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야 Sep 29. 2024

사십대 아저씨의 작은 다짐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약 절반 정도 살아온 것 같다. 앞으로 여태 살아온 날만큼 살아야 한다. 약 40여 년. 남은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설렌다. 여태 살아온 대로 살아도 되겠지만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여태 나를 돌아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최소화하고 아쉬운 이유를 알아내어 앞으로는 그 아쉬움이 최대한 없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아쉬웠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남의 잣대에서 나를 평가하며 살았다. 나와 내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남이었고 외부 기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기 바빴다. 내 삶의 명확한 색깔이 없다.


두 번째는 용기가 부족했다. 도전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돌아보면 패러다임을 뒤흔들만한 도전은 아니었다. 적당하게 살았다.




이를 보완하여 오로지 나의 잣대로 내 인생을 살아보겠다. 누군가에 의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나에 의해, 나의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그러한 삶은 어떠한 삶일까?


내가 평소 관심이 있는 것들,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마음이 끌리고 어디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지를 알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심사숙고하고 그것에 맞는 행동으로 그 가치를 내 인생에 녹여 넣는 것이다.


내 인생의 최대 관심사는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온전히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목마르다. 평생 가져가야 할 거대한 질문이다. 너무나 거대하다 보니 눈앞의 작은 것들을 놓치기 일쑤였다. 모든 것들이 중요치 않아 보였다. 내가 왜 살아가는 것인지, 온전히 내 삶을 나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도 모른 채 눈앞에 있는 것들만 쫓아가는 삶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리석었다. 내 앞의 작은 것들이 저 거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될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거대한 질문을 풀 수 있는 수많은 퍼즐들을 여태 눈앞에서 놓쳐 버리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제는 다른 삶을 선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내게 현재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이 순간 행하는 것이다. 결단과 실천의 삶이다.


그럼 왜 여태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을까?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원하는 것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이유는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다고 행동하지 않으니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더라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맛만 보았다.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결단을 내린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냥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만히 앉아 따져 묻지 않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하는 것이다. 함으로써 그에 대한 답을 체득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다. 그 원하는 것을 떠올리고 필요한 행동을 그냥 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내 마음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산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


Just Do I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