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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Nov 14. 2019

여행의 가장 소중한 가치, '시간'을 서비스하는 호텔

세인트 레지스 마카오 (St. Regis Macau)

마카오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명품 호텔 브랜드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두루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급 리조트가 밀집된 마카오의 호텔 격전지, 코타이 센트럴에 위치한 세인트 레지스 마카오 역시 그 중 하나다. 세인트 레지스에 체크인하는 순간, 나의 24시간은 개인 버틀러가 1:1로 빈틈없기 관리해 준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시간'으로 정의한 이 호텔의 철학은, 객실부터 모든 부대시설과 대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묻어나 있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오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동했다면 무척 번거로웠을텐데, 짐도 옮게주고 우산도 씌워주며 빠릿하게 움직이는 세인트 레지스의 직원들은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호텔에서 보내준 픽업 차량에 탑승하자, '미스 김, 도착하면 어떤 차를 드시겠습니까?'라고 묻더니 무전으로 오더를 전달한다. 이쯤 되니 슬슬 세인트 레지스의 서비스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로비에서부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시는 지배인과 매니저들의 환대를 받으며 객실로 이동했다. 체크인 수속은 객실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버틀러 서비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일반적인 호텔 서비스는 내선 0번을 누르면 되는데, 세인트레지스에는 버틀러 전용 회선이 따로 있다.



이 버틀러 서비스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느낀 것은 패킹 앤 언패킹(Packing & Unpacking) 서비스, 그리고 무료 다림질 서비스다. 여행에서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부분이 짐을 싸고 푸는 일인데, 그 과정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고급스러운 포장지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짐을 싸준다. 또한 현관문 옆 버틀러 서랍에 하루 최대 3벌의 옷을 넣어두면, 예쁘게 다림질해서 옷장에 걸어둔다. 짐 정리나 옷 다림질 등은 버틀러에게 맡겨 두었다면, 조금 더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은 어디다 쓸까? 세인트 레지스는 욕조에 누워서 TV를 보며 푹 쉬라고 내게 속삭인다. 욕조 한 켠에 준비된 얇고 가벼운 리모콘을 누르면, 내 얼굴 밖에 보이지 않던 거울 한 복판이 갑자기 TV로 변신하니, 행복한 욕실 엔터테인먼트의 시간이 이어진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돌아와 보니, 침대 맡에는 '다림질한 옷이 옷장에 들어 있습니다'를 알리는 버틀러의 정성스런 손글씨가 남겨져 있다. 저녁 먹기 전에 구겨진 윗옷 한 벌을 버틀러 서랍장에 넣어두고 갔는데, 두 세시간만에 신속하게 다림질을 마쳐서 예쁘게 걸어 두었던 것이다. 세인트 레지스는 사실 국내에는 메리어트(구 SPG) 소속의 고급 호텔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살아있는 호텔계의 조상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토마토 맛의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처음 만들어낸 호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세인트 레지스 마카오가 특별히 선보이는 마카오 스타일의 블러디 메리를 마셔볼 차례다.



1900년대 초, 뉴욕에 문을 연 최초의 세인트 레지스에서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칵테일, 블러디 메리. 이제 멀고 먼 마카오에 건너온 이 칵테일은, 포르투갈과 마카오의 향기로운 식재료와 만나 새로운 맛으로 재탄생했다. 마카오의 거리 문양을 그대로 옮겨온 보드 위에는 마카오 버전의 블러디 메리와 보드카, 타바스코 소스, 라임, 후추와 소금, 그리고 소시지와 에그타르트가 완벽한 조합으로 놓여 있다. 마실 때는 라임과 소스, 보드카를 취향껏 더 넣으면 된다. 오후여서 차마 알코올은 넣지 않고 맛을 보았는데, 처음엔 토마토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다가 뒤늦게 올라오는 스파이스의 강렬한 향연!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블러디 메리의 신세계를 만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흑백영화같은 세인트 레지스에서의 클래식한 오후가, 꿈처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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