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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연 Mar 13. 2019

[인터뷰] #11. 배우 우현주 (1)

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다음 주면 개막하는 연극 <곁에 있어도 혼자> 연습에 한창인 그녀를 만났습니다. 참 다양한 여러 타이틀 중에서도 망설임 없이 ‘배우’를 가장 앞에 내세운 그녀, 바로 배우 우현주입니다. 연극과 뮤지컬이나 브라운관 활동 외에도 연출과 극작, 번역, 그리고 극단 맨씨어터의 대표로서의 역할까지 넘나드는 그녀를 매거진 [연]이 만나보지 않을 수 없겠죠.
사실 이 만남은 작년 연말부터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아서요,’라는 매거진 [연]의 인터뷰 요청에 ‘그럼요. 할 말이야 많죠.’라고 대답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벌써 저희가 만남을 약속했던 봄이 성큼 와버렸네요.
우선은 일 년간의 휴식기를 보내고 복귀하는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예정되어 있는 차기작들과, 배우 우현주의 고민, 그녀의 사람들에 대해 여쭤보았고요. 매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던 그녀의 진지하고 냉철한 얼굴에도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난 순간이 딱 한 번 있었는데요. (궁금하시죠!) 바로 최근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이었습니다. ‘덕후’가 되어보니 그 모든 것들이 이해되었다던 그녀. 국내 연극계와 공연계 관객층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중 관객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여러 번 표현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나 관객들의 입장과 선택을 헤아려보고자 하는 노력을 해주신 것에 대해 오히려 우현주 배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메리 제인>의 여성 인물들이 그렇듯, 서로 이해하고자 하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더욱 걱정, 고민 없이 지금처럼 그녀의 행보와 작품들을 지지해줄 동료들과 관객들을 믿고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우현주' │ⓒ 후앤유이엔엠

Q. 배우, 극단 맨씨어터 대표, 연출가, 극작가, 번역가 등등 많은 영역을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이신데. 본인이 규정하는 직업적 타이틀이 있다면
언제나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배우로 잘 나갔으면 이런저런 일들은 다 할 생각을 못 했을지도 몰라요. 캐스팅 기다리다가 아예 극단을 만들었고요. (웃음) 원래 판 까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극단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에요.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장르 안에서 멀티플레이를 하는, 이를테면 ‘토털 아티스트’를 키워내고자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기회를 자꾸 만들어나가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예요. 배우라는 일이 캐스팅을 당하는 피동적인 입장이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걸 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극단 일까지 하게 된 거죠.


Q. 2017년 말 <14 체홉>이 끝난 후 일 년 좀 넘게 건강상의 이유로 쉬었는데, 그 휴식기가 어떤 의미, 어떤 시간이었는지
극단 창단 10주년 작품을 하고 난 후, 제작은 일 년쯤 쉬고 배우 활동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였어요. 사실 배우 커리어라는 게 운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당시 개인적으로 드라마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 시점이었어요. ‘이제 돈을 좀 벌 수 있는 이런저런 일들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던 차에 건강이 안 좋다는 걸 알게 되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어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극단으로서는 한 해를 쉬면서 내부적으로 정리를 하는 시기였어요. 함께 갈 사람들과, 극단 규모나 방향성에 대해서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이렇게 해도 될까. 이걸 키워나가려면 객관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들을 했었는데, 규모를 키우는 것은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고, 작품 제작에 있어서 극단 내부에서 더 많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해나가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연출을 외부에 맡기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경우가 아마 더 많을 것 같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고 싶은 작업들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이번에 아프면서 정리가 된 생각이기도 해요. 앞서 말씀드렸듯 배우는 분명히 매체든 연극이든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 시점이 있고, 그런 것들을 어떤 이유에서든 거절하다 보면 어느 순간 끊어지는 때가 와요. 점점 더 나이도 드니까 부담스러워지는 부분들이 커지고. 또 섭외가 와도 극단 일이 우선이다 보니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다 하지를 못하고요. 여러 이유로 점점 외부 섭외들이 줄어들어요.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배우들은 대개, 그 배우를 늘 부르는 연출이나 제작자가 있기 마련이죠. 저 같은 경우는 소위 누구누구 사단이라 부를만한, 저를 반복해서 불러주는 특정 연출이나 제작자가 단 한 명도 없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관객분들 덕분이에요. 누군가에 의해 계속 끌어당겨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데, 저에게 그런 사람 단 한 명 없이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극단의 작품을 꾸준히 봐주시는 관객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어요. 만약에 그런 관객분들이 없었더라면 그저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이지 뭐예요. 정말 감사해요. 늘 감사해왔지만, 투병 중에 깊이 생각하면서 더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그리고 연극계가 양분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흔히 ‘덕극’이라 불리는 작품들과 연극계 내부에서 인정해주는 작품들 사이에 저희는 살짝 경계선에 있는 극단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선택해야 한다면 관객이 많은 작품이 좋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하지만 연극계 내의 평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이제 다 내려놓았어요.
늘 관객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지만, 더욱 감사하고,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내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골라서, 내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찾아주시는 이 관객들을 믿고 그냥 하겠다. 인정받든 말든 상관없다.’ 그런 쪽으로 생각이 정리됐어요.


