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뜨고 TTGO Nov 27. 2019

남는 건 사진뿐. 여행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는 법

남는 건 사진뿐이다. 흔히 하고 흔히 듣는 말이다. 오래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기록과 기억은 무엇이 다르냐고. 나는 대답했다. 기록은 숨을 쉬지 않지만, 기억은 숨을 쉬어. 우리는 기억을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기록한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한다. 사진은 기억보다 더디게 바랜다. 기억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호흡을 불어넣은 기록이다. 시선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더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첫째, 많이 찍는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일단 많이 찍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잘하려면 많이 해봐야 하고, 그러려면 익숙해져야 한다.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다. 많이 찍다 보면 사진도 늘고, 좋은 사진도 나오게 된다. 나의 오랜 습관은 일기와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어딜 가든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휴대폰은 잊어도 카메라는 챙긴다. 일상처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니, 여행 중에도 평소처럼 사진을 찍고 일상을 살면서도 여행 온 듯 셔터를 누른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 카메라를 가지고 여행한다. 얼이도 자기 카메라를 직접 가져간다. 시선에 고이는 풍광과 서로를 사진에 담는다. 요즘은 휴대폰에도 카메라가 있으니 모두에게 사진은 더 쉽고, 가까워졌다. 그러니 일단 카메라를 켠다. 그리고 찍는다.



둘째, 시간에 집중한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프레임에 가두는 일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 보면 공간에 주로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 여행은 장소를 옮겨가는 것이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유명 관광지나 눈에 띄는 장소가 나타나면 카메라를 꺼내 든다. 물론 공간을 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사진이 좀 더 풍성해진다. 새로운 장소가 아니더라도 평소에는 그냥 스쳐갔던 순간, 이를테면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나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을 담는 것이다. 음식이 차려진 식탁뿐 아니라 함께 요리하고 즐겁게 먹고 있는 순간을 찍는다. 십수 년쯤 흘러 우리가 사진첩을 뒤적일 때, 그때에도 에펠탑은 (아마) 있겠지만 침대에서 머리를 빗어주던 아이와 나는 이미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이 순간의 서로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그리워질 것을 찍는다. 흔적을 남겨두지 않으면 영영 흘러가버릴 테지만, 먼 훗날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을 순간을 말이다.



셋째, 한걸음 가까이, 한걸음 뒤에서 찍는다.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할 때, 셔터를 누르기 전 피사체에 한걸음 더 다가가라고 배웠다.

프레임 안에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피사체에 더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이 방법은 서로를 찍어줄 때에도 유효하다. 가끔은 한걸음 더 다가가 잠이 든 얼이의 속눈썹을 찍거나 남편과 아이가 붙잡고 걸어가는 손만 프레임에 가득 차게 찍어본다. 나태주 시인은 들꽃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더 말해 무얼 할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한편,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지경이 성큼 넓어진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도 함께 담아내고 싶어서. 우리는 여행 중이니까.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는 평소에 쓰던 것과 다른 렌즈를 가져갔다. 화각이 바뀌니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이전 것과 확연히 달랐다. 시각이 달라지면 많은 것이 새롭게 보인다. 여행 역시 새로운 시선을 찾아 떠나는 것이니, 사진을 찍으면서 한번 연습해본다. 한걸음 가까이, 한걸음 뒤에서.



넷째, 사진에서도 옷이 날개다.

프레임 속 면적에서 장소를 덜어내면 사람이 남는다. 인물의 표정과 포즈가 사진에 감정을 불어넣는다면, 사진에 미감을 불어넣는 것은 옷의 역할이 크다.

각 도시에는 저마다 색상이 있다. 유럽의 도시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건축물의 형태도 거리의 색채도 사람들의 차림과 도시 분위기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세월을 켜켜이 입은 조각상이나 포석도 어느 도시는 말간 상아빛이고, 다른 도시는 먹이 묻어나는 잿빛이다. 그나라의 문화와 계절과 유구한 역사에 따른 고유한 색채를 지닌다. 그 나라의 국기나 버스와 택시 색상 등 상징이 되는 포인트 컬러도 존재한다. 나는 여행할 때 그곳과 어울리는 분위기와 색감의 옷을 가져간다. 가족과 동행할 때는 일부 패턴이나 색상을 맞추는 등 조화롭게 입는 것도 그 자체로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행에서도 T.P.O(Time, Place, Occasion 시간, 장소, 상황)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종교시설에서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호텔 식당에 슬리퍼 차림으로 가지 않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거나 유행하거나 근사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가는 곳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그곳에 머물 때 사진도 한층 자연스러워진다. 물론 편안한 옷을 입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사진 속 우리의 표정이 말해줄 것이다.



다섯째, 때로는 찍는 것보다 찍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실 요즘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넘쳐나고, 예쁜 사진도 도처에서 넘실댄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각자의 감각과 매력으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수많은 사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업로드 된다. 그와 함께 사진과 관련된 뉴스도 우리에게 들려온다.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다가 작품이 파손되거나 위험한 인증숏을 찍다가 발생하는 사고도 낯설지 않다. 이제는 찍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외국이라고 해서 타인의 얼굴이나 사생활을 동의나 허락 없이 찍어서 공유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배고픈데 끊임없이 인증숏을 찍느라 한없이 기다리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카메라를 넣어두는 게 낫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사진으로 간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나중의 추억을 위해, 혹은 자랑을 위해 '지금' '여기'와 '우리'를 잃어버리지 말자.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월터가 먼 여행과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사진작가 숀은 말한다.


가끔은 사진을 찍지 않을 때도 있어.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남는 건 정말 사진뿐일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잘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저장하는 유용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프레임에 담아 보관한다. 다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지금의 우리를 그리워할 그날의 나를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모아이의 천국, 이스터섬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