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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pr 15. 2022

7 몰타에서 시칠리아 음식에 꽂히다

어쩌다 몰타 여행

이번 몰타 여행의 예상치 못한 수확(?)은 시칠리아 음식을 경험하게 됐다는 것.


몰타는 시칠리아와 역사적(중세 시대 시칠리아 왕국의 일부였다), 지리적(비행기로 50분 거리고 배로도 갈 수 있다)으로 가까워서 시칠리아 문화와 접점이 많고, 음식에서 특히 그렇다. 시칠리아 출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도 꽤 있다.


Panormus La Tavernetta di Mamma Ciccia 공항과 발레타 중간쯤에 있었던 이 시칠리아 가정식 식당.

몰타에 와서 처음 갔던 식당이 우연히 동선이 맞아 가게 된 시칠리아 가정식 식당이었는데, 여기서 시칠리아 음식에 완전 빠지게 됐다. 식당 이름은 Panormus La Tavernetta di Mamma Ciccia.


이 식당은 관광지 근처가 아니라 그냥 '동네'에 있는 식당이다. 11시 10분쯤 들어갔는데 12시까지 근처에서 일하던 경찰 몇 팀이 들어올 뿐 관광객 느낌의 손님은 없었다. 가게 인테리어도 투박하다. 원래 11시 30분부터 영업시간인데 일찍 도착해서 들어가 있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하신다.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


가장 시칠리아 전통적인 파스타로 먹어보고 싶다고 얘기하자 이탈리아어만 하시는 사장님이 아들을 데려 오신다(사장님 부부가 운영하시는데 요리는 이 어머니가 하신다). Sarde(정어리) 파스타와 다른 하나(이 다른 하나를 먹기 위해 꼭 다시 가야지 했는데 결국 못 갔다 ㅠㅠ)를 추천받았고, 정어리 파스타를 주문했다.


bucatino con de sarde 인생 파스타.


나는 정어리는 물론이고 면요리도 안 좋아하는데 정어리 파스타를 돈을 내고 사 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일단 반신반의하면서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이 파스타를 보는 순간까지도 내가 이렇게 이 음식에 반해 버릴 줄은 몰랐다.비주얼 자체가 되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냥 호기심반으로 먹었는데...와, 정말 한 입 먹고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놀라운 포인트는 음식 자체가 엄청 단순하다는 거. 나는 시칠리아는커녕 이탈리아도 가본 적이 없는데 집밥 먹는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을까. ㅎㅎ 일단 면이 딱 적당히 익혀져서(그 요리 프로에서만 봤던 알덴테라고 하는..) 식감이 되게 좋고 단짠이 딱 맞는다. 양이 굉장히 많아서(10유로짜리 파스타였는데 내 기준으로는 두 번에 나눠 먹어도 남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포장해가서 나중에 데워서 다시 먹었는데 간이 면에 베어서 다시 해 먹으니까 더 맛있는 신기한 음식이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맛있다는 느낌을 뛰어 넘어서 뭔가 '발견'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다. 글래스고 갔다 우연히 간 그리스 음식점에서 무사카를 먹었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새로운 걸 발견한 느낌.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걸 모르고 살았다니 하는 아쉬움까지 생기게 하는 맛이었다.


3개에 3유로짜리 이 까놀리, 정말 맛있었다..


파스타를 먹고 시킨 까놀리. 이 디저트도 진짜 너무 맛있었다(이 집이 유독 맛있긴 했다. 이 맛 기억 때문에 다른 집에서도 까놀리를 사 먹어 봤지만 이 맛이 안 났다). 과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디저트류 중에 제일 맛있었다. 보통 단 걸 먹을 때 드는 죄책감이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죄책감도 안 들었다. ㅎㅎ


이 식당으로 인해 시칠리아 음식에 꽂힌 이후로 동선에 맞는 시칠리아 음식점이 있나 엄청나게 공을 들여 검색하기 시작했다(여행 계획은 안 세웠지만 먹는 검색은 엄청 철저하게 함 ㅎㅎ). 고조 섬에도 시칠리아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파스타 집이 있었는데, 마침 숙소랑 멀지 않아서 고조 섬 도착하자마자 이 식당부터 갔다. 이 집은 구글 리뷰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칭찬을 엄청나게 해 놔서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이럴까 싶은 식당이었다.

첫날은 Norma라는 토마토소스 베이스에 가지 튀김이 들어간 시칠리아식 파스타를 포장해와서 먹었다(가게 안에 먹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가게). 와, 근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칭찬했는지 알겠다 싶은 맛. 여기도 면이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익혀졌지, 싶은 그런 맛이다. 역시나 되게 단순하고 집밥 같은데 자꾸 생각나는 맛.


둘째 날에도 또 가서 다른 파스타를 주문했다. Cacio e pepe라는 로마 쪽 파스타로 주문. 그냥 치즈랑 후추만 넣어서 만든 것 같은데, 이 파스타는 먹고 '헉 뭐야 이거'..이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ㅎㅎ 이 집도 또 한 번 못 가본 게 아직도 아쉽다. 가격도 착하다. 7유로에 대(10유로), 소(5유로)로 주문할 수 있다.


norma(왼쪽)와 cacio e pepe


 지금까지 내가 파스타 안 좋아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최근 몇 년 동안 메뉴 선택권이 나한테 있을 때 파스타를 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구나란 걸 느끼게 한 시칠리아 음식 경험. 또, 음식이 다른 문화를 접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채널이구나라는 걸 상기하게 된. 메뉴 검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탈리아어 사전까지 사용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ㅋㅋ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칠리아 아침밥 아란치니. 얘도 동네 베이커리에서 1-2유로 정도에 기본 메뉴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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