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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Feb 11. 2023

나의 가족을 그려본 적 있나요?

동적가족화라는 가족의 초상에 대하여


심리검사 중에 동적가족화(KFD)가 있다. 먼저 내담자에게 흰 종이와 HB연필, 지우개를 건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지금부터 종이에 가족 구성원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십시오.” 내담자가 그리던 와중에 어떤 질문을 하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십시오.”라고 답한다. 이 검사를 통해 내담자가 바라보고 있는 가족에 대한 모습, 성격, 인상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즉, 가족의 초상肖像을 알 수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도 이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상담 분야로 나갈 것이라 확신하지 않았을 때라 KFD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담담히 완성한 그림은 차마 ‘가족’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각의 A4용지 우측 상단 모서리 근방에 선을 굵게 하나 그려놓고, 모서리 안에 엄마를 그렸다. 엄마는 거기에 그냥 서 있었다. 그다음 좌측 하단 모서리 근방에 선을 굵게 그리고, 이번 모서리 안에는 나를 그렸다. 나도 그냥 서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움직임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는 특징도 별반 없었다. 다만 명확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은 A4용지 여백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만큼 가족 사이의 벽을 나타냈다는 점이었다.

  회상에서 빠져나와 현재의 가족을 떠올리면 그림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된다. 누군가 내게 다시 종이와 연필을 쥐여준다면, 일렬로 서 있는 가족을 그릴 것이다. 그 그림에는 아무런 벽도, 울분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느낌을 묘사한다면 체념에 가까운 평온이지 않을까?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가족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을까? 그건 아니다. 생각건대 대학교 2학년 때와 현재의 가족 관계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내가 가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기억을 꼼꼼히 잘 묻어두고 본인의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파헤쳐진 기억더미에 철퍼덕 앉은 채 그대로 잠식한다. 앞으로 걸어 나가지 못한다. 되려 하염없는 뒷걸음질을 반복할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의 성격을 띤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을 형성하게 된 것은 복잡한 요인의 결합일 테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부정성에서 헤어 나오는 것을 힘들어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같은 개수로 존재한다면, 부정적인 것에 좀 더 신경을 기울였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만이 ‘진짜’로 느껴졌다. 그런 상태로 삶에 임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을 통시적으로 본다면,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사건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도 없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앗아갈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괜찮고 안 괜찮고를 떠나서 당연하다. 그 누구도 이러한 곤경으로부터 느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덜 고통스러울 수는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 경험 등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테면 시험 성적이 예보다 떨어졌다면, ‘성적이 떨어졌다’는 객관적인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성적이 떨어져서 ‘나는 뭘 해도 안 되구나, 나는 쓰레기야!!’ 라고 자조하는 순간 정서적인 고통은 배가 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까지의 과정을 존중한다. 그렇게 본인을 비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곤경을 맞닥뜨리면 객관적인 사실로 인식하고, 비하적인 주관과는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현재 가족을 이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의 그림과 다르게, 일렬로 서 있는 체념을 띠는 초상을 그려보지 않을까 싶다. 이는 스스로가 객관적 사실을 넘어 주관을 덕지덕지 붙여 내게 정서적인 고통을 증폭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함으로써 가능해진 결과다. 앞으로도 나와 거리를 두고 감시하며, 적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 되지는 않길 바라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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