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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 임정아 Oct 26. 2023

뇌하수체선종과의 동행 3

엄마 맞아? 엄마는 방석이야.

"엄마 맞아? 엄마는 나에게 방석일 뿐이야"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막내딸이 보낸 장문의 문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요즘 나에게 엄마는 없어. 나 혼자 위로받고 따스하다고 느낀 것뿐이야. 엄마는 나에게 어떤 사랑도 관심도 주지 않는데 그냥 나 혼자 거기 앉아있다고.'

큰 아이가 아프니까 엄마인 나의 생활이 큰 아이 우선으로 바뀌었다. 식단도 생활패턴도 모두 큰 아이에게 맞추고 싶었다. 고1 막내딸이 참다 참다 터뜨린 결과는 참담했다.


집을 나가겠다는 말이 그냥 엄포인 줄 알았다.

"언니가 아픈데 엄마를 좀 이해해 주면 안 되겠니?"

"언니도 언니 삶이 있듯이 나도 내 삶이 있어."

어쩜 저렇게 이기적일까 생각했다. 언니가 진단받은 후 괜찮으냐 물어온 적도 없었으니. 공부욕심이 있는 아이여서 책상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어느 날 이불 베개를 모두 가지고 집을 나가버렸다.

물어봐도 아무 대꾸도 없이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스터디카페에서 알림 문자가 오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잠은 어디서 사니? 밥은? 어디서 씻고?'

아무리 애타게 문자를 보내도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아이.


6주가 흘렀다.

매일 좋은 글귀와 편지를 썼다. 문자로 전하기도하고 진으로 찍어 메일로 전송했다.

'너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을 습관처럼 해서 미안해.'

'너의 의견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너를 자꾸만 가두어 두려고 해서 미안해.'

'엄마는 너를 딸 셋 중 가장 사랑 주고 키웠다 여겼는데 돌아보니  내 욕심이더구나.

다섯 살의 네가 가장 예뻤고 그때 엄마도 가장 행복했기에 너를 그 시절에 가두려고 했나 봐. 반성하고 있어.'


그 와중에도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한 번 더 다녀왔다. 혈액검사에서 호르몬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진단 당시 299였던 수치가 54가 되어 기뻐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

"24까지 떨어져야 됩니다."

약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니 코스모스 피어있는 둘레길을 따라 삼삼오오 시람들이 정겹게 걷고 있다. 딸을 어루만지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눈을 맞추는 딸,

순간 또 눈가가 촉촉해진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큰아이는 병이 들고 , 둘째는 재수하느라 상전노릇이고 막내는 집을 아예 나가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딸 셋을 누구보다 잘 키웠다고,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도 별 탈없이 지나갔노라고 , 그 흔한 중2병도 없었다며 큰소리치던 나였다.


시련은 한꺼번에 몰려오나 보다.

"하나님, 제게 세 딸을 돌려주세요, 건강한 아이로, 순종할 줄 알던 아이로, 따스했던 막내로 돌아오게 도와주세요"

기도하고 기도했다.  (결혼하며 시댁 종교를 따라 교회를 멀리했던 내가 25년 만에 다시 교회에 나가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방석 같은 엄마가 아니라 사랑 주고 귀 기울이고 안아주는 엄마이고 싶었다.

아픈 아이뿐 아니라 딸 셋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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