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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pr 04. 2024

부활절 아침

사실 어젯밤까지 오늘 부활 미사를 가지 말까 싶었다. 주말이 많이 바빠진 와중에도 기를 쓰고 발길이 닿는 곳에 있는 여기저기 성당에서 미사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좀 량 맞다랄까, 뭘 이렇게까지 아득바득 다 챙기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진 것에는 판공으로 봤던 고해에서의 신부님 훈화말씀도 한몫했고. 아마 그 신부님은 지극히 T 셨던 걸로. 난 지극히 F인 INFJ이다.


오늘 스케줄이 빽빽한지라 아침에 미사를 갔다 와야 미사참례가 가능한 데도 아침까지 미사에 갈지 말지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내게, 내가 좋아하는 신부님들과 지인들의 부활축하 메시지가 카톡으로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으로 부활축하 메시지를 받고 그들에게 부활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성당에 향했다.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이 그러셨다. 고단한 사순을 보내고 부활을 맞이하신 여러분, 부활 축하한다고.


마음이 참 고단한 사순을 보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단함은 삶에서 얼마나 흔한 일인지. 내년에도 사순은 돌아오고 부활은 다시 찾아오겠지. 고단함은 늘 삶에서 맴돌고 있고 그 고단함을 견뎌야 빛을 얻을 수 있다.



사는 것도, 신앙을 지키는 것에도 덤덤하게, 어려움과 마음의 팍팍함을 받아들이고 곧 다가올 빛을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인가가 내 삶과 신앙의 길을 흔들고 어지럽혀도 내 마음속의 지도를 손에 꼭 쥐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부끄럽게도 내 마음은 이번 사순동안 제법 흔들렸다.



제대 위, 황금색의 예쁜 초

그리고 성당 안뜰의 벚꽃.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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