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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Dec 27. 2022

아이스크림으로 느끼는 사치

이제는 알겠다.

결혼하고 한 5년쯤 되었을 때였나.

시어머님께서 끌레도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스크림보다 비싸고 더 맛있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때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행복하다는 표현을 쓰시는 시어머님께 앞으로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아이가 둘이 생긴 지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평범한 직장에서 맞벌이하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한 물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한 달 생활비는 빠듯하다. 연애시절 즐겼던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은 커녕 네일아트 같은 나를 위한 소비도 쉽지 않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 따지고 고민하게 된다. 알뜰해졌다는 좋은 표현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 와중에 다른 아이스크림보다 조. 금.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를 위한 뭔가를 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겨우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으면서 사치했다는 기분을 느낀다. 5년 차 며느리에게 툭 던지듯 본인의 삶 속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하셨던 시어머님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첫째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다. 겨우 일주일간의 방학이지만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된 둘째와 함께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시어머님이 계셔서 그나마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고, 필요할 때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사람다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어머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시는 동안 집 앞 슈퍼로 잠시 장을 보러 다녀왔다. 집에서 입고 있던 노란 원피스에 보온만을 생각한 긴 분홍 양말, 두꺼운 롱패딩을 입었다. 패션테러리스트의 일원이 되었지만 힘들게 얻은 외출을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끌레도르가 눈에 띄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던 행복한 기분이 떠올랐다. 내렸던 눈이 아직 녹지 않았고 손이 꽁꽁 얼듯 차가운 날씨지만 벤치에 앉아 끌레도르를 뜯었다. 1분 남짓의 시간 동안 진한 초콜릿아이스크림이 입을 가득 채웠다. 단 맛, 기쁘고 행복한 기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김을 느꼈다.


내가 선택해서 나은 아이들이지만 육아는 쉽지 않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수월하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의 인내도 필요하고 헌신도 필요하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겪기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하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사라짐에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참 이상하지만, 좋다.


겨우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 그 잠시를 겪으면서 행복을 논하게 되지만,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면 또 미소가 지어진다.


번외의 글)

등센서 폭발하는 생후 80일차 둘째아들님.

다리 위에 올려놓고 브런치 글을 쓰고 있었는데, 다 써가는 지금 얼굴에 힘주기 시작한다. 아… 싸는구나. 얼른 글 마무리 하고 씻어줄게. 그래도… 글 다 쓸 때쯤 싸 줘서(?)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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