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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Jan 06. 2022

파리 에펠탑, 그곳에 내가 있다.

누가 파리지앵을 평할 수 있나

 세계는 언제나 불편한 것이었다. “뻔히 저기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고통”이라는 김현 선생의 일기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결핍이 마치 화수분처럼 터져 나올 때, 나는 파리 여행을 택했다. K-장녀로 살면서 부모의 기대와 잔소리에 지쳐 갈 때 즈음이다.


“파리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데 정말 별로였어, 프랑스 사람들 불친절하다고 하던데, 영국은 유럽의 일본, 프랑스는 유럽의 중국이래. ”

 떠나고자 택한 곳이 유럽이었고, 간절하게 가고 싶은 곳이 프랑스였던 나에게는 지인들의 볼맨 소리가 부모의 잔소리만큼 가슴 밑으로 가라앉았다. 무거웠다. 떠나야 할 명분을 찾는 나에게 문득 떠오른 김현 선생의 문장, 뻔히 거기 있는 줄 알면서 다가가면 더 멀어진다는 중의적 문장은 오히려 나의 인식의 세계의 틀을 깼다. 더 가고 싶었다.


 사실, 나는 목적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삶을 꿈꾸는 다소 철없어 보일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아무 때나 충동적으로 떠나야 억누르고 타협했던 현실을 그나마 잊을 수 있는데,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오히려 눈치를 줄 뿐, 날 틀 안에 가두고 멀리 가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불편한 세계로의 진입은 기회를 잡는 자에게 오는 것인가. 맞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무려 9일간, 유럽을 여행할 기회를 잡았다. 처음엔 런던에서만 머물며 런던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올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파리를 경유하는 항공권을 특가로 잡게 되어 예상치 못한 2박 3일간의 파리 일정이 생겼다. 파리와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2박 3일, 파리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년이 흐른 지금도 파리를 떠올리면 그때의 아련함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진다.


 파리에 도착한 2019년 11월 13일, 그날 밤 에펠탑은 더욱 화려하게 반짝였고, 한 달이나 남은 크리스마스 준비를 일찍 시작한 상점들 앞엔 울긋불긋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연말연시의 따스한 느낌을 더했다. 파리에 도착한 그 날밤, 음식이 맛없다는 영국에서 미식의 나라 프랑스로 넘어온지라 잔뜩 기대하며 프랑스 정찬 코스요리를 예약했고, 에펠탑 근처의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은 테이블이 대 여섯쯤 놓여있는 것을 보아 소수의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는 셰프의 신념이 느껴졌다.


 이미 프랑스에 대한 인식은 지인들에 의해서 각인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음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지켜보게 되었다. 우리가 시킨 메인 요리가 나올 때 꽤 많은 인원이 주방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셰프는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 앞 테이블에 자리 잡은 그들과 아주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입가에 연신 미소를 머금었다. 불어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로만 보아도 그들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교환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셰프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프랑스식 인사를 건넸다.


“봉수아!”

 친근한 인사를 나누고 주방이 아닌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격 없이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어쩌면 친구 이상의 감정을 나누며 대화했던 사람들도 그냥 손님일 수 있겠구나...

 다시 다가온 그는 서툰 영어로 우리에게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을 주었다.

“어디서 왔어요? 왜 푸아그라를 많이 먹지 못했나요? 당신이 푸아그라의 맛을 잘 몰라 안타깝군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진 건, 그만큼 자신의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의 단호한 어조 때문이었다. 먹었어야 했다. 먹어서 “맛있어요!”라고 답변을 해주면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푸근한 미소를 보았겠지.


 끝까지 같은 미소로 바라보는 셰프의 미소 뒤로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황금빛 조명을 발하며 프랑스 파리의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공간, 따뜻한 미소가 있는 공간, 나는 그곳에서 아무 때나 불쑥 터져 나오는 잠자고 있는 스트레스 따위는 다 잊었다.


 지인들의 평가가 틀렸다. 불편하다고 뻔히 말하는 세계는 겪어봐야 안다. 겉으로 보기에만 잘 사는 가족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만 멋있는 나의 직업도 고충이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가라앉은 침전물이 셰프의 미소에 다 녹았다.


 맞다. 나는 여행이 답이고 내가 결정한 내가 원하는 그 장소에서 누리는 참된 여행을 누리는 것이 답이다. 나에게 파리는 할아버지 세프 같은 곳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파리 에펠 탑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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