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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미 Feb 10. 2020

미술에도 텍스트가 필요하다.

 재능은 차고 넘치지만 아직은 무명인 18인의 디자이너가 전 세계에서 모였다!

바로 넷플릭스에서 방송 중인 [넥스트 인 패션]이다. 진행은 퀴어 아이의 탠 프랜스와 알렉사 청이 맡았다.

출처: 넷플릭스

 

 포맷은 프로젝트 런웨이와 비슷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패션에 초점을 맞춰 옷에 더 집중하며 볼 수 있게 한다. 한국인 디자이너 민주 킴이 나와 더욱 뜨거운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다. 내가 그 방송을 보던 중 2화 '프린트와 패턴' 미션에서 인상 깊은 몇 장면이 있었다.

 

 프라발 구룽(Prabal Gurung)은 네팔계 미국인 디자이너로 이번 2화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를 잠시 소개하자면, 화려한 프린트물의 옷들을 모던하고 엣지있게 표현해내는 핫한 디자이너 중 하나이다.

Prabal Gurung Ready-to-Wear Spring 2020

그는 '프린트와 패턴' 미션 의상을 만든 참가자들의 런웨이를 바라보며 심사위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런웨이를 보던 중 민주 킴과 에인절의 의상을 이야기했다.

 전 잘 모르겠네요. 흥겹고 재미있긴 한데 그게 다인 것 같아요.

 플라워 프린트 등 화려한 프린트물로 디자인을 하는 프라발 구룽의 컬렉션과는 다른 민주 킴과 에인절의 컬렉션이 그의 눈에 유치하거나 디자이너의 패기 정도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대일로 디자이너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구룽은 웃음이 만발했다.

 민주는 한국, 에인절은 중국 국적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우정의 결혼식을 완성해내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은 프라발 구룽은 이 옷을 이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와 에인절은 2화의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민주는 우승을 하고 너무 놀라운 나머지 한국말로 "대박"이라고도 외칠 정도로 기뻐했다.) 그렇다. 패션에도 언어가 필요하다.

 

 혹자는 "작가는 작품을 만들고 나면 죽는다"라고 한다. 오로지 작품 해석의 몫은 관람자라고.

반론은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작가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면, 관람자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 작품의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관람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라지는 것이다.

 힌트도 알려주지 않은 작품은 그저 인테리어의 하나일 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여놓는 것도 얼마 전 다녀온 전시회 때문이다.

전시회 주제는 있으나,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시회 제목에 '이 oo'라는 작가명이 적혀있었지만, 작품마다 작가의 이름은 다 달랐다.

 또 카세트테이프처럼 만들어 놓은 전시 동선은 정신이 없었고, 1부터 7까지라는 숫자를 따라 전시회를 보라고 하지만, 안내 표시라던지 전시 안내원 또한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 헤매기만 했다.


 특히, 이 작품을 보던 관람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야?"

 작품명도, 작가 이름도, 몇 번째 테이프의 작품인지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작품인지, 인테리어용 소품 인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에 텍스트 하나를 찾았다. 월북 다다이즘 작가 이두현의 작품이다. 저 조그마한 하얀 종이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것이 작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작품이 어디 놓여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앞에 놓여있던 전시물이었는지, 저 위 사진의 전화기 같은 소품인지?

저 작은 텍스트는 보이지도 않는데 읽어보라고 붙여놓은 건지?

 그래서 이 전시회의 주체 작가가 이두현인가 싶었는데, 이 전시회의 주체 작가명은 이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이 전시회의 주체 작가는 누구이며, 무슨 작품을 가지고 온 것일까?


 이 전시회의 목적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구석에 비치된 안내문을 집었다.

관람객이 잘 이해할 수 없게 의문을 만든 것이 이번 전시회의 목적이라면,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관람객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관람객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떠 넘기는 것도 흥미를 유발하는데 좋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관객 참여형의 전시형태가 늘어나면서 관람객들은 작가와 소통하기를 원한다. 나 또한 그러한 것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고 작가의 의미 속에서 나의 상황을 결합해 작품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미술관에 시끄러울 정도로 텍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이미지가 말을 한다'는 의미의 도상학적 접근이다. 작가의 의미와 상징 그리고 맥락 속에서 의미를 탐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넥스트인패션]에서 민주와 에인절이 심사위원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2화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내가 다녀온 전시회에서 텍스트가 존재했다면, 내가 이 작품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작품 앞에 작가명이 쓰여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텍스트가 적혀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은 무엇을 생각하게 하나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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