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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Aug 29. 2021

여행의 추억

교토 우동집에서 만난 노인

코로나로 해외여행 가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애들 다 키우고 손녀까지 키워 줬으니 육아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선포한 지 겨우 몇 년 만에 복병을 만난 셈이다.

당분간 여행의 추억이나 곱씹으며 코로나 이후의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여행지에서 잠깐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다.


이 나이에 자유여행은 자신이 없으니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잘 찾아보면 저렴한 가격에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으니 겉핥기 식이라도 나처럼 시간 많은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국내여행보다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다.  단 저렴한 만큼 가이드의 횡포나 싸구려 호텔은 감수해야 한다.

몇 년  어느 여행사에서 땡처리로 베이징 패키지가 20만 원대에 나온 적이 있었다. (299,000원 ^^)

3박 4일에 무려 쉐라톤 호텔 투숙인 데다 비행기도 국적기였다.

그런데 가서 보니 11월인데도 엄청 추웠고, 베이징 시내 미세먼지가 방독면을 써야 할 정도로 심해서 다니는 내내 고생했다. 만리장성은 입구 구경만 하는 등, 호텔에는 밤 10시에나 들어가 새벽 7시까지 준비 끝내고 나와야 해서 호텔 부대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는데 관광으로 바빠서가 아니라 지정 쇼핑센터 방문 때문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패키지여행이라면 거의 이런 식이라 이제는 가는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마음먹는 것 같다.

그 가격에 더 바란다면 도둑 심보이니 적당히 타협하며 가는 수밖에.


이렇게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만 하다가 딸과 함께 일본 교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가까운 곳이라 부담 없이 갔는데  호텔 선정부터  맛집까지 딸이 하는 대로 좇아다니기만 했으니 나로서는 여행사 패키지 투어만큼이나 편했다.

음식도 마음대로 골라 사 먹고 시간 쪼들리지 않게  골목골목 구경 다니는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청수사를 오전에 다녀와서 호텔에서 쉬자고 일찍 나섰는데 아침을 유명한 우동집에서 먹었다. 타치구이라는, 서서 먹고 비켜주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만났던 노인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옆에 섰던 7,80대쯤의 노인인데 말투도 자연스럽게

한국 분들이세요?

.

나도 한국사람인데.

아 그러세요?

하자마자

%~#^__

/-?@%/

.

.

워낙 빨리 말하기도 하고 알아듣진 못했어도 아마 세계의 모든 언어마다 사용하며 자신이 그 나라 사람이라고 말한 것 같았

그리곤 바로

자기는 일본 사람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들과 대화하기 위해 아침마다 이 집에 우동을 먹으러 온다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말해 우리는 빵 터졌다.

모녀가 같이 여행하는 것을 보니 참 보기 좋다며 자기도 서울 가본 적 있다고 이미자 하춘화 등 좋아한다는 가수 얘기부터 남산 경복궁 등 줄줄 혼자 그 짧은 시간동안 주로 혼자 말을했다. 우동 한 그릇 비우고 자전거에 가볍게 올라 집으로 가는 그의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 이제 여행 가기에는 힘이 들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화는 하고 싶었던 노인으로선 최상의 방법을 택한 셈이다.  그 우동집은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한 번쯤 들르는 핫플레이스였으니까.

젊은 시절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그 노인에게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친구처럼 반갑게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가 떠난 뒤로도 매일 아침마다 우동집에 들러 영어로 스페인어로 독일어로 프랑스어로 자신이 그 나라 사람이라고 놀래켜 주며 즐거웠을 그 노인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요즘 같은 때 그 우동집에도 여행객들이 없을 텐데 그 노인은 무슨 재미로 살까 오지랖 부릴 만큼 재미있었던 추억이다.

사실은

영어를 사용하기도 했고, 바로 옆에 있던 딸과 주로 대화를 나눴었는데 엄마가 참 예쁘다고 했었다며 나중에 딸이 말해 주었다. 젊으나 늙으나 여자들은 예쁘다는 말 한마디면 게임오버라는 것까지 터득한, 우동집에서 잠깐 본 노인과의 추억이다.


우리가 갔던 교토의 우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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