Q. <곁에 있어도 혼자>는 극단 맨씨어터의 작품은 아닌데, 올해 맨씨어터 라인업 작품들을 준비만으로도 굉장히 바쁘실 것 같은데,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저희 맨씨어터에서 5월에 올릴 <정리하고 싶은 여자들>은 맨씨어터의 첫 일본 원작 작품이에요. 이은영 연출과 함께하는데 저희와 5월 공연 이전에 3월에 ‘히라타 오리자 연극전’ 초청작으로 일본에서 <곁에 있어도 혼자>를 공연하게 되었다고, 같이 하자고 했어요. 작품을 접해보니 배우들끼리의 호흡이 정말 중요한 극이라서 ‘우리처럼 이렇게 모이는 멤버들이라면 호흡을 잘 맞춰서 매력을 살릴 수 있겠다. 정말 재미있겠다,’ 싶더라고요. 저를 포함해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일본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배우는 못 한 대로 아쉽고, 일본에 다녀오게 될 배우들은 단 몇 회 공연만으로 끝내기엔 아까운 공연이라며 아쉬워하고, 그렇게 다들 서울에서도 꼭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해보자 결정하게 되었죠. 합에 있어서는 자신 있는 배우들이 모여있어서 분명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Q. <곁에 있어도 혼자>의 경우 일본 희곡 특유의 색깔이 있을 텐데 연습 과정은 어떠신지
초반에는 모두들 생각하는 ‘일본적인 정서’라는 것이 약간씩 달랐고, 머릿속에 뭔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인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공유하기가 어려웠어요. 또 작품 내용이 전부 한국 상황으로 번안이 되어 있거든요. 배역 이름까지도요. 번안은 해 놓았지만 말할 때 뉘앙스나 템포나 리듬감, 정서는 일본적인 게 있으니까 이걸 어디까지 한국화할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많이 했어요. 연출은 일본적인 리듬감을 살리기를 원했었지만, 배우들은 거기에 천착하다 보면 자유로움이 사라지니까 ‘그러지 말고 하는 데까지 자유롭게 가보자. 가본 다음에 나중에 한 번 정리를 해보자.’ 해서 그렇게 진행을 해보았어요. 다들 호흡을 워낙 많이 맞춰왔던 배우들이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래 그때 내가 얘기한 게 바로 이런 거야’ 하고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맞춰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일본 희곡의 정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곁에 있어도 혼자>뿐만 아니라 <정리하고 싶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틀림없이 어순도 같고 비슷한 점이 많아도 그 정서의 결은 분명 다른 점이 있거든요. 거기에만 집중하다가 배우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그런 제한적인 요소들이 배우로 하여금 늘 해오던 관습적인 연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환기시켜주는 역할로 작용했어요. 관객분들께 지금까지의 창작극하고는 살짝 다른 맛을 느끼게 해 드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Q. 맨씨어터가 선보일 예정인 <메리 제인>은 투병하는 아이의 엄마인 ‘메리 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혹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더 와닿았던 부분이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은 상황을 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메인 제인>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그녀는 정말 잔인한 상황에 처해져 있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잃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으며 굉장히 담담하게 받아들여요. 예를 들자면 <프로즌> 같은 작품처럼 고통을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와는 결이 좀 달라요. 또한 종교적인 힘이나 어떤 큰 힘에 기대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성들이 서로 연대를 해나가며, 애써 파도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타고 넘어가듯 함께 나아가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실은 라이선스 극을 이제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가 이 <메리 제인>이라는 작품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철회했어요. 흔치 않게 마음을 치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희곡을 선택하다 보면 일부 결함이 보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력적이고 좋은 요소 때문에 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정말 거의 무결점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곡에 자신이 있어요. 그래서 잘하고 싶어요.


