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우미 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에서 앱 교육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신규 가사도우미의 대부분이 평균 연령 55세 이상 이상의 중국 교포였는데 그들의 모바일 친숙도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 업무 초반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던 전화 한 통이 기억난다.
"거기 (직업) 소개소죠? 일자리 찾는 법 좀 알려주세요."
- "여사님 파트너 앱 켜시고 화면에 일자리 찾기 누르시면 쭉 나올 거예요. 화면 한 번 내려보세요!"
"화면 내리는 거 어떻게 해요? 안 되는데?"
- "................"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기간에 교육 성과를 보여주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던 나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핸드폰 화면 내리는 방법도 모르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잠시 위축됐지만 뱉은 말이 있으니 정규직이 되려면 무엇이든 시작해야 했다.
2주는 무조건 닥치는 대로 해보고,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며 유의미한 교육 방안을 모색했다. 그다음 2주는 내가 생각한 것들을 누구나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고 한 판에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막하기만 했던 일의 틀이 잡혀가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내가 직접 어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신이 나기도 했다.
#1. 계속 부딪히며 답 찾기
누군가에게는 핸드폰이 그저 전화 수, 발신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교육 대상의 수준을 실제보다 높게 잡았다면 내가 만든 교육 프로그램은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테스트를 해가며 여러 상황과 부딪혀보기로 했다. 나의 단어로 정보만 전달하는 소모적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가사도우미들이 앱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포인트와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나 표현들을 꼼꼼히 파악했다.
아무래도 앱에서스크롤을 이용하면 다양한 일자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손가락으로 슥슥 올려보세요."라고 말하면 전화기 너머의 많은 분들이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화면을 올리려 했다. 의도하지 않은 클릭 때문에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다. 다시 메인화면으로 돌아가지 못해 애를 먹은 경우도 많았다. 직접 손가락을 움직여가며 터치감을 알려드릴 수 없으니 표현을 다듬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 표현 저 표현을 써가며 상대가 잘 이해하는지 테스트를 했고 시행착오 끝에 대부분이 바로 이해하는 표현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화면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아래에서 위로 스윽 살짝 끌어올려보세요. 그럼 밑에 있던 글씨들이 위로 올라오면서 일자리가 보일 거예요!
앱 설치 교육을 할 때도 난감한 부분은 있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셔서 **을 검색하시라" 고 말하면 '그 글이 뭐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핸드폰에 빨강 파란색 세모 어쩌고 하며 설명을 해도 전달이 되지 않았다. 화면에 Play Store를 찾아보시라고 했지만 그분들에게작은 영어 글씨를 찾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답답해서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앱 설치를 못하면정규직 전환이 걸린 내 KPI를 절대 달성할 수 없었다. 수십 번 표현을 바꿔가며 앱 설치를 유도해본 끝에 대부분이 쉽게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을 찾았다.
문자로 미리 저장해놓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아이콘 이미지를 보낸 다음
"보내드린 그림이랑 똑같이 생긴 그림을 찾아서 누르세요. 다음에 **를 검색하고 초록색 네모 안에 설치를 누르세요!"
어플 설치 URL을 보낸 다음
"문자에 있는 긴~ 영어 묶음을 누르시고 초록색 네모 안에 설치라는 글자를 찾아서 누르세요!"
어렵게 찾아낸 두 가지 방법으로 설치율이 크게 높아졌다. 모바일에 익숙한 내 기준에서만 생각했다면 사소한 표현 방식과 그것이 만드는 큰 변화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처음에는 이게 뭐라고 어려워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어속상하고너무 속이 터져 밖에서 바람을 쐬고 온 적도 많다. 그럼에도답답한 상황에 부딪혀가며 계속 시도해본 것만큼 잘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2. 잔머리 굴려 전략 짜기
어릴 때부터 '잔머리 좀 굴리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스타트업에서는 유난히 그러한 잔꾀를 활용해서 문제 해결의 포인트를 찾아낸 경우가 많았다.
