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글쓰기
사람은 어찌되었든 누군가와 소통하며 산다. 그게 때로는 가족이 되고,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동물이 된다. 최근에는 그러한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여러 디지털 세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누군가가 말하는 참된 ‘고립’이란 사실 거짓에 가깝다. 고립된 삶을 산다는 누군가 역시도 어느 공간에서, 때론 그게 사람이 아니고, 대면하는 관계가 아닐지라도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하는 다양한 방식의 소통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추천’이다. 추천은 곧 내가 어떠한 것을 경험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며 그렇기에 추천 받았던 것들을 찬찬히 되돌아 볼 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물건
수업과 근무를 집으로 들고 들어오게 되면서 갖춰야 했던 필수품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는 키보드를 꼽겠다. 사실 노트북으로만 화면을 볼 때는 내장돼 있는 키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이유를 잘 몰랐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듯이, 집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오자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필수적 요소가 된다. 키보드도 그렇다. 내가 구입한 물건은 해피해킹의 프로2 모델. 우연히 티비 프로그램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뒤지고 뒤져서 해당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출연자가 선택한 물건에 대한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저 사람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모든 히스토리를 기억한다는데..!” 그리고 실제로 이 모델은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구입한 이 물건은 직접적 소통 없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산 물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알고리즘
가위가 자주 눌리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몸은 피곤한데, 생각이 너무 많으면 가위가 눌린다. 흔히 가위가 눌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몸은 잠들었는데 정신은 깨어있는, 그래서 정신이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최근엔 여러 고민과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스스로도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생각들을 침대 위로 끌고 오게 되어 ‘잘 자는 것’에도 영향을 주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생각을 멈춰줄 요소가 필요한데, 나는 그게 유튜브 영상이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시청만 할 수 있는 영상이 필요했다. 유튜브로부터 우연히 추천받은 ‘수제 사탕 만들기’ 영상은 아주 적절한 역할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영상을 시청하고 스르륵 잠에 빠져서 계속해서 해왔던 고민인 불면증과 가위눌림 현상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 안에서는 나와 같은 불편함을 겪는 여러 명의 사람이 존재한다. 내가 고민하는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고 소통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 역시 의미 있었다.
*생각
올해 초 클럽하우스의 폭풍 같은 카오스 속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정말 전문가 행세를 하는 유명인 지망생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조금 환멸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그 사람은 내가 평소 관심있게 생각하던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목소리 톤이 너무나 차분해서 아직까지도 생생히 그리고 좋게 기억하고 있다. 그 대화를 들으며(참여하지 않고 엿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한 생각이 있다. 바로 가깝지만, 무례한 사람과의 소통 방법. 대개 가까운 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할 때는 인간관계를 끊을 생각을 하거나, 혹은 가깝기 때문에 그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고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를 교정하거나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자만이다. 그냥 내가 그 사람과 가깝게 된 이유와 장점을 되짚으며 내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함께 했던 성공적 경험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포인트는 성공적 경험. 본인의 상황을 예시로 설명해주었는데,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기록하기는 힘들었다. 대화를 들으며 나는 내 주변에서도 작지만 함께하는 성공적 경험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고 짧은 보상으로 “성공”이라고 작게 외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다양한 추천과 선택 그리고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알고리즘의 특성상 한 곳에 치우치기 쉽지만 결국 그 선택도 내가 맺은 누군가와의 결실 아닐까. 내 방의 물건들. 내가 쓴 일기와 기록. 그리고 자주 내뱉는 말의 습관 마저 온전하게 내 것으로만 된 것은 없다. 부모, 형제, 친구와 동료 그리고 온라인에서 만난 많은 사람의 말과 행동, 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2021-07-01 목요일의 글쓰기] '내가 누구의 혹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서 아주 잘 쓴 혹은 잘 경험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