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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12. 2022

서프라~이즈! 시베니크 (1)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트로기르에서 9일 기도(묵주로 가톨릭에서 바치는 9일 동안의 기도)를 바치고 출발한 지 40여 분 만에 시베니크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기 전에 먼저 미사를 드리기 위해 대성당을 찾아갔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성당 가는 길을 찾았다. 차를 세워 둔 곳 맞은편에 계단이 보였다. 돌계단을 오르니 시베니크의 가장 유명한 곳, '성 야고보 대성당'이 나왔다.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성 야고보 대성당
2000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석조 이외의 다른 재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건축물이다. 143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444년 유라 달말티나츠(Juraj Damaltinac)가 건설을 주도하면서 유명해졌고 1536년에 완공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건축기간이 무려 1세기가 넘는 성 야고보 대성당은 아드리안 해안가 근처 언덕에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입장료를 달라고 한다.(대신 미사 시간에 들어가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미사도 드릴 수 있다) 


그래서 미사 시간을 물어보니 원래는 저녁 8시인데, 오늘만 7시에 한다고 했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에 성당 뒤쪽으로 걸어갔다. 건물 측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시베니크 사람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어 하나하나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74개에 이르는 시베니크 시민의 생생한 얼굴 표정을 담은 조각들로 장식했다.


언덕진 골목길을 걸었다. 그런데 하늘에 어린이들이 그린 듯 한 재미난 그림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알록달록 생기 넘치는 컬러에 다양한 이목구비, 삐뚤빼뚤하게 쓴 이름까지 그림마다 앙증맞았다. 골목골목 가는 길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그림들이 마치 시베니크에 처음 온 우리에게 반갑게 손인사를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 어린이 그림축제 기간이었다)


세계어린이그림축제 기간이라 마을 전체에 전시 중인 그림들


좁은 거리마다 상점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문마다 처음 보는 예쁜 장식들이 달려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예수님, 성모님 성화에 장식을 달거나 아니면 동그랗게 오려서 스티로폼에 붙여 꽃과 길고 얇은 흰색 천를 달았다. 어떤 곳에는 초도 함께 놓여 있었다. 상점에, 거리의 벽에 붙어 있는 장식들이 가는 길마다 있어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이 동네는 원래 이런 장식들을 해놓나?', '아니면, 무슨 날인가...?' 호기심 가득한 추측들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걸었다.


소박하면서도 깊은 이 곳 주민들의 신앙이 엿보인다.


계속 이동하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더니, 걷는 내내 배가 너무 고팠다. 주변에 식당을 찾는데 문 연 곳이 없었다. '이상하다... 배고픈데 큰일 났네... 미사 전까지 먹어야 할 텐데...'

미로같이 생긴 골목길에, 어쩜 걸을수록 언덕배기인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점점 더 허기졌다. 구글맵(길을 알려주는 앱: 식당, 주유소, 휴게소, 성당 등 여러 정보도 함께 알려준다)을 켜서 문 연 식당을 찾으려고 했는데! 아이고... 오늘이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이었다. '아하! 그래서 아까 그 장식들이 있었구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로써 가톨릭 교회에서 대축일로 지낸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성체성사의 제정과 그 은총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보통 대축일이 평일에 있으면 이동을 해서 주일에 지내는데 여기선 평일이라도 해당일에 대축일을 지낸다. 유럽은 대축일을 대부분 공휴일로 지내기 때문에 대개 문을 닫는 곳들이 많다. 그래서 문 연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 일단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문 연 식당을 다시 찾아 가보기로 했다.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저 골목 이 골목을 한참 걷다가 아까 본 '그 장식'을 붙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우리는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 어르신들께 '세상에 너무 예뻐요~!'

엄마는 '우리도 가톨릭 신자예요! 우리는 세례명이 '모니카, 루칠라, 로사예요'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가톨릭' 이란 한 단어에 모든 것을 소통할 수 있었다. 정성껏 꽃 하나, 천 하나, 장식을 달고 계신 어르신들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기분 좋았던 깜짝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식당을 찾아 나섰다. 한 바퀴 돌고, 아래로 갔다가 또 빙 돌고, 위로 갔다가 어느 좁은 골목 한 귀퉁이를 돌아서는데!

오!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기 문 열었나 봐!'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떤 몸집 큰 남자 점원이 있길래

'식사가 가능한가요?' 물었더니, '예스~!' 하는 게 아닌가! 오예~!

우리가 원하던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허기를 달랜 것에 감사하며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성당으로 내려갔다.


이색적인 엔초비튀김(=멸치) 씹을수록 고소하고 먹을만 하다.






어머나, 세상에! 대성당 입구에서부터 인산인해였다. '아까는 분명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대축일 미사라서 그런가?' 사람들 사이로 손을 쑥 내밀고 연실 '익스큐즈미(excuse me)~, 실례합니다.' 하면서 좁디좁은 틈을 비집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앉는 자리는 이미 만석이고, 서 있을 곳도 없어서 둘러보다가 더 안으로 들어가 봤다. 다행히 고해실 문 앞에 살짝 공간이 있었다. 얼른 앉아서 미사 드릴 준비를 했다.

성대한 오르간 반주에, 깔끔한 하모니를 이룬 성가대 성가와 함께 주교님 두 분과 신부님들께서 입장하셨다. 제대 위에는 어린이 복사들과 전례 봉사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 날은 유독 더운 날씨였는데 성당 안에는 에어컨이 없고, 사람이 많아서 문을 열고 미사를 드린 덕분에 성당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고, 숨이 막혔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성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부채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교님의 주례로 시작된 미사는 전례가 진행될수록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고,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서프라이즈 이벤트에 감동이 돼서 눈물 날 것 같았다. 미사 중에도 고해성사가 계속돼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덕분에 불편했지만 미사 할 수 있어서, 대축일의 큰 은총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기만 했다.



미사가 끝날 무렵 가운데 통로가 정리되는 걸 보니 아마도 주교님과 신부님들께서 다시 입구 방향으로 퇴장하실 것 같아 성당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곳 전통의상으로 보이는 모자를 쓴 나이 든 남자분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 있었다. 성당 앞에는 작은 제대도 준비되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우선은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 있어 봤다. 그랬더니 주교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나오셨다.

오 마이 갓!

성체거동(=성체를 모시고 성당 밖을 행렬하는 행사)하시려나 보다!



야외에 마련된 작은 제대에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기 전 예식이 시작됐다. 중간중간 성가를 부르는데, 잘 몰라서 가만히 있었더니 맞은편에 계신 이곳 신부님께서 입을 크게 크게 하시며  따라 해 보라고 하신다. 이 날 거의 동양인이 우리뿐인 데다가 현지인들 사이에서 그것도 맨 앞에서 전례에 참여하고 있었으니 매우 신기하셨나 보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입모양을 열심히 따라 했더니 신부님, 웃음이 터지셨다. ㅎㅎㅎ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 시간이 있어 주인이 기다린다는 메일을 받은 탓에 끝까지 행렬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렸다.

미사가 몇 시에 있는지 어디서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크로아티아어를 몰라서 잘 알아듣지 못했기에, 예수님께서 오늘의 모든 것을 이끄셨다고 믿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닌, 우리가 아닌,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에 의해 마련된 하루였기에 더더욱 감사드릴 수 있었다.

채 가시지 않는 흥분과 감동으로 다시 차를 몰아 숙소로 향했다. 스플릿을 떠나 트로기르, 시베니크까지 길었던 하루, 어느 날보다 더 감동스러웠던 하루를 봉헌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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