출처 = unsplash.com
전화로 설명을 듣고 "알겠다, 이해했다" 고 말하는 분들도 막상 전화를 끊은 후에 앱 설치를 못하시는경우가 많았다. 확인 차 다시 연락을 해보면"나 아까 말해준 거 다 까먹어서 그거 설치 못했어요. 나 못하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에 내 잔꾀를 활용했다. 지금 가사도우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면 가사도우미가 나의 설명을 들으며 동시에 본인 핸드폰 화면을 볼 수 있으니 까먹을 일도 중간에 포기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자녀, 친구 등 옆에 있는 사람의 핸드폰 번호를 받아 그쪽으로 전화를 하고 혼자 있는 경우 옆에 사람이 있는 시간을 받아 적어 그 시간에 재차 전화를 걸었다.
지금 화면에 뭐가 보이세요?
나는 다른 사람 전화기에 대고 실시간으로 설명을 하고, 가사도우미는 본인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내 설명을 따라왔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원격 연결처럼 거창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그것과 흡사했고 이 방법을 다른 앱 교육 과정에도 적용했다.
앱으로 자리를 보고 직접 신청하는 일이 어려워 일을 못하겠다며 이탈하는 분들도 많았다. 여기에도 나의 잔꾀를 활용했다. 가사도우미들은 1. 집에서 가깝고 2. 역 바로 앞에 있고 3. 오전/오후 8시간짜리 일자리를 가장 선호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좋은 일자리를 미끼로 활용했다.
여사님 지금 저랑 전화 종료하고 앱 켜시면 신림동에 8시간 일자리 역 바로 앞에 있는 거 보일 거예요. 알려드린 대로 바로 아래 일자리 찾기 버튼 있으니 눌러보게요. 그거 누르시면 바로 일자리 잡을 수 있어요. 해보세요. 지금요!
기존 가사도우미들이 좋은 일자리를 선점하는 경우가 많으니 천 여개의 일자리 중에 가장 좋아할 만한 것들을 따로 빼놓고 교육 중인 분들이 스스로 그 일을 잡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앱을 사용하여 직접 좋은 일자리를 잡는 긍정적인 경험을 주고 싶었다. 단순하게 아무 일자리나 신청해보라며 독려하기보다 가고 싶은 일자리를 보여주고 직접 그 일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니 효과는 배가 되었다. 아마도 수학 100점을 맞으면 기어 자전거를 사주겠다며 나의 학습 의욕을 고취시킨 어른들로부터 배운 전략을 여기에 써먹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3.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만들기
업무를 맡은 지 2주 정도 지나자 교육 방식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직접 교육을 진행하면 90% 이상의 교육 성과를 냈지만, 아르바이트생이 진행하면 같은 교육을 해도 50% 정도의 성과가 났다. 교육을 잘할 수 있는 자잘한 방법들을 찾았지만 다른 사람들도그 방법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연결다리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주일에 수백 명씩 들어오는 신규 가사도우미 교육을 내가 도맡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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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처럼 널브러져 있던 전화 연결이 잘 되는 시간, 가사도우미들이 잘 이해하는 표현 등을 아래와 같이 한 판에 정리하고 활용 가능한 교육 사전 즉 가이드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와 다른 인턴들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교육을 진행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교육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전체적인 내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초 편 한판 정리 (출처=나)
결코 완벽하지 않았던 이 프로세스와 가이드는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의 지속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다듬어졌고 덕분에 나는 기존 6개월보다 3개월 빨리 KPI를 달성하고 정규직 딱지를 달았다.
글을 쓰다 보니 가진 재주도 없이 사업을 자동화시키겠다며 밤낮없이 고민하던 2년 전의 내가 새삼 대견하다. 당시에는 앱 교육이 안 되면 전화 문의는 계속 밀려들어올 테고, 고스란히 내가 일주일에 1,000통에 달하는 전화 응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전화 때문에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있었던 터라 더 절박하게 앱 교육에 매달렸던 것 같다.
지금 내 앞에 당시 주어졌던 문제들이 닥친다면 그때처럼 몸소 부딪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당장 망할 일은 없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 해 적응하고 있는 요즘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소홀해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정리되지 않을 것 같던 글을 힘겹게 써 내려가다 보니 주어진 모든 일에 매 순간 '내 일'이라는 마음으로 몰입하던 내가 부러워진다. 그때의 치열함을 가지고 일해보고 싶다. 어렵겠지만 이 마음만 지켜낸다면 적어도 2년 전의 나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