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젯밤까지 오늘 부활 미사를 가지 말까 싶었다. 주말이 많이 바빠진 와중에도 기를 쓰고 발길이 닿는 곳에 있는 여기저기 성당에서 미사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좀 처량 맞다랄까, 뭘 이렇게까지 아득바득 다 챙기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진 것에는 판공으로 봤던 고해에서의 신부님 훈화말씀도 한몫했고. 아마 그 신부님은 지극히 T 셨던 걸로. 난 지극히 F인 INFJ이다.
오늘 스케줄이 빽빽한지라 아침에 미사를 갔다 와야 미사참례가 가능한 데도 아침까지 미사에 갈지 말지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내게, 내가 좋아하는 신부님들과 지인들의 부활축하 메시지가 카톡으로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으로 부활축하 메시지를 받고 그들에게 부활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성당에 향했다.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이 그러셨다. 고단한 사순을 보내고 부활을 맞이하신 여러분, 부활 축하한다고.
마음이 참 고단한 사순을 보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단함은 삶에서 얼마나 흔한 일인지. 내년에도 사순은 돌아오고 부활은 다시 찾아오겠지. 고단함은 늘 삶에서 맴돌고 있고 그 고단함을 견뎌야 빛을 얻을 수 있다.
사는 것도, 신앙을 지키는 것에도 덤덤하게, 어려움과 마음의 팍팍함을 받아들이고 곧 다가올 빛을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인가가 내 삶과 신앙의 길을 흔들고 어지럽혀도 내 마음속의 지도를 손에 꼭 쥐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부끄럽게도 내 마음은 이번 사순동안 제법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