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리슨 Apr 13. 2023

<언다잉>을 읽었다




고백하자면 조금은 오만한 생각으로 이 책을 덮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누구나 이 책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왜냐하면 나는 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이고, 이 책을 쓴 앤 보이어는 암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앤 보이어는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칭하는 것이 (암이 통치하는 이 세계에서) 암으로 “죽은 자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또한 이어서 인정하듯 그는 암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황홀한 기쁨을” 느껴도 되는 사람이다. 그는 영락없는 생존자이므로. “적어도 암으로는 죽지 않았”으므로.


이 책을 두고 ‘그저 암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오직 암 생존기만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암에 관한 이야기이고, 암 생존기이다. 이 책은 눈물의 전리품이며, 고통의 트로피다. 이것은 암이라는 ‘황제의 병’을 겪어낸 자만이 쓸 수 있었던 수기다. 앤 보이어는 책에서 두 명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암 투병 유튜버를 언급하며 그들이 각자의 삶을 영상으로 공유해 준 점에 감사를 표한다. 나는 암 환자의 마지막 삶을 곁에서 지켜봤고, 여전히 말기 암 환자의 브이로그 유튜브 몇 개를 구독 중이며, 암이라는 정복되지 않은 병이 언젠가는 나를 정복하리라 상상하며 벌벌 떠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그 누구도 거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지나치게 아름다운 언어로 고통스럽게 빚은 글들의 모음이다. 노동자 계급의 여성 시인이 이 끔찍한 체제를 향해 울부짖듯 토해낸 에세이들의 모음집 혹은 하나의 에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발췌될 수 없는 책이다. 책 한 권 자체가 하나의 문장인 책,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나는 때로 한 권의 책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을 마구 떼어다가 여기저기에 전시하는 행위가 다소 무식하다거나 잔인하다고 느끼는데(나도 종종 그런 짓을 한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 그렇게 한다면 마찬가지로 느낄 것 같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문장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마나 생명력이 있을까. 어떤 문장들은 발췌되지 말아야 한다. 발췌되는 순간 전혀 다른 문장이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위에서 이 책의 일부를 발췌했고, 하나를 더해도 더 큰 죄가 되진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내가 이 책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이들을 위해 쓴 내용은 하나도 없으며, 내가 그들을 염두에 두었다면 애당초 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293) 당신은 이 문장이 무섭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วาดพระนคร》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