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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미 Sep 12. 2024

인정보다 안정 2

마음이 향하는 곳엔 그 사람의 시선도 머문다. 마치 마음과 눈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설계된 것처럼. 


 어린 시절 동생은 만화책을 좋아했다.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동생 곁에는 줄곧 만화책이 있었다. 동생이 몰두하는 세계를 보며 그 대상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만화 자체보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동생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내 마음의 시선이 향한 곳엔 동생의 재능, 달리 말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던 셈이다. 유년 시절 동생의 시선 끝에는 늘 그림이 있었고 나는 그런 눈을 가진 동생을 보는 게 좋았다. 


  동생과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에 만화 영화를 자주 봤다. 단골 비디오 가게에 있는, 거의 모든 만화를 빌려봤던 것 같다. 대여한 만화책과 영화 가운데는 내 취향이 아닌 것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동생의 눈이 좋았으므로 별로인 만화를 보는 시간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의 만화책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순정만화 영역을 기웃대기도 했으나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마 동생만큼 만화를 좋아하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생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처음엔 만화책에 나오는 이미지를 따라 그리거나 낙서의 정도의 그림이었으나 이후엔 직접 스토리를 만드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장소를 불문하고 종이와 펜만 있으면 동생은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렸다. 한 권 두 권. 시간이 흐르는 속도만큼 착실하게 습작 노트 또한 쌓여갔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오자 동생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부모님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정된 결말처럼 미술 학원에 등록하지 못했다. 재능이나 좋아하는 마음. 그런 것과 현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그런 말은 낭만만 가득한 철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지만 동생은 부모님에게 미술이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그 길을 갈 수 없다는 걸 짐작했다고 한다. 허락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구태여 한 번 말해보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동생은 집과 가까운 일반고에 진학했다. ‘기회’라든가 ‘열심히 해보겠다’ 같은 말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알아버린 삶.  마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애초에 없던 사람처럼 동생의 시간은 흘러갔다. 중요한 것을 잃은 삶 속에서도 동생은 친구들과 잘 지냈고 공부도 크게 뒤처지지 않고 해냈다. 하지만 이전만큼 크게 웃지 않았고 종종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했는데, 그런 무기력한 기색을 발견할 때면 내 마음에도 동생이 가진 슬픔이 얕게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을 괴롭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동생의 책장에 있던 책 한 권. 동생이 아주 어릴 때 사 둔 인체 해부도 그리기 책이었다. 그 책은 동생의 책장에 여전히 꽂혀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빤하게 놓인 책 등을 바라볼 동생의 눈을 생각할 때면 나는 쉽게 눈물이 났다. 곁에 간절히 바라는 것을 두고서도 꺼내어볼 수 없었던 현실. 그런 시절을 우리 남매는 같이 살아냈다.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에는 조금은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당시 동생의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 우연히 동생이 그린 학교 선생님들의 캐리커쳐를 보셨던 모양이다. 미술 선생님은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해 동생의 미술 학원비를 일부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어떠한 보상이나 바람도 없는, 순수한 설득이었다. 선생님이 절반을 지원한다 해도 학원비는 당시 우리 가족의 형편에서 무리가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역시 그 즈음엔 동생이 그림을 배우는 일이라는게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님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어른, 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또 다른 눈 덕분에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기회가 다시금 찾아온 순간. 아마도 동생은 ‘확실한 인정’이 주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누구보다 체감하지 않았을까. 


  기회와 열린 결말을 안고서 동생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남들보다 늦었기 때문에 두 배, 혹은 세 배로 치열한 태도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1년 후 동생은 지원한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수석 입학을 확인하던 날. 동생이 내게 처음 건넨 말을 기억한다.  


“누나야, 나 4년 동안 등록금 안내도 된다.”


  인정보다 동생을 안심하게 했던 건 ‘등록금 면제’라는, 작게 쓰인 부연 설명이라는 게 가슴 아팠지만 나 역시 그 점에 안도했다. 적어도 4년은 동생의 학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내가 조금 더 애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십 오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어떤 인정보다 강력한 안정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이거, 상금이 이천만 원짜리다.”

“상금 타서 뭐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건 모르겠고. 빚 갚아야지.”


동생에게 내가 모르는 빚이 있었다. 동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중요한 사실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모르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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