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Sep 27. 2019

#10.  의료 영업의 명과 암 [1]

2년 후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15년 봄. 취업난에 허덕이던 나는 한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 합격을 했다. 입사 1년 후 신입 사원의 패기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수술방에 들락거리는 영업 사원이 되었지만 2017년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당시에는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헤아리고 곱씹기 바빴다. 머무르면 도태될 것이고 떠나면 꿈과 행복이 나를 기다릴 것이라 여겼다. 불만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 같다. 퇴사 후 내가 경험한 의료기기 영업 직무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차분히 바라보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

출처 = unsplash


브런치 통계를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의료기기 영업사원',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같은 키워드 검색을 통해 방문한다. 평소에도 의료 영업을 했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의료 영업하면 돈 많이 번다고 하던데?
의사들이 진짜 심부름시키고 그래?
수술방에 진짜 들어가?


그래서 경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직접 느낀 의료 영업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의료 영업은 제약, 소모품, 장비에 따라 영업 방식이 다양하고, 회사의 인지도나 맡고 있는 제품에 따라서도 대우나 하는 일이 천차만별이다. 이 글은 메이저 의료 기기 회사에 국한된 내용일 수 있으며 의료 영업 관련 업계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재미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점 1] 돈을 꽤 많이 번다.

출처 = unsplash

나와 같은 신입 사원이 세전 6,0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우선 실적을 목표치 이상으로 달성하면 연봉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가져간다. 실적 목표가 늘 도전적인 숫자긴 하지만 '좋은 운'에 노력이 더해지면 불가능한 수준도 아니다. '좋은 운' 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서 고객에게 환영받는 제품을 담당하거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병원을 배정받는 것이 포함된다.

우선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물건을 판매하는 만큼 제품력이 좋지 않으면 의사들이 말도 섞어주지 않는다. 내 말을 듣게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니 두 배로 힘이 든다. 반대로 기술력 있는 제품을 담당하면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한다. 연락이 올 때 잘 설명하고, 잘 팔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면 매출이 따라온다. 이런 경우 고객 관리 정도만 해도 중간은 다.

다음으로 내 제품을 사줄 수 있는 병원을 배정받아야 한다. 돈 없는 고객을 만나면 같은 노력을 해도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즉 구매력이 없는 병원에 가서는 아무리 열심히 제품에 대해 설명해도, 의사나 구매팀과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도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뒤집고 물건을 팔아오는 명석하고, 성실하고, 융통성 있고, 노하우까지 겸비한 영업 사원들도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구매력이 있고, 장비의 교체 주기가 도래한' 병원들을 배정받으면 실적 달성의 절반을 성공한 것과 같다. 노트북의 교체 주기가 2년, 핸드폰의 교체 주기가 1년 반 정도인 것처럼 병원에서 사용하는 내시경이나 수술 장비에도 교체 주기라는 것이 있다. 돈 있는 고객이 닳고 닳은 장비를 새 것으로 바꾸는 타이밍을 잡으면 수 천만 원에서 억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인센티브가 현실이 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의료 기기 회사가 금전적으로 꽤 짭짤한 곳임이 확실하다.


[좋은 점 2]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출처 = unsplash

의료 영업 2년 차 정도가 되면 헤드헌터들의 컨텍이 시작된다. 영업 초짜인 나도 이따금 이직 제안을 받았다.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의료 영업 쪽에서는 어느 정도 시장과 제품을 이해하고 있는 경력직을 아주 선호한다. 의료 영업 사원의 고객은 의사들이고 그중에서도 구매 결정권을 가진 대학 교수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다. 그때마다 당연히 제품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신입을 현장에 투입하는 데에 비교적 긴 시간과 많은 돈이 요구된다. 미국 본사에서 3개월~6개월간 스파르타 교육을 시킨 후 현장에 투입하는 의료기기 회사도 있고, 담당 병원 배정 전에 선배들을 따라 한 달 동안 현장 동행만 진행하기도 한다. 나도 필드 투입 전에 밤을 새워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데 긴 시간을 보냈다. 동맥이 어디로 흐르는지, 대장암 수술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제품의 에너지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류 모드에 따라 지혈이나 손상 정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외을 때 정말 죽을 맛이었다. 물론 회사도 완벽한 문과생인 내게 해부학 기초 지식과 제품 전반에 대한 내용을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이처럼 의료기기 회사들이 필연적으로 직원 교육에 상당한 리소스를 투입하는 반면 나처럼 다 배워놓고 '이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업계를 아예 떠나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회사들은 늘 '확실하게 버텨줄' , '검증되고 노련한' 경력직을 찾는다.

당당하게 경쟁 회사로 이직하는 사람도 많고, 사원으로 퇴사해 이직을 했다가 대리 직급을 받고 되돌아온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료기기 회사에서 제약회사로, 반대로 제약회사에서 의료기기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누가 퇴사를 한다고 하면 "왜?"가 아니라 "어디로 간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올 정도니 본인의 필드에서 성과를 내고 커리어를 잘 쌓으면 외국계, 한국계 할 것 없이 수많은 선택지를 가져볼 수 있고 좋은 조건들을 따져가며 이직할 수 있다.

직급도 연봉도 업그레이드된다.



출처 = unsplash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기술 없는 문과 출신 신입 사원이 저 정도 받으면 됐지. 왜 그만둬?

이직이 잘 되면 더 좋은 회사 가면 되지. 왜 그만둬?

나 조차도 좋은 점만 꼽아서 글을 적다 보니 내가 저렇게 좋은 직장에 있었나 싶다. 저 일이 내게 맞기만 했다면 지금쯤 제품과 시장 전반에 대한 이해나 고객을 대하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직업적으로 좀 더 탄탄하게 삶의 기반을 다져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까지 남는다. 하지만 또래보다 좀 더 높은 연봉도, 이직에 대한 열린 기회도 퇴사에 대한 내 열망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높은 연봉보다 값진! 내 꿈을 실현하는 기쁨'이라는 모호하면서도 명확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의료 영업에 등지고 떠나기로 결심한 데에는 #3. 내가 의료 영업을 그만둔 이유 언급한 경험들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계기가 있었다. 이번에 의료 영업이 가진 좋은 점에 대해 정리했고 다음 편에서는 내 마음을 돌린 그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차분히 정리해볼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9. 콜영업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