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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웅 Dec 30. 2022

꿈을 꾼다, 또다시

1장 꿈 이야기

음악감상카페를 차릴 계획이라고 말했을 때 격하게 동의한 사람이 많았다. 황학동 LP 가게 주인은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완전 대박이죠!”라고 말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데리고 가면서까지 카페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LP 팔아먹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가 운영하던 카페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19일, L은 음악감상 전문카페 <음악이야기>를 시작했다. 찬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L은 미처 알지 못했다. 나이 먹으면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온다는 생각만 했지 카페를 운영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더 빠지고 밤마다 술을 마시는 탓에 배가 더 나온다는 것을.      


호기롭게 카페를 시작한 지 두어 달쯤 지난 그 겨울에, L은 주저앉고 싶었다. 가혹할 만큼 손님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없을까 싶었다. 오죽했으면 ‘혹시 건물 1층 출입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폭처럼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건물 출입구를 막고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혹시 출입구에 더러운 오물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돼서 실제로 내려가 확인까지 했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 누가 밤에 돌아다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밖을 나가보면 길거리에도 다른 집에도 사람이 많았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인근 가게에 손님이 많은 것이 긍정적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가게에 사람이 많은 것은 L의 마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문을 연 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이 없으면 직원들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L이 그들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다.


“에이,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연령대가 좀 있잖아? 이렇게 추운 날에 돌아다니면 위험해. 심근경색 올지도 몰라. 집에 일찍 들어가야지. 나부터도 그러겠네.”


L이 애써 개그 본능을 발휘한 것은 설마 한 테이블의 손님도 받지 못한 채 퇴근을 하겠냐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불행하게도 예감은 적중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엔 L을 울적하게 하는 손님 아닌 손님들이 꼭 있다.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떼쓰다 나가는 사람, 없는 메뉴 찾으며 왜 없냐고 따지는 사람, 들어왔다가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시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가면서 한 마디 남긴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해도 음악실에 있는 L에게는 잘 들렸다.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순간에 아는 사람이 오는 거였다. 가끔(아주 가끔)은 손님이 많은 날도 있는데 하필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에 온 지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카페 사업을 반대하며 말렸던 사람이 왔을 때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L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첫마디부터 폐부를 찔러 온다. 일행 중 한 명이 L의 맘을 대신해 말한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 거야.”

그래, 맞아. L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맞장구친다. 다음 순간 누군가의 한 마디에 L의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아까 그 집은 많던데 뭐. 그 집도 생긴 지 얼마 안 됐잖아.”

이런 젠장. 

“월요일엔 보통 손님이 없더라고.”

또 고마운 친구가 위로의 말을 해준다. L은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지만 그 역시 이내 무너지고 만다. 

“그렇지도 않아. 내가 자주 가는 집은 월요일에도 꽉꽉 차.”

‘아, 짜증! 이 인간은 왜 온 거지? 거기를 월요일마다 가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감정을 들키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L은 <타짜>에 나오는 고니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용썼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차차 잘 될 거야.”

고마운 지인은 그렇게 일단락 지으려 애쓴다. 걱정하는 투의 말로 시작한 그들의 위로는 시간이 갈수록 충고로 변하곤 했다. 인테리어가 어정쩡하다, 맥주를 싸게 팔아서 일단 사람들이 오게 해야 한다, 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식의 통상적이고 무작위적인 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내가 장사를 해봐서 알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방식을 성공담처럼 늘어놓았다. L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그가 술장사를 하다가 망했다는 거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를 한 방에 잠재우는 다른 동창이 있었다. “그렇게 하니까 망했지.” L은 그 동창이 그토록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L은 점점 지쳤다. 내심 그들이 그만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다른 손님이 와야 바통 터치하고 간다면서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비싼 와인을 시켜놓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들이 올려주는 매상이 L을 우울하게 했다. 그런 날이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됐다. 세월이 흘러도 카페가 잘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카페를 접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 보는 것이라는 충고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카페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면서 L의 생각은 둔감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선 조난객의 심경으로 그저 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열두 시간 영업 중에 선곡하는 음악은 180여 곡, 손님 신청곡보다 대부분 L이 선곡한 음악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음악이 백색소음처럼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때쯤부터는 듣기에 곤혹스러울 정도가 돼갔다. 어느 날은 처량한 노래가 손님 하나 없는 카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게 싫어 중간에 끊어버린 적이 있었다. 음악이 멈춘 카페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L은 음악실에 우두커니 앉아 고개를 떨궜다. 카페를 준비하면서부터 힘들었던 지난 몇 개월의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가슴에 들어찼다. 눈이 뻑뻑했다. 목울대가 울렁거리는가 싶더니 이어 입술이 떨렸다. L은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씨, 나 왜 이러냐…….”     


꿈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꿈에서는 마음먹은 대로 됐지만 현실은 반대로 이루어진 경우가 더 많았다. 오랫동안 꾸어왔던 꿈은 늪이 돼버린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자만했었다는 것을 쓰리게 인정해야 했다. 개업 전에 통화했던 카페 주인 중에서 비교적 손님이 많은 카페를 떠올렸다. 카페가 안정권에 들어서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그들의 말을 들을 때 L은 속으로 ‘나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카페가 잘되기까지 그들이 시도했던 많은 일과 숱하게 겪었던 마음고생을 들을 때도 L은 자만했었다. 꼭 겪어봐야 깨닫는 사람이 있다더니 L이 그랬다. 카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프게 인정해야 했다. L은 오픈 전에 읽었던 카페 관련 책을 꺼내 다시 읽었다. 책의 내용이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쓰라린 실패의 경험과 그들의 조언이 눈에 들어왔다. 


겸허한 마음을 안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안타깝고 미안한 일이었지만 감당하기 벅찬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개업하면서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과 아픈 이별을 했다. 영업시간, 메뉴, 디스플레이, 오디오 기기 등 필요한 것은 바꾸거나 보완했다. 경영 공부를 위해 독서와 인터넷 검색에 매달렸다. 앞선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카페 경영 실패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없애거나 고치려고 힘썼다. 앞으로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를 만들었다. 비로소 체 게바라가 말한 리얼리스트가 돼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다시 뜨거운 가슴에 담았다. 그 무렵 방영하고 있던 드라마에 실린 노래 하나가 L의 마음에 꽂혔다. 서영은의 <꿈을 꾼다>였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

 잠시 외로운 날도 있겠지만

 세월이 흘러서 시간이 가면

 모두 지나간다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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