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되었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화분을 선물했고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신혼집 곳곳에는 친구와 아내의 취향이 묻어 있었습니다. 집을 꾸미는 다양한 제품들의 출처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는 인생 처음 친구의 '전자기기 애정론'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맥주캔을 비우며 로봇청소기, 인공지능 스피커, IOT 전등까지 신난 친구의 이야기에 푹 빠졌습니다.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도 전문가의 면모를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평소 사고 싶었던 태블릿 PC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친구는 브랜드 간의 장단점, 제품의 역사, 성능, 희소성까지 따져가며 나에게 맞는 제품을 추천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친구가 유난히 고상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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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점, 편집샵, 책방, 소품 가게 등 한 분야의 내공이 묻어나는 가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의 정성이 깃든 공간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습니다. 전면에 배치된 상품들과 분위기를 이루는 인테리어, 흘러나오는 노래는 한 개인의 취향에 존경심을 갖게 합니다. 순도 높은 애정의 모음은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일수록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하기 힘든 엘피판을 판매하거나 훌륭하게 선별된 북 큐레이션을 볼 때, 혹은 멋지게 조합한 옷을 입은 마네킹 앞에서 그것을 알아낸 사람들은 반가움을 표합니다. 탁월한 안목과 독특한 개성은 취향을 갖는 것이 얼마나 멋진 행위인지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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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친구의 시장조사를 도와주느라 주말 동안 여러 굿즈 샵을 방문했습니다. 성수, 망원, 홍대를 돌아다니며 특색 있는 샵들을 구경했고 그중 아주 특별한 문구점을 발견했습니다. 홍대에 위치한 그곳은 외국 고급 문구류를 취급하는 가게였습니다. 감각적으로 연출된 인테리어 속에서 특색 있는 제품들이 곳곳에 비치 되었습니다. 전면 마블링이 된 연필, 독특한 그림의 액자와 엽서, 기하학적 모습의 컴퍼스까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에 매료되어 한참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노트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손바닥 만한 것이 2만 원을 훌쩍 넘겼지만 흔쾌히 구매했습니다. 노트가 마음에 든 이유도 있지만 가게 속에서 보낸 시간에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취향을 엿보는 순간은 한 인간의 존엄을 마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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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에서 사 온 노트에 오래도록 가꿀 취향을 기록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향유할 삶의 모습을 선택하는 작업입니다. 꼭 무언가를 잘하거나 대단해 보이길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순한 반복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며 삶 깊숙한 곳에서부터 윤택해지길 바랍니다. 노트 첫 페이지에 나이가 들어서도 축구를 즐기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몸도 약해져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크니 축구를 배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선택한 대로 인생 처음 축구를 배우는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코디네이션 수업이 기다려졌고 배우는 만큼 즐거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항상 피곤했던 월요일은 어느새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날이 되었습니다. 갈고닦는 취향은 일상의 질서 속에서 삶을 이끌어 줄 운율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