Q. 극단 맨씨어터를 만든 계기가 여배우로서 공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지난 십여 년을 돌이켜보면
그렇죠. 그리고 시켜줘도 양에 안 차니까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주변의 여배우들과 항상 함께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혹자는 저희 극단이 한 5년 될 때까지도 저 하나만의 욕심을 위한 극단이라는 말들을 했었죠. 우리 극단에 있는 배우들의 면면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정말 ‘꿀리지 않을’ 사람들이고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저 혼자만의 욕심을 위해 여기에 10년을 있었겠어요. 늘 같이하는 힘이 있으니까 끌고 갈 수 있었던 거지, 만약 저 혼자만의 욕심이라고 했었다면  2,3년을 못 갔겠죠. 하고 싶은 얘기가 있고, 또 하고 싶은 작품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됐고, 좋은 사람이 또 좋은 사람을 데려오게 됐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어요.


Q. 결국 험난한 와중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사람이네요. 그렇다면 배우 우현주의 사람들에 대해 여쭤볼게요. 우현주에게, 정수영은?
작품에 대해서든 아니든 제가 무언가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그 얘기를 나누는 사람, 얘기를 나누다가 점점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에요. 어떠한 것을 맡겨도 좋은, 같이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정)수영이하고 (이)창훈 두 사람이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해오는 일들에 있어서, 아무리 이게 바보 같은 생각이라도 해도 제가 먼저 거침없이 말할 수 있고 함께 상의하다 보면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게 되는, 그런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저를 가장 많이 믿어주고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들이에요.


Q. 평소 박정자 선생님이나 예수정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도 꾸준히 드러내셨는데, 존경하는 선배님 혹은 선생님들에 대해
박정자 선생님은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선생님이고 연기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바라봐야 하는 등대 같은 분이세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한테는, 아니 ‘저한테는’이라고 말하기도 싫어요 – 남들이 뭐라고 반론하는 것조차 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대 연기하시는 배우로서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연기뿐만 아니라 연극을 대하시는 태도까지도요. 누구도 박 선생님의 열정에는 아마 못 미칠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을 롤모델로는 삼을 수가 없어요. 왜냐면 저는 선생님처럼 살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배우의 삶 혹은 좋은 연기라는 게 A부터 B 까지라는 범위가 있다고 하면 박정자 선생님의 거의 반대되는 지점에 예수정 선생님이 계세요. 연기적인 부분으로서도 그렇고 삶의 태도도 그렇고요. 선생님은 정말 자유로우시거든요. 그런 자유로움을 여배우들이 잘 갖지 못하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열 한 분의 기라성 같은 여배우분들을 인터뷰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이 예수정 선생님이었어요. 그때 제가 둘째 아이를 낳고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서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걸 여쭤봤어요. 그때 예수정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중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는 일화가 있는데, 선생님께서 예전에 독일에서 유학을 하실 때 공부는 하고 있지만 무대에는 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부엌을 청소하면서 오늘 내가 이 바닥을 아주 맨질맨질하고 깨끗하게 잘 닦으면 나는 연극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믿고 그렇게 유학 생활을 하셨다는 거예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선생님에게는 정말로 그런 자유로움이 있어요.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원칙과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던가 그런 게 일절 없는 분이고요. 선생님도 이때까지 서러운 일들이 왜 없으셨겠어요. 그렇지만 그게 선생님한테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욕심이 별로 없으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 거죠. 저는 그걸 닮고 싶어요. 그래서 롤모델을 예수정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우현주에게 손흥민이란
하하하. (큰 웃음) 그게 참 이상해요. 그동안에도 축구는 열심히 봐왔고 손흥민 선수도 물론 좋아는 했지만 ‘덕질’을 하는 그런 대상은 아니었는데, 이번 아시안컵 전후로 해서 그 시기에 토트넘 경기를 열심히 보는데 진짜 사람이 순식간에 콩깍지가 씌더라고요. 물론 그 선수가 잘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부분이 크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순수함, 어린아이같이 너무나 순수해 보이는 그 에너지가 좋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살아봤기 때문에 실제로 그 안에서 저렇게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어찌 보면 앞서 얘기한, 예수정 선생님하고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어요. 이전에는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운동선수든, 음악가든, 예술가든, 작가든 ‘내가 이걸 독하게 꼭 해내고야 말 거야,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라도 이룰 거야’라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면 손흥민 선수는 그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성실하지만 즐겁게 한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냥 즐기면서 하자는 게 말이 쉽지만, 그렇게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는 실제로 즐기면서 하면서도 굉장히 꾸준하고 치열하게 트레이닝을 해왔잖아요. 그런 면들이,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잡생각이 많고, 늘 흔들리고, ‘그만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너무 많이 하는데 손흥민 선수는 자기중심이 딱 잡혀 있고 ‘즐기면서 하면 되지’ 하는 그런 자세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트위터에 너무 많은 얘기를 했죠. (웃음) 그런데 사실 손흥민 덕질하는 부계정은 따로 있어요. (하하)
주변에서는 이 나이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걸 다들 부러워하더라고요. 정말 농담이 아니라, 제가 트위터에도 썼지만 많은 덕질 하시는 분들의 ‘본진’에 대한 마음이 다 이해가 가더라고요. (웃음) 그게 뭔지 이제 알겠어요. 그냥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한테 힘이 되고 그게 너무 즐겁고 좋다>는 그 마음. 예전엔 ‘저렇게까지 본진한테 정성껏 선물을 전하고 퇴근길에서 오래 기다리면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뭔지 다 알겠더라고요. 간혹 사람들이, ‘저런 거 무슨 일종의 유사연애 같은 거 아니냐’ 하면서 되게 많이들 오해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이제 모든 것을 다 알게 됐어요.


