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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미 Mar 07. 2024

나뭇가지에 봄이 깃드는 순간




무언가를 더 빨리 알아채는 것도 재능이라면 나는 봄의 시작을 감지하는 일에 재능이 있다. ‘이런 것도 재능이라고 인정해 주나?’ 잠깐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생각을 고쳐먹어 본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한가. 봄의 기운을 느끼는 일은 아무래도 내겐 소중한 능력이므로 재능이라 불러주고 싶다. 


무릇 재능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거저 얻게 되는 능력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유전적이고 환경적인 요소로 타고난 소질’이라는 정의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유전과 환경적 요인. 내게 있어 두 단어는 크게 다르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가 대단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랄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무언가가 없는 사람. 무언가에 무엇을 넣어도 없는 사람. 그리고 그런 날들이 반복되어 가지고 싶다는 마음마저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반면 같은 환경과 생물학적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동생은 좀 달랐다. 나와 두 살 터울이 나는 남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구체적인 재능이 많았다. 엄마는 동생을 가리켜 손이 가지 않는 아이라고 말하곤 했다. 밥을 먹이다가도 엉덩이를 토닥이기만 하면 숟가락을 쥔 채 금세 잠이 들어서, 공책과 펜만 있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엄마를 찾지 않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그렇게 수월한 아이라 엄마는 힘듦을 모르고 동생을 키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곁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사랑에 능한 아이.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동생을 나는 좋아했다.


엄마의 말만 보면 동생은 얼핏 수동적으로 보이고 얼마간 무던한 성품이긴 했다. 하지만 때때로 동생은 원하는 것을 조용히 이야기했고, 그것을 잊지 않고 결국 얻어내고야 말았다. 우리는 같은 듯 달랐으므로 나는 동생의 그런 원함에 대해, 자신이 갈구하는 것을 마침내 이루어 내는 것에 대해 늘 옅은 존경심과 신기함을 가지고 있었다. 동생은 수동적인 사람도, 무던한 성품도 아니었다. 되려 예민해 보이는 나야말로 이 세계에 순응하려 할 뿐, 동생은 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고 그래서 사무침도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무침과 별개로 나는 동생은 할 수 없는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내는 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볼 때면 늘 감탄했다. 내가 없음에 굴복하고 수용하는 타입이라면 동생은 없음을 인정하되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있음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부러웠으니까.


반 지하 집으로 이사 오던 해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 집을 임시 거주지로 여겼는데, 이사를 앞두고 엄마는 입버릇처럼 ‘길어야 일 년’이라는 말을 하며 그 집에서 사는 기간의 한계점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길어야 일 년’은 어쩌면 엄마의 희망이자 그렇게 되고자 했던 믿음에 근거한 주문 같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엄마의 믿음은 쉽게 배반당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간절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걸 아주 이른 나이에 배웠다.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임시 거주지라 생각했던 그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산 기간 중 가장 긴 날을 보낸 공간이 되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애정을 가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지만 그 또한 지나왔기 때문에 보이는 미련일지도. 


엄마와 아빠는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숨기는 일에 조금 더 능숙했을 뿐, 동생과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우리보다 그 집을 더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우리 집 문을 여는 길에는 두 가지 입구를 있었는데 주인댁이 사용하는 큰 대문과 반지하 옆으로 난 쪽문이 그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엄마와 아빠가 대문을 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대문으로 가는 게 훨씬 편리한 상황에서도 구태여 쪽문을 이용했던 건 어쩌면 부모님의 마음속에 있던 ‘내 것이 아닌 길’에 대한 인지이자 수치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에 반해 동생과 나는 어리고 무구했으므로 가끔 큰 대문을 이용하곤 했다. 처음엔 대부분 무의식적인 접근이었다. 그저 그 오가는 방향이 더 편해서 주인집 대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때때로는 어느 날에는 쪽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숨기기 위해, 우리가 반 지하에 산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 대문을 썼다. 엄마 아빠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수치심, 하지만 결국엔 같은 종류의 부끄러움이 우리 남매를 그 대문 앞에 세워두었다.


이사를 온 후 우리 남매는 한동안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나는 주로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가끔이지만 용돈을 받을 때면 이백 원짜리 콜라와 오백 원짜리 애플파이를 먹을 수 있는 시내 빵집에 가는 것으로 내가 점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를 채웠다. 

동생 역시 친구들을 집에 데려 오지 않았는데, 동생은 주로 친구들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우리 집 앞 놀이터와 보호수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이후 시간이 가면서 나는 이 반 지하 삶을 그저 수용하기로 하고 친구들을 하나 둘 집으로 데려 왔다. 친구들을 뒤에 세워두고 대문이 아닌 쪽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은 늘 긴장이 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친구들은 대문과 쪽문은 크게 괘념치 않는 듯했다. 조금은 움츠러들었을 내 어깨를 보고 애써 태연자약하게 군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적어도 당시에 친구들은 쪽문이 그런 방식으로 내게 상처를 남기지 않게 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다 얼마 전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보호수를 보러 갔던 날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보호수 아래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던 가운데 동생은 대문과 관련한, 15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의 이야기를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나 중학교 때, 첫사랑 있었잖아. 기억나나?”

“그때 그 단발머리에 눈 동그랗던 여자애?”

“걔가 가끔 우리 집에 나를 데려다줄 때가 있었거든. 나는 그때 우리 집 보여주기가 쪽팔렸단 말이야. 그래서 쪽문 말고 대문 앞에서 인사하고는 절대 뒷모습을 안 보여줬다? 주인집 대문 앞에서 서서 집으로 안 들어가고 걔가 안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지.”

“처음 듣는 얘기네.”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었으니까.”


보호수 옆으로 난 평상 곁으로 다가가며 동생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언젠가 걔가 한 번은 우리 집 앞으로 갑자기 찾아온 거야. 전화로 집 앞에 있으니 나오라고 하는데 내가 반 지하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나무에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금방 나가겠다고 하고 걔를 이 나무 아래로 보냈거든. 그때 뭔가를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래서 급하게 종이랑 연필을 들고 여기로 왔지. 그리고는 지금 이 자리에 걔를 앉혀놓고 나는 반대편에서 그 친구를 그려줬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날 걔가 앉아있던 옆모습이 생생해.”


평상에 앉아 말을 이어가는, 종이 위로 그림을 그리 행동을 모사하는 동생의 모습을 나는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았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동생의 손가락 위로 쪽문을 여는 나의 손이 겹쳐 보였다. 


시간은 흐르고 있는 걸까. 가끔은 시간이 한 방향이 아니라 거대한 원을 그리며 다시금 우리가 지나온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만 같다. 너무도 생생해서 내가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기억 속으로. 


어떤 책에서 ‘나무의 뿌리만큼 가지가 자란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지나온 날들이 뿌리이고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지라면 동생과 나의 뿌리는 부끄러움과 수치로 얽혀 있지 않을까. 때론 치유되었다고 믿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떤 상처들. 너무나 유약해서 동시에 아름다운, 그래서 너무나 밉고도 그리운 감정들은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어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생의 가지가, 그 자체가 아픔이면서 치료제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바로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의 무기력과 뿌리 깊은 결핍은 이렇게 저렇게 자라나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속에 나는 봄의 기색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겨울 속에 깃든 봄을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으므로.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다행히도 여전히 애틋하고 좋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새들이 오고 가는 것을 한가롭게 동생과 바라보며, 우리의 지난 시절이 어딘가에 여전히 살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 뿌리들 덕분에 큰 나뭇가지를 갖게 되어 기쁘다고 조용히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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