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7번방의 선물>, <수상한 그녀> 정말로?
1000만 관객이 넘은 영화들을 보고 분석해보면서 처음에는 ‘이 영화가 왜 1000만 관객이지?’ 하는 의문이 든 영화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다. 그리고 과제로 주어진 시나리오와 실제 상영된 영화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시나리오 분석의 또다른 재미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각각 다른 내용을 담은 영화일지라도 3장 구조라는 틀에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는 각 구성점 별로 상영시간이 어느 정도 일치했다는 것이다.
영화 <광해>는 극장에서 본지 오래된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읽어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수업이 끝난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나는 조선의 왕이다.’라는 제목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라고 바꾼 것은 신의 한수가 아닌가 싶다. 시나리오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에서는 중전과 광대 하선 사이의 연애사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에는 하선이 궁을 나간 뒤에도 중전과 이어지는 감정적인 교류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 촬영도 시나리오대로 찍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한다. 하선을 떠나보낼 때 잠옷바람으로 나온 중전의 모습이라던가 에필로그처럼 이어지는 하선을 찾아온 중전의 모습 등을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로 돌아가 생각을 해봤을 때 과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전과 광대 하선의 러브스토리인가에 대한 답이 아니었기에 중전에 관련된 많은 부분을 삭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전체 영화의 줄거리가 중전이 하선을 다시 찾아오는 장면에서 끝을 맺었다면 영화가 끝난 뒤 <광해>는 중전과의 러브스토리라고 요약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하선이 광대였다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이야기는 메인 스토리로 존재해야 했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이었다. 따라서 원래의 이야기를 잘 살리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하면서 발견한 것은 광대가 왕이 되었던 이야기를 100분이 넘는 이야기로 꾸며내는 데에는 하선과 도부장, 조내관, 허균 그리고 사월이 등 여러 서브플롯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끝나고 생각이 나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줄거리에 대한 것이겠지만 그 긴장감과 흥미를 이끄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스토리들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전반에는 딜레마와 드라마틱 아이러니가 사용되었다. 딜레마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사항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스럽지 못 해서 인물을 고뇌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딜레마는 영화의 각 구성점에 투하될 경우 이야기에 힘이 생기게 된다. 광해에서는 두 가지 딜레마가 존재하였는데 ‘왕의 노릇을 할 것인가’와 ‘왕이 되어볼 텐가’에 대한 딜레마였다. 주인공은 목숨을 걸고 왕의 노릇을 해보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하여 클라이막스 부분에는 결국 진짜 왕은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드라마틱 아이러니란 정보에 관한 것으로 등장인물보다 관객이 더 많이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것이었다. 이것은 등장인물에게 연민을 유발하고 싶을 때, 코믹적인 요소가 필요할 때, 혹은 긴장감, 안타까움을 증대시킬 때 이용된다. 광해에서는 이야기 전체에서 관객들은 왕이 가짜임을 알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몰라서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것이 드라마틱 아이러니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드라마틱 아이러니 덕에 아주 재밌어졌다.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는 영화 <광해>에만 존재하는 참신한 설정은 아니다. 진짜 대통령을 대신하여 일반인이 등장한다는 영화 <데이브>도 그랬고 조금 뒤에 언급할 <수상한 그녀>도 진짜 오말순은 없어지고 오두리가 나타나는 등 마찬가지의 설정이었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의 설정만으로는 표절이 될 수 없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왕자와 거지>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영화의 처음 설정, 아이디어가 어떤 내용인가에 대한 것 보다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플롯의 전개, 주인공의 특징 등이 표절의 중요한 판가름 요소이다.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표절을 제기할 경우 어떤 영화도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사실 신파극이라고 많이 비난받는 영화였다. 나 역시도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도 억지 눈물을 이끌어낸다고 생각을 했었다. 신파극의 기준은 슬픔의 동기에 있다. 그만큼 슬프고 그만큼 울만한 내용인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을 신파극이라 치부해버리기엔 영화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했다. 사람들을 울리기 위해서 존재한 설정으로만 가득해서는 절대 10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7번방의 선물>에는 예승이와 아빠의 성장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존재했다. 3장 구조에 맞추어 나누어보면 영화는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예승이와 떨어져 용구가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을 선동사건으로 시작한다. 