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k split
Jan 12. 2021
우리집 거실 뒤쪽 식탁 너머의 큰 창으로 바깥을 보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뒷산 자락에 위치한 작은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입주를 시작하면서 많은 입주민들이 시공사에 찾아가서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눈 떠 창밖을 보니 공동묘지가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달랐습니다.
전통적 사고(풍수)에 근거하여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은 명당이길래 저곳에 공동묘지가 생겼을까?라고 말입니다.
죽어서 명당에 묻히면 자손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데, 비록 나의 조상이 묻히진 않았지만 아침이고 저녁이고 저 공동묘지를 바라보면서 어째서 좋은 자리일까 ? 거듭 생각해보니 나름 이유를 알만 했습니다.
산(生)사람이 좋아하는 아파트 남향처럼 저 공동묘지도 맑은 날 하루 종일 햇볕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왠지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지구상의 지역에 따라 장례 문화가 많이 차이 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우리들에게 죽은 사람들의 묘 자리가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왠지 무섭고 밤만 되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선입견에 무작정 멀리하고 싶은 곳이 공동묘지입니다.
하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귀신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조상의 묘에 성묘를 다녀오면 편안한 기분이 드니 공동묘지라고 무조건 무서워하고 꺼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이론에 의하면 음(陰)과 양(陽)은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공간은 양(陽)이고 죽은 사람들의 공간을 음(陰)이라고 한다면, 한 공간에서 음과 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다면 사람이 살기엔 좋은 공간이 아닐까요?
먼 곳에 보이는 공동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 기분이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는 여유라고 할지, 깨달음이라고 할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분명히 느끼곤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너무 양(陽)의 기운만 가지고 산다면 들뜨거나 흥분해서 가끔은 그 기운이 화 또는 분노로 발전하는 이유가 음 (陰)의 기운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몇 년간 뒤적거린 동양철학 또는 사상에 관한 책에서 알게 된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던 선조들은 그래서 해마다 명절이나 특정 시기에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가게끔 전통을 만들었나 봅니다.
예전엔 뉴욕 스케줄이 나오면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는데, 뉴욕 도착 후 호텔로 가는 도중에 공동묘지를 볼 수 있는 도로가 있었습니다,
버스 창문 너머에 보이는 수많은 묘지석을 보면서 도시 입구에 공동묘지가 있는 게 이상했지만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무서워하거나 꺼려하지 않는 뉴요커(New York)들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이란게 다다르고 보면 별게 아닌데 왜 그렇게 욕심내고 집착하고 서로 싸우려 드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화해와 양보라는 단어는 알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 인간 세상에서는 잠시 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것을 닞고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 말입니다.
창 밖에 보이는 저 공동묘지를 보면서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작은 소리가 겸손하게 살라고 합니다.
욕심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집착하지도 말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살라고 합니다.
어느새 내 마음은 조용한 호수처럼 편안해 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