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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Jun 10. 2022

정수기랑 팬티가 같이 와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만 3살. 흔히 말하는 4살 혹은 5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즐겁다.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소재가 되고, 겪었던 모든 경험들이 이야기거리가 된다. 어른의 굳어버린 뇌로는 예상조차 하지 못 할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아이의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화에 귀여움을 더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외국사람이 익숙치 않은 발음으로 한국말을 하는 것보다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엄마, 정수기랑 팬티가 같이 와요."

"응? 정수기랑 팬티?"

"아니, 정수기랑 팬.티가 같이 온다구요."

"다시 천천히 말해줄래?"

"아이 참, 유투브에 정수기랑 팬티가 같이 나와요." 


정수기랑 팬티가 같이 오다니, 이 무슨 요상한 조합일까. 유투브에 나왔다니 그동안 아이와 함께 본 영상들을 생각해보았다. 아! 정수기와 팬티의 정체는 '전투기와 탱크'였다. 전투기와 탱크가 같이 온다고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엄마는 정수기와 팬티를 외치니, 아이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 이기고 차 어딨어요?"

"응? 이기고 차? 이기고 차가 뭐야?"

"이기고 차요! 내가 좋아하는 차" 

"아...119! 소방차?"

"네!" 


받침이 두 개가 연달아 있는 "일일구" 발음은 어렵다. 아이의 발음으로는 이기구 혹은 이기고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평소에 소방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절대 알아듣지 못 했을 낱말이다. 



"꼬꼬레 주세요, 엄마, 꼬꼬레 먹고싶어요."

"응? 꼬꼬레? 꿀꿀해? 꿀꿀이? 돼지?"

"아니요~ 꼬꼬레, 네모 꼬꼬레요! 냉장고에 있어요."

"아~ 초콜렛!" 


"엄마, 나는 멍충이야" 

"응? 아들이 왜 멍충이야? 멍충이라는 말 어디서 들었어? 누가 아들보고 멍충이래?"

"아니~ 멍충이요! 이렇게 매달려 있잖아요. 멍.충.이!"

"응? 아~ 매달려 있는 원숭이?"

"네! 멍충이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아이의 발음으로 인해 초콜렛은 꼬꼬레가 되고, 원숭이는 멍충이가 된다. 쉽진 않지만 결국에 알아들을 수는 있다.

 

아이의 말은 아이의 부모가 가장 잘 알아듣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특별해서일까? 부모가 되면 아이의 말을 잘 알아듣는 초능력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아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인해 아이의 화법을 이해하고, 아이의 취향을 알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그나마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육아를 하는 것도 인간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성인과 성인이 만나서 서로를 알고 친해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와 친해지는 데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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