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철원기행>은 시놉시스부터 웃음이 나는 독립영화였다. 아주 가볍고 동시에 아주 무거운, 그리고 매우 일상적인 소재.
특히 인디스페이스라는 장소를 처음 가서 관람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 기대되었다. 게다가 철원기행은 특히 봉준호감독이 극찬한 영화라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꽤 재밌었고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서 그 뒤의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내가 봐온 영화에서는 그래서 가족이 화해를 했다 혹은 결국 부부는 이혼을 했다 등의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족들의 어쩔 수 없는 동거를 그려놓고선 그게 다였다.
그래서 처음엔 허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생각할수록 좋았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내 상상의 영역이기도 했고 일부러 만든 결말은 어색함을 남기고 현실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현실성이 훼손되어서는 안됐다.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철원기행>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독립적으로 해결하고 침묵을 일삼는 아버지, 철없는 아들과 눈치 보는 며느리, 그리고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예민한 엄마. 내 가족이 아닌데도 마치 내 가족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혼을 선고하고서 같이 지내는 그 시간들은 영화를 보면서 불편할 정도로 숨막혔다. 전쟁의 서막처럼 고요하지만 오가는 눈빛들 속에서 나는 영화관에서 혼자 허파 끝까지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그래서 참 좋았다.
영화를 영화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일 같고, 내가 함께 겪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현실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원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은 퇴임식, 중국집에서 하는 조촐한 파티, 노력하지만 무시당하는 며느리 등. 심지어는 작은 부분이지만 엄마가 핸드폰 게임을 어색하게 하는 장면조차도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일상 가족의 집을 관음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는 아마 섬세한 연출의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철원의 눈 내리는 풍경을 생각하면 군인들의 눈 치우는 모습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감독이 철원의 눈 속에 불화상태의 가족이 갇힌다면? 이라는 프레미스를 제시한 것부터가 특이한 발상이었다. 물론, 영화 속에 군인 장면을 집어넣으며 웃음을 초래하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 이를테면 감자, 눈, 라면, 보일러 고장 등 어느 것도 어색하거나 갑자기 등장한 우연적 느낌이 없었다. 모든 것이 섬세한 의도적 연출 속에서 연결되어있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가정이 소통부재의 상태라고 생각을 한다. 현대 사람들은 가족보다는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가족은 그저 집이라는 공동 공간에서 사는 개개인의 사람들 같다. 그런 현대 가족의 모습이 영화에 잘 반영되어서 서로 문제가 있음에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은 채 그저 상황을 피하고 모면하려는 것이 해결책인 양 행동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문제는 풀어보려고 다가서면서 가족에게는 유연하게 굴지 못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는 웃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서 정작 가까워야 할 가족에게는 단단하게 굴어서 마침내 부러지는 파국을 맞는 것 같다.
너무도 평범한 이 가족을 통해 나의 삶의 태도를 생각해보고 돌이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