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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18. 2020

어느날의 저녁상

아이가 계란초밥을 먹고싶다고 했다. 부드러운 파운드케익을 한입 베어물고나서 갑자기 한 말이었다. 예전에 일식집에서 계란초밥을 먹고 와서 집에서 한번 만들어먹었더니 그 기억이 갑자기 났나보다. 아이들의 기억은 참 희안해서, 어떤 기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졌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계란초밥이 파운드케익과 함께 떠오르다니 말이다. 


저녁메뉴 하나가 정해졌으니, 사실 속으로 안도한다. 머릿속으로 몇가지 그림을 그려내고 순서를 정한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모임을 할때는 물론이지만, 실은 보통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도 미리 순서를 정하고 움직이는 편이다. 아무래도 오븐에서 구워낼 디저트를 제일 먼저 만든다음에, 계란 초밥은 계란을 미리 말아두어야 하고, 미소국과 튀김은 식사하기 직전에 만들어야 맛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안치고, 먼저 모찌가루를 꺼냈다. '언제 한번 만들어야지'라고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는 다음에 하자고 미루던 일이었다. 쉬 상하는 재료가 아닌데도 찬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모찌가루를 볼때마다 괜한 미안함이 들었었다. 커다란 볼에 모찌가루를 넣고, 설탕, 소금, 베이킹 파우더와 베이킹 소다 조금씩, 그리고 우유로 갠 다음, 집에 있는 여러가지 견과류를 잘게 부숴 넣으면 끝이다. 반죽은 오분만에 끝날 정도로 간단하지만 오븐에서 구워내는 시간은 40분정도 걸리는데다가 식히는 시간도 필요해서, 늘 시간을 넉넉히 두고 만들어야 하는 디저트다. 마트에서 파는 모찌꼬 1박스, 1파운드면 파운드케익 틀 2개 분량의 찰떡이 만들어진다. 오늘 저녁 디저트로 잘 어울릴것 같아 기대가 된다. 


계란 여섯개를 풀고, 다시국물을 좀 넣고, 쯔유로 약하게 간을 했다. 달콤한 맛이 나야해서 설탕도 빠질수 없다. 계란을 얇게 익히며 여러번 돌돌 말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계란이 너무 익어서도 안되고 너무 안익어도 안된다. 여전히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맨 처음 계란말이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 붙였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제법 네모지게 모양을 만들어가며 계란말이를 완성하고 나서는 한김 식힌후에 냉장고에 넣는다. 약간 차가워져야 계란은 더 달콤해져서 초밥에 올리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초밥을 먹는 날은 평소보다 쌀의 양을 많이 잡는다. 오늘도 밥을 넉넉하게 했더니 계란 스시만으로는 어째 부족해보인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다행히 유부가 있다. 함께 만들어 내면있길래 함께 만들면 안성맞춤이겠다 싶었다. 세모 모양의 조그만 유부보다, 우리 가족은 네모난 커다란 유부를 좋아한다. 간도 진하고 밥을 가득 채우면 유부초밥 두개만 먹어도 든든하다. 


그래도 국물이 있어야지. 다시 냉장고를 열어 미소된장과 파, 두부를 꺼낸다. 미소국만큼 쉬운 요리도 없다. 다시 국물에 된장을 풀고 한소끔 끓어 오르면 불을 끄고, 파와 두부를 넣어 익힌다. 아, 튀김. 다시 냉장고를 열고 당근과 양파, 브로콜리, 그리고 고구마를 꺼낸다. 당근과 양파는 가늘게 채를 썰고, 브로콜리는 한입크기로, 고구마는 길쭉하게 자른다. 튀김가루를 얼음물에 개어 일인당 야채튀김, 브로콜리튀김, 고구마튀김 하나씩 먹을만큼만 튀겨낼 생각이다. 아이보리색 튀김가루가 기름에 닿으면 맛있는 소리를 내며 팝콘처럼 부풀어 오른다. 튀김은 일이 많고 번거로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작은 냄비에 기름을 많이 쓰지 않고도, 조그만 크기의 야채는 금새 튀겨낼수 있다. 난 튀김용 긴 젓가락으로 작은 야채를 튀겨내는일이 싫지 않다. 참, 튀김을 찍어먹을 장은 따뜻하게 내어야 맛이 좋다.


어쩌다 보니 아이의 계란초밥으로 시작된 오늘 저녁이 한상이 되었다. 한시간 정도 꼬박 서서 저녁상을 차려냈는데, 이십분도 채 안되어 식사가 끝났다. 한김 식혔던 찰떡을 먹기좋게 썰어와 디저트로 다 먹었는데도 삼십분이 넘지 않았다. 식탁위의 그릇들이 싹 비워지니 기분이 좋긴 한데, 이거 뭔가 허무한 기분도 조금은 든다. 만들고 치우는 시간이 먹는 시간의 세배는 걸리는것 같으니. 


오늘의 저녁: 

부드럽고 달콤한 계란초밥

간이 진한 유부초밥  

당근 브로콜리 고구마 튀김

두부를 잘게 썰어넣은 미소국 

모찌가루와 견과류를 넣은 찰떡 



덧. 한번쯤 식사준비나 저녁상에 대한 자세한 관찰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써보니 부끄럽기만 하네요. 어떻게 하면 더 읽고 싶고, 먹고 싶고, 향이나 맛이 느껴질것만 같은,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것만 같은 글을 쓸수 있을까요? 푸훗. 밥을 짓는내내 머릿속에 담겼던 그럴싸했던 이야기가 꺼내 놓으니 영, 별로지만요, 그래도 맛있게 오늘 저녁 한끼 잘 먹었으니 그걸로 우선은 좋았습니다. ^^





커버이미지 Photo by Max Delsi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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