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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은 취재력으로부터 나온다

WORKLIFE 특집기사 취재기 : 변호사의 개업

by 보리 Bori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창의적인 콘텐츠는?


나는 자신만의 견해가 단단하게 드러나는 창의적인 글, 그리고 아름답게 표현된 글을 좋은 글이라 여겼고,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아마도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쓰는 성격에서 비롯된 바람이 아닐까 싶다. 창의력과 표현력은 나의 취약점이자 개발해야 할 능력이라 생각해 왔으니까. 그래서 늘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그런 내가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귀한 깨달음이 있으니, 그건 양질의 정보를 모아 재구성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유용하고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논리적인 글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요약·발췌·범주화 등 논리성이 나의 강점이기 때문에 이 파장이 미치는 영향은 내게 클 수밖에 없었다.


유시민은 논리적인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글에는 재능이 매우 중요한 장르와 덜 중요한 장르가 있다. 나는 글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문학적인(또는 예술적인) 글과 논리적인(또는 공학적인) 글이다. … 문학 글쓰기는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언가를 지어내는 상상력,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훨씬 덜하다. 조금 부풀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문학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문학적인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며 약점을 보완하려 애쓰던 나는 강점을 살리는 방법을 알게 된 덕분에 전보다 쉽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맥락화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법. 이번 글은 법률미디어 <로웨이브>이 특집 중에서도 취재의 끝판왕이었다 할 수 있는 기사를 어떻게 취재하고 완성했는지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백지라서 더 철저하게 취재했던 특집

<변호사 개업>과 <신입 변호사를 위한 실무 단축키> 두 특집은 변호사가 아닌 내게 생소한 영역이었다. 전문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깊이 있는 공부와 꼼꼼한 취재가 필요했다. 이 글에서는 개업 특집을 중심으로 취재부터 기사 완성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앞선 글에서 기획을 다뤘기에, 여기서는 취재와 사전조사가 어떻게 기획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집중한다.



0단계. 독자의 니즈 파악하기

창간 준비부터 많은 변호사를 인터뷰하며 알게 된 사실은 많은 변호사들이 ‘개업’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로웨이브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면 좋을까요”는 질문에 개업을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한 이유. 개업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1단계. 자료 수집

관련 책과 기사 등 레퍼런스가 분명한 자료부터 검색한다. 나중에 본 자료를 다시 뒤지는 일이 없도록 유의미한 자료들을 엑셀파일에 기사 제목, 매체, 일시, 내용, 참고 정보, 필진 정보 등을 쌓는다. 추후 참고하기 좋은 우선순위를 반영하면서.


스크린샷 2025-01-28 오전 9.59.12.png 수집한 정보를 제목, 매체, 일시, 내용, 참고 정보, 필진 정보로 구분하여 아카이브 한 파일

변호사라는 특수 타깃에 해당하는 정보인 만큼 공신력 있는 최신의 정보가 아주 많지는 않고, 오히려 브런치나 블로그, 유튜브 등 SNS에 개업 후기류의 글이 더 풍부했다. 어떤 부분이 도움 되었는지, 추가로 이런 걸 알려줄 수 없느냐는 등의 유의미한 댓글도 함께 모아둔다. '개업과 관련된 유의미한 자료는 일단 다 쌓는다'는 생각으로 검색하고 정리한다.


2단계. 수집한 자료의 연결, 범주화

다음으로 수집한 자료의 핵심 내용을 키워드로 추출하고 유사한 것끼리 묶어 범주화한다. 난삽한 자료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라벨링 하고 구조화 작업을 하면 개업 프로세스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단계별 중요 의사결정 지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소개된 콘텐츠가 다루지 않은 영역을 발견하고 우리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인식의 빈 땅 찾기'에 용이해지는 것.


범주화는 우리 뇌가 정보와 세상을 인지하는 핵심 프로세스다. <사고의 본질>에서는, 유사성을 인식하고 라벨을 붙여 머릿속 서랍에 정리하는 범주화가 ‘지성의 연료이자 불길, 원천이자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3단계. 특집의 메시지와 기획방향 설정

독자의 궁금증과 니즈를 고려하며 특집기사의 메시지와 전달 방식을 고민할 차례다. 앞선 글에서 중점적으로 소개한 '컨셉 잡기'인데, 이 단계에서는 취재를 하며 느낀 인상이 중요하다. 취재가 중요한 이유는 수많은 정보를 파악하면서 느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컨셉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의 개업 후기와 정보를 조사하며 느낀 건 "개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기, 방식, 형태, 위치, 규모 등 모든 것이 개인의 상황과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이 포인트를 살리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다양한 개업 사례와 의사결정 기준을 소개하자.


"자신에게 맞는 개업의 방법과 형태를 고민해 볼 수 있도록(메시지), 개업 변호사의 현실을 조망하고 개업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과 구체적 조언(정보)을 소개한다.”


개업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조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업의 현주소를 1편에서 정리하고, 2편에서는 실제 개업한 변호사 설문을 진행해 그 결과를 소개한다. 이어지는 3~5편에서는 '경영, 홍보, 수임'을 키워드로 다양한 개업 변호사의 미니 인터뷰를 모아 전달한다. 여기서 세 개의 키워드는 2단계에서 범주화를 하면서 도출된 것이다. 자주 언급되는 고민과 의사결정 요소는 변호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유추하고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어떤 통계 자료가 필요한지, 그리고 설문에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렇게 기획 단계가 완성되었다.