Q. 세 남자 (남편과 두 아들)와 함께 사는 것,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사이의 밸런스에 대
요즘은 고민이 훨씬 덜하기는 해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위한 많은 서포트들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했던 고민들이 지금은 다 정리가 됐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결심을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저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저희 남편도 동의하고 함께 (자녀 교육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엄마들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학원 보내고 다 떠먹여 주는 그런 양육 방식을 우리 두 사람 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아마 딸이 있었다면 조금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남자아이들이라 대범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일을 가지고 있고 나가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너희가 중학교만 들어가도 엄마가 일하는 게 훨씬 좋을 거야’라고 얘기를 해왔는데 실제로 지금은 그렇게들 생각하게 됐고요. 저희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다 일을 해오셨던 분들이라 집안 분위기가 이런 걸 다 받아들이는 쪽이에요. 아이들도 요즘은 제가 연극을 하는 것, 제 이름을 네이버 치면 나오는 것, 드라마에 나오는 것 이런 것들을 신기해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젠 훨씬 마음이 편해졌죠.


Q. SNS를 그 어떤 공연인 보다 활발히 그리고 능숙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표출의 방법인지 혹은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시는 부분인지
처음에는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었죠. 2012년도에 <벚꽃동산>을 하면서 처음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소통을 하게 되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제 성격이,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한테 먼저 잘 다가가고 그러지를 못하는데 트위터를 하고 나서는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는데 훨씬 쉬워지더라고요. 제가 좀 깍쟁이 같은 인상이다 보니까 관객분들이 거리를 느끼시기도 하는데 트위터를 통해서는 덜 어려워하시는 것 같고요.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 피드백을 빨리 받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가 이 매체를 너무 좋아하게 된 거예요. 소위 ‘팡인’이라고 하죠. (웃음) 이 매체의 특성이 저한테 잘 맞아요. 비주얼적인 것보다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위트가 가득하고 시니컬하면서 어두운 마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제 구미에 딱 맞아요.
요즘 일기를 잘 못 쓰는데 일기장 같은 기능이 되기도 하고요. 나만 보는 일기라면 내 맘대로 막 쓰겠지만 트위터에서는 그래도 최대한 말을 잘 고르고 골라서 쓰게 되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는 순기능이 큰 것 같아요.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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