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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28. 2024

아윌비백 (I’ll be back)

2024년 5월 27일 월요일 - 105일 차

 나는 네 살부터 일기를 매일 썼다. 다들 내가 알아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기특해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일기가 <안네의 일기>처럼 될지 모른다고, 내가 성공해서 자서전을 쓰게 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중학생이 된 후로 일기 쓰기가 뜸해졌다. 일기라는 건 하루에 있었던 모든 일을 담아야 한다고 알던 때였다. 배우는 것이 늘어나고, 인간 관계도 복잡해지고, 생각까지 많아지니 일기로 쓸 게 너무 많았다.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일기 쓰기를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난 뒤로 일기를 쓰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대한민국에는 전쟁과 같은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서전은 내가 기억하는 걸로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나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가 한 선택들이 괜찮았다는 지지도 받고 싶었고, ‘열심히 잘 살았네’와 같은 위로도 필요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다. 성공해서 자서전을 쓰는 대신 자서전으로 성공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침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대해서 알게 됐다. 작가로 인정받은 사람들만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하고는 뿌듯한 마음에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신경 쓰며 글을 다듬게 됐다. 어쩔 땐 내가 뭐라고 이렇게 가르치는 듯한 글을 쓰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라이킷 수가 적은 날에는 시무룩해지고, 반응 좋은 다른 글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글 쓰는 게 어려워지니 브런치와도 멀어졌다.


 회사에 적응하고 나서는 빨리 승진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회사 셔틀버스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집에 있을 땐 지쳐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아직 밖은 밝고, 간만에 일도 개운하게 다 끝냈고, 컨디션까지 좋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고작 그런 걸로 눈물이 나는 게 어이가 없어서 더 울었다.


 회사 일 말고는 나를 위해 하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지속 가능한 취미가 필요했다. 글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일기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다 담아야 할 것 같고, 에세이는 깨달음이 있어야만 쓸 수 있을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글’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 마음을 편하게 했다. 글쓰기가 몸에 밸 수 있도록 매일 자정 전 한 문장이라도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워드 파일 하나를 만들어 매일 글을 썼다. 처음에는 ‘n일 차 성공’이라는 카톡 메시지로 엄마에게 인증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인증 없이도 스스로 해내고 있다는 데 뿌듯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속으로 며칠씩 글쓰기를 성공하고 있는지 셌는데 일수가 늘어날수록 기뻤다. 또, 글감 찾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쓸 게 너무 많아서 벅찼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곧 혼자만 쓰고 마는 글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를 다시 찾기로 했다.


 ‘매일 글쓰기 챌린지’라는 매거진 제목으로 매일 올라오는 글일 뿐 좋은 글은 보장 못한다는 변명을 해뒀다. 매거진에 글을 발행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올린 글에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나는 브런치 알림이 울릴 때마다 설렜다.


 거의 모든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 발행한 지 5초도 되기 전에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라이킷이 ‘내 글이 정말 마음에 든다’가 아니라 내 글이 누군가와 만나긴 하는구나, 딱 그 정도의 신호로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적당히 감시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감사했다. 이번에 브런치스토리로 돌아온 건 내 경험이나 글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매일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글쓰기가 다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혼자서만 매일 글쓰기를 할 때는 정말 한 문장만 써도 용서가 됐다. 하지만 브런치스토리는 조금 달랐다. 달랑 문장 하나를 위해 글 하나를 발행하는 게 엄청난 낭비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나 되지 못하는 브런치 작가로서의 책임감이라도 느낀 걸까. 그래서 정말 피곤한 날은 왜 피곤한지, 할 말 없는 날에는 왜 할 말이 없는지 한 문단이라도 썼다.


 동시에 회사 일도 바빠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생겼다.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와 시리즈가 한가득이다. 읽고 싶은 책도 밀렸고, 만날 사람도 많다. 내 삶이 활력을 찾는 데 브런치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쏟는 에너지도 조금 아끼려고 한다. 매일 글쓰기는 혼자 계속하다가 또 동력이 필요하면 브런치로 돌아올 거다. 아윌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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