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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너부 Aug 06. 2021

《시스터 캐리》


《시스터 캐리》'세상 물정 모르는 처녀가 도시에 올라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내용이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그저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나 할리퀸 로맨스 소설의 얼개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은, 이 단순하고 전형적인 듯 보이는 신데렐라 스토리 구석구석에 독자들이 음미해봄직한 지점들을 조심스럽게 숨겨놨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인 1890년대의 시카고와 뉴욕의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을 집요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아무 기반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캐리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6070년대 한국의 닭장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고된 일터, 캐리의 신분상승을 이끌어준 남자들이 속해 있는 상류사회의 단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된 허스트우드의 비참한 반거렁뱅이 생활 등이 차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독자는 각계각층의 물질적/사회적/심리적인 환경을 깊이있게 알 수 있. 이를 통해서 독자는 130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하나같이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작품이 중반을 넘어 결말로 나아가면서 남녀 주인공의 운명은 정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소위 '촌년'이었던 캐리는 타고난 배우의 재능과 미모를 살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 반면 시카고에서 나름 잘 나가던 허스트우드는 조금씩 신세가 처량해지더니 급기야 부랑자 전용 숙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캐리는 남들이 원하는 지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이게 과연 행복인가?' 하는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의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만의 '행복'이 뭔지 탐구할 동기도, 여유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남들이 공통적으로 갈구하고 보기에 좋아보이는 세속적인 가치만을 좆아 전력투구한 사람이 마지막에 직면하게 되는 묘한 허무함을 곱씹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죠.





책을 읽는 내내 130년 전과 달라진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인정투쟁의 대상은 물질적인 부와 명예라는 종래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잘 정제되고 독특하며 그 자체로 본인의 우월함을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이나 감정 등으로 그 범주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SNS에 범람하는 그런 사진이나 글쪼가리를 보며 사람들은 오늘도 동경하고, 질시하며, 또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정작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새도 없이 말이죠. 는《시스터 캐리》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시의성을 가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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