJ와 함께 샤워실에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씻다보니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니 뭔가 아쉬워서 머리도 감고 싶다. 감을까? 감을까? 고민하다가 '에이, 몰라. 감자!' 폭풍 파워 머리감기를 시전했다.


롯지에서 보이는 설산 풍경에 완전 감탄했다. 확실히 우리가 안나푸르나 가까이 오기는 가까이 왔나보다. 지금까지는 멀리서 보이던 안나푸르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매우 가까이 보였다. 씨얀에게 물어보니 힌출리와 안나푸르나 사우스라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원래 산이 다 저런줄 알고 살겠지? 우리가 남산을 보듯 설산을 보겠지?

힌출리(왼쪽)와 안나푸르나 남봉(오른쪽)


방에 콘센트가 없어서 충전을 하려고 바리바리 충전할 거리들을 들고 식당에 내려왔는데 충전비 받는다고 한다. 인당 200루피니까 2천원인 셈이다. 각자 1만씩 배터리가 있어서 우선 그걸로 충전을 할까. 200루피니까 그냥 돈내고 충전할까. 두사람만 충전할까. 우리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롯지 주인이 우리가 안돼보였는지 그냥 무료로 해준다고 한다. 불쌍해보였다보다. 씨얀이 베테랑 가이드여서 롯지 주인들과 친해서 잘해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쟤네들 엄청 많이 먹어. 배터리는 무료로 해줘도 돼.'라고 말했을지도.


올라가면 입맛없다고들 하던데 우리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아침,점심,저녁 한끼도 가볍게 먹는 법이 없다. 매끼를 배가 터지게 먹는다. 혹시 이거 고산증 부작용으로 과식증 온거 아닌가. 전에는 없던 라자냐가 있길래 시켜봤는데 맛은 그럭저럭했다. 씹는 식감이 떡복이 같아서 떡복이를 그리워하며 먹었다.


어렸을 적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북극성이라고 밤하늘을 보며 북극성을 찾던 것처럼, 히말라야에서는 가장 밝게 빛나는 금성을 찾을 수 있었다. 북두칠성도 정말 또렷하게 잘 보인다. 더 많은 별자리를 알면 다 보일 것 같은데 별이 너무 많아서 어떤 별들을 이어야 별자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별자리를 찾지 않아도 하늘 가득 별이 보이는 광경에 취해 오늘도 추워서 못견딜 때까지 별을 바라보다가 방에 들어왔다. 높아진 만큼 밤도 추워졌다. 옷을 다섯겹을 껴입고 넥워머까지 하고, 핫워터를 가득채운 날진물통을 끌어안고 핫팩은 목근처에 두고 발바닥엔 붙이는 핫팩을 붙이고 침낭에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오늘은 제발 새벽에 화장실 안가게 해주세요.

사진으로 롯지의 냄새가 전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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