1편: 통계로 보는 개업의 현주소

2편: 개업 변호사 설문조사 결과

3~5편: '경영, 홍보, 수임' 키워드별 개업 변호사 미니 인터뷰



4단계. 취재원 찾기

특집 전체의 목표와 회차별 구성 방향이 확정되면 본격적으로 취재원을 찾는다. 각 파트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물색하되,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균형 있게 담아내기 위해 여러 기준을 고려한다.

개업 형태와 규모 면에서는 1인 법률사무소부터 중대형 로펌까지, 경력 측면에서는 저연차 변호사부터 개업 전선에 뛰어든 변호사부터 10년 이상의 경력을 로펌에서 쌓고 개업 3년 차인 변호사님까지. 또한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전통적인 경영과 수임 방식을 고수하는 사례부터 전 직원 재택근무와 같은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사례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그러면서도 홍보 전략에 있어서는 너무 포괄적이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를 피하고자 했다. 대신 현재 개업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블로그 홍보에 초점을 맞추어 취재원을 선별했다. 특히 블로그 운영 경험이 풍부하여 콘텐츠 기획부터 작성, 관리까지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뷰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자료 수집에 이어 취재원 선별까지 설득력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경쟁력은 결국 ‘취재’에서 나온다.



5단계. 기사 진행

3~5편은 기존에 소개했던 에디터 업무일지의 컨셉편에서 소개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생략하고 여기선 취재의 끝판왕에 해당했던 1~2편만 다루고자 한다.

개업변호사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다양하게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하나는 정량적인 데이터로, 하나는 정성적인 목소리로 꾸려보고자 했다.


1편. 통계로 보는 개업 변호사의 오늘

내가 개업을 고민하는 변호사라면 어떤 정보가 궁금할지 예상하며 질문을 구성하고, 그에 해당하는 정보들을 수집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자료가 부족했고, 특히 대부분이 너무 오래된 자료들이라 기사 활용이 적절치 않아 보였다. SOS를 요청하자 편집장님은 "데이터를 한 방향으로 엮어 큰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의미화를 위해 데이터를 제외하지 말고 숫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자. 변호사들이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도 있겠지만, 산발적이던 데이터가 '개업'이라는 연관성 아래 하나의 기사로 엮인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셨다.

스크린샷 2025-01-28 오전 9.00.59.png 통계 형식의 기사를 위한 첫 콘티


조언대로 의미화에 집착하지 않고 정리하였으나, 완벽주의자 에디터 S는 집요하게 최신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 대법원 자료실에서 사법연감을 찾아내고,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데이터로 수익을 분석했으며,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최신 데이터를 요청했다. 그 결과 변호사 수, 지역별 분포도, 법률시장 규모, 수임료/소득, 취업률, 개업 비용, 개업 형태, 개업 시기, 개업 변호사 수임 건수, 지출 비용(인건비, 임대료, 광고비), 폐업 등 당초 조사하고자 했던 거의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사가 발행되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조회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인기의 비결이 궁금해 다시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시 보니 정말 밀도가 터지는 기사였다. ‘독자는 귀신같이 알아본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로웨이브 2024 조회수 TOP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양질의 정보가 독자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증명하는 의미 있는 지표가 되었다.


스크린샷 2025-01-28 오전 9.34.28.png GA에서 조회되는 창간 후 1년 간 최고 조회수 페이지 TOP4 그래프



2편. 개업 변호사 33인이 말하는 ‘개업의 기쁨과 슬픔’

매거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설문 형식의 기사를 구상하며 호기롭게 설문을 시작했다. 변호사님들께 설문 응답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변호사님들의 경험담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번 특집은 어떻게든 꼭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우선 취재원 조사를 했던 변호사님들께 인터뷰 섭외 요청을 드리며 메일을 드렸다. 그리고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며 SNS에 개업 콘텐츠를 올려주신 분들도 한분 한분께 쪽지를 보내고, 연락처를 받아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백통이 넘는 메일을 보내고 33명의 변호사님께 귀중한 응답을 받았다.


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매우 상세하고 진정성 있어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기사를 만들 수 있었다. 설문 결과는 독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래픽으로 시각화했고, 각 응답에서 도출된 핵심 인사이트를 뽑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스크린샷 2025-01-28 오전 9.48.18.png 개업 설문에 응해주신 변호사님들에 대한 상세 정보



(참고) 로웨이브 <변호사의 개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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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개업 변호사의 오늘 - 변호사의 개업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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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변호사 33인이 말하는 ‘개업의 기쁨과 슬픔’ - 변호사의 개업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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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서 경영자로 거듭나는 5가지 수업 - 변호사의 개업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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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당 10만 원 대신, 셀프 홍보 택한 변호사들 - 변호사의 개업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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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변호사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수임 가이드 - 변호사의 개업 vol.5




창의성은 노가다에서 나온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탐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알고 이해함은 물론, 지겹도록 반복되는 고된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노가다’라고 부른다면 그 분야의 노가다를 즐겁게 하는 사람이 천재입니다. 과학의 창의성은 노가다에서 나옵니다.” - 물리학자 김상욱, 뉴스레터 <과학산문> 7편 중


콘텐츠도 다르지 않다. 양질의 정보를 얼마나 수집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구성하고 재맥락화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성실과 노력이라는 별 볼 일 없어 보였던 내 장점이 귀한 역량이라는 걸 발견했다는 것. (이 경험을 계기로 나는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이 변화는 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 큰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취재력이 경쟁력이 되고, 창의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또 한 번의 취재력 끝판왕 콘텐츠를 기획하게 되는데…

다음화에서 <신입 변호사를 위한 실무 단축키> 취재 과정이 이어집니다.



다음 글 : 가내 수공업으로 완성한 취재의 끝판왕 - WORKLIFE : 신입 변호사를 위한 업무 단축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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