예승이는 이유도 모른 채 아빠를 교도소에 보내고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많은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닥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도 모의재판을 통해 예승이가 용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즉 이 클라이막스는 사실 죽음이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예승이가 자라서 성장과정에서 부재했던 아빠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어렸을 적의 바보 아빠를 용서를 하며 성장하는 예승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면 영화의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나오는 세일러문 캐릭터 등장의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제작 과정에서 어떤 설정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예승이가 아빠의 사형 날,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예승이는 아빠의 죽음을 몰랐고 그래서 결국 영화가 용서와 성장의 메시지로 이어지며, 이전 제목이 왜 <아빠를 용서한 날, 12월 23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이 더 매력적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액자식 구성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액자식 구성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도 나도 꼭 한번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액자식 구성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7번방의 선물>은 가장 기본적인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었는데 영화의 맨 앞부분과 뒷부분에 액자를 설치하여 가운데 부분을 회상 이야기로 진행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관객은 처음 설치된 액자의 존재를 상영 중 잊고 있다가 회상이라는 구조를 알게 되면서 영화에 흥미가 더 배가된다. 또,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중간에 존재했던 액자 내의 이야기가 보다 진실하게 들리는 효과가 있다.
이 영화 또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전 제목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제목을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를 용서한 날, 12월 23일>이라는 제목은 너무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용서라는 내용보다는 슬픔만을 많이 느꼈기에 용서와 성장에 대한 다른 힌트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존재하는 힌트는 커다란 풍선이었다. 프롤로그 부분에서 메여있던 풍선은 사실 교도소 사람들이 용구와 예승의 탈출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이것은 성인이 된 예승이가 아빠를 용서한 뒤, 더 이상 교도소 철조망에 얽매이지않고 날아가 버린다. 사실 영화 전체에는 너무 예쁜 교도소 방 인테리어, 아이를 몰래 데려오기, 그리고 착해도 너무 착한 교도소 식구들 등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이것은 한국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로 영화에 존재한다. 한국의 관객들은 해리포터, 인터스텔라 같은 스토리를 한국 내의 정서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앞의 영화 같은 경우는 외국에서 제작되었기에 다른 세계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레 판타지 장르에 대한 이해가 이어진다. 그렇기에 국내 영화에서 판타지를 이용할 때 <7번방의 선물>같은 방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교도소와 아이, 착한 바보를 표현하는 데에 적절한 장르의 응용이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아쉽게 1000만을 넘지 못했지만 여전히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하였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다. 그런 <수상한 그녀>는 최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상태이며 독일, 인도에도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고 미국판 리메이크도 협의 중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성공을 거둔 데에는 현지화 리메이크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수상한 그녀는 그대로 현지에서 수출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정서에 맞추어 내용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그리고 현지의 유명한 배우들을 섭외하여 홍보효과를 높인 것도 흥행을 불러일으킨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수상한 그녀> 자체에도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젊고 예쁜 시절로 돌아간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스토리가 잘 만들어진 영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해준다. 영화가 모든 관객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1000만 관객이 동원된 영화를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언제나 주제적인 어떤 것이 포함되어 감동을 일으킨 것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영화가 되는 것 같다. 잘 만들어진 영화일수록 3장구조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내용이 신선하고 낯설더라도 3장구조의 틀 안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참신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쓰는 나의 시나리오도 3장구조에 맞추어 분석해본다면 각 구성점에 맞추어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가장 신기한 점 중 하나였던 것인 구성점에 맞추어서 러닝타임이 어느정도 정해져있음을 영화보면서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습관이 몸에 베인다면 5가지 구성점에 대한 개념과 느낌이 더 와닿게 될 것 같다.
2022년 기준 다시 적어보고 싶은 글이라 발행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