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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의 숲 Nov 20. 2021

숲에서 보내는 편지 11월 호

공백의 숲 Letter

11월의 안부


안녕하세요. 공백의 숲입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던 세상이 뿌연 하늘에, 이따금씩 내리는 비에 더욱 깊은 빛으로 저물어가는 11월입니다. 창문 깊숙이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이 소중하게 느껴질 즈음, 더 두꺼운 옷을 꺼내놓고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저희는 이제껏 10번의 안부를 물으며 10통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고, 느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모든 편지를 읽으신 분들도 계시려나요. 만약 있으시다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편지를 다 읽지 않으셨어도, 단 한 개의 편지만 읽으셨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차가워진 손끝으로 11번째 안부 인사를 적으면서는 다시금 우리가 편지를 쓰기로 했던 이유를 되새겨봅니다. 저희는 편지 쓰는 걸 좋아합니다. 아니, 편지가 가진 힘을 좋아하지요. 11월의 편지는 무엇이 우리를 편지 쓰게 하는지 그 본질적인 마음을 돌아보고, 편지를 받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습니다. 


저희가 보내는 편지에는 숲의 씨앗이 담겨있어요. 저희의 씨앗을 받아본 여러분들의 마음의 숲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이번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1월의 생각


편지

1. 자그마한 뜻

2.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편지를 써와서 올해로 5번째이다. 처음에 편지를 썼던 이유는 주변 친구들이 먼저 편지를 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답장하고자 편지를 썼었다. 그다음 해엔 첫 번째 편지의 연장선으로 재미를 위해 썼었다. 세 번째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무렵엔 옆에서 항상 힘이 되어준 그들에게 고마워서 썼었다. 그리고 작년엔 어떠한 이유 때문이 아닌 그저 살아 있어 주어서, 나와 함께 계속 살아준 것이 고마워서 썼다. 아마 올해도 작년과 같은 이유로 쓸 것 같다.


1년 내내 고단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았을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걸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있어 준 것이 고맙다. 어떤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서가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안도감을 얻는지.


그러니 그들이 올해 어떤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에, 더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견디고, 살아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고 충분하다.


안녕.


잘 지내고 있어? 날이 부쩍 추워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


요샌 사람을 잘 만나지도 못하니까 안부를 묻는 일부터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점점 줄더라고. 그러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서인지 날이 추워져서인지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마음이 텅 빈 것 같이 느껴졌었어. 근데 편지에 몇 글자 안부를 묻고 나의 근황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괜찮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아마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나를 소중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고, 나의 쓸모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고부터는 내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나의 쓸모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포기하게 되더라고.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이야.


어쩌면 너 또한 나처럼 스스로의 쓸모를 묻다가 포기하고 있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어. 그래서 우린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또 우린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너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어. 우리에겐 확실히 ‘우리’가 필요해.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바라봐 주고, 서로의 쓸모를 알아주는 그런 ‘우리’ 말이야.


그 속에서 우린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되겠지. 제일 좋은 건 직접 만나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혹여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결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새 너에게도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다면 답장으로 꼭 알려줘. 난 너의 존재만으로도 꽤 힘을 얻고 있으니 나 또한 너에게 힘을 주고 싶으니 말이야.


날이 점점 더 추워지겠지만 우리 함께 겨울을 잘 지내보자.


너를 항상 응원하는 친구가


P.S.

추신에는 저희가 매달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소개합니다. 열한 번째 추신은 1879년 친동생 테오에게 쓴 고흐의 편지입니다.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 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나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2021년 11월 20일 공백의 숲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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