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시 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은경 Jun 16. 2023

1센티미터 숲

들풀들의 시간


숲 그림이 그려진 가림막과 넝쿨


1센티미터 숲

          

우리 동네엔

높이 3미터 두께 1센티미터 숲이 있지     


울창한 숲이 그려진 

가림 담장에 손을 대면   

마법처럼 문이 열릴 것 같다니까     


어, 노란 나비가 

숲 속으로 날아가네     


열린 문틈으로 살짝 보았는데 말이야

푸른 나무 아래

강아지풀이 살살살 모여들고

개망초 꽃은 점점 더 하얘지고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초록 궁전을 짓고 있었어      

    

번은경, 《창비 어린이 》2020년 겨울호, 《1센티미터 숲 》문학동네 2023



가림막에 그려진 나무와 가림막 뒤에 살고 있는 나무가 한 나무인 듯하다


이곳 파주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이맘때면 논이 쫙 펼쳐진 풍경이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파트숲으로 변신 중이다. 그래서 온통 공사장 투성이다. 공사장 둘레엔 높은 가림막이 세워지고 도로와 공사장의 경계가 나뉜다. 가림막 안은  크레인과 포클레인 각종 건설자재등이 쌓여 있다. 흙이 쌓여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풀이 자라고 들꽃들이 영토를 넗혀간다. 넝쿨들은 채 뽑히지 않는 나무에 올라가고 가림막을 타고 넘는다. 


인간들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히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해내는 식물들의 생명력이 놀랍기만 하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가람막은 철거되고 넝쿨들과 개망초들은 뽑히고 정원수들이 심어질 것이다. 하지만 빈 터만 있으면 그곳엔 어김없이 개망초들과 강아지풀들과 넝쿨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이어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