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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May 06. 2022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

취향이 확고한 사람

 잘 웃는다. 리액션이 좋다. 이름하여 ‘낙천가’

 삶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나는 에니어그램 7번이다. 에니어그램 유형 중에 가장 열정이 넘치며 긍정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생각소스’를 읽으며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 페이지를 한 줄 한 줄 채워나가던 중에 생각이 막혔다. 네이버 검색창에 ‘에니어그램 7번의 이상형'을 검색했다. 깜짝 놀랐다. 내가 글 쓰고 있는 주제의 방향성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름! 그렇지, 내가 이런 사람이지. 나를 이해하는 순간 나의 글은 살아난다.     


7번이 끌리는 사람
-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
- 자신만의 방향성이 확고한 사람
- 혼자 설 수 있고, 자신만의 흥미진진한 목표가 있는 사람
-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녀는 오늘도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곧장 맥주 냉장고 앞으로 성큼 걸어간다. 예측대로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독일 맥주 에딩거 바이스비어를 꺼낸다.

“언닌 또 에딩거네?”

“응~ 난 이게 딱 내 입맛이야. 목 넘김이 좋잖아.”     

 스물네 ,  직장에 취업해  둥지를 벗어나 날기 시작했던  시절 직장동료로 그녀를 만났다. 고작 편의점 맥주  캔을  것뿐인데, 항상 편의점 맥주 코너를 지날 때마다 확고한 취향의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의 취향 ‘에딩거 바이스비어’는 그녀를 닮아있었다. 새콤한 향에 첫맛은 톡 쏘는 탄산이 강했지만 빠르게 사그라들어 부드러웠던 목 넘김은 통통 튀는 첫인상으로 시선을 끌었지만, 편견 없이 넓은 포용력을 가져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그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취향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취향을 타인에게 자신 있게 드러내는 사람에게서는 내면의 깊이와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 취향에선 여러 경험을 통해 거쳐온 그 사람의 오랜 역사가 엿보인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상대를 잘 다루는 법도 아는 사람 같다. 한마디로 자아 성찰이 잘 된 사람.     

 그녀가 에딩거를 집어 들 때면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당당히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모습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가늠이 안 가는 하얀 도화지였다. 내 취향이 뭔지 모르는 무색무취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담아내겠다는 욕심만은 가득했다. 모든 세상 풍경을 한가득 내 도화지에 담아내고 싶지만, 혹여 실수라도 할까, 연필로 그렸다 지우고를 반복하던 그런 상태.     


 어린 시절, 부모님께 들었다. 뭔가를 살 때는 ‘꼭 필요한 것과 안 사도 큰 지장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배웠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인지 따져보고 검증하는 ‘가성비’가 취향이 되어버린 나. 그러다 보니 맥주 코너에서 집는 것은 가장 값이 싼 맥주. 이제 막, 소주와 맥주 맛 정도 구분하고 어떤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오늘은 소주를 집어 들어야 할지 맥주를 집어 들어야 할지 알게 된 정도였던 내겐 그냥 맥주 맛만 나면 되고 지친 하루를 위로만 하면 되는 모양만 맥주인 것, 그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것. 그런 맥주를 택했다.     


 에딩거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8년이 되어간다.(그녀는 그 후 나의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머리가 다 크고 나선 진심을 다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깨부순 그녀는 내 생활 전반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에딩거 그녀와 영국 옥스포드에서

 나는 출근길에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햇볕이 따스한 날엔 푸른 잔디가 가득한 공원에 누워 햇볕을 만끽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엔 느긋한 재즈를 들으며 집안일을 하는 것을 즐기고, 청소가 끝난 뒤엔 케냐 AA 드립커피를 내려 산뜻한 커피 향과 함께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스트레스가 가득한 날엔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달릴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취향이 확고해진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그녀와 에딩거 한잔이라면 더없이 좋다. 나는 바뀌어 갔다.     


햇빛이 따사로웠던 날 공원에 누워 바라본 하늘

 그녀를 만난 후 내 도화지는 형형색색 수채화 물감으로 가득하다. 닮아간다고 한다. 어느새 나만의 취향이 생기고 확연하게 보이는 결과에 기뻐하며 가성비가 아닌 나를 위한 취미도 생겼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확고해진 것이다.     


 하얀 도화지, 그 여백을 채워간다. 다 채우면 다른 도화지를 꺼낸다. 비어도 좋고 가득 차도 좋은 나의 도화지, 오늘은 꽤 풍성하다. 5월의 한복판, 일상이 바빠서 좋고, 사람이 있어서 좋고, 에딩거 그녀가 있어서 좋다. 역시 난, 긍정적인 에니어그램 7번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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