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우리집에는 미싱이 있었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내가 우리 빵순이 계란과자 사주려고 바느질을 했다.” 좀 억울하다. 나는 계란과자를 먹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창고를 털어 봐도 계란과자의 맛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계란과자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계란과자를 맛이 아니라 나의 간식거리를 위한 할머니의 노동으로 기억한다.
우리집에 있던 미싱은 어디로 갔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이 팔리고 나는 청주의 하숙집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가시면서 집 세간은 뿔뿔이 흩어졌다. 검은빛이 맨질맨질하게 빛나던 싱어 Singer 사의 재봉틀이었다. 재봉틀은 풍금처럼 발로 구르는 패달이 있었다. 묵직한 주물로 꼬불거리는 문양이 새겨져 있던 패달 위에 발을 놓으면 서늘한 느낌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패달을 앞뒤로 굴려야 바늘이 움직였다. 할머니의 오른손이 미싱 오른편의 돌림바퀴를 돌리면 그것이 신호인양 할머니의 왼발이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 때 바늘이 움직이면 어느새 할머니의 오른손이 잽싸게 왼손이 잡고 있던 천을 같이 잡고 천을 미싱 뒤로 밀어냈다.
재봉틀 바늘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속도는 패달 위의 발놀림이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놀림이 빠르면 바늘이 더 빨리 위아래로 움직였다. 바늘을 멈추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오른손이 미싱의 돌림바퀴 위에 손을 얹어서 바퀴에 전달되는 패달의 동력을 차단했다.
내가 미싱 판 아래 북실을 교체할 수 알게 되었을 때 정작 할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계란과자로 달랠 수 없을 만큼 커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거리도 줄었거니와 무엇보다 눈이 침침해지셨다고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당신의 한복은 손수 만들어 입으셨다. 할머니의 외출복 즉 정장은 줄곧 한복이었다. 두루마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여름에는 얇은 천의 여름한복, 한겨울 코트 속에도 늘 한복을 입으셨다. 교회가는 날, 경조사로 외출하는 날, 나의 졸업식 날에도 할머니는 늘 한복을 입으셨다.
물론 나의 한복도 할머니의 핸드메이드 작품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입었단 색동저고리며 운동회 때 단체 부채춤을 위한 한복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깔깔이 천의 시장표 한복을 입고 싶었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한복은 친구들 것과 색깔도 다르고 천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한복을 만드신다고 재단해 놓은 천조각으로 내가 바비인형 옷을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다락방에 있던 조각나 천을 버리는 천으로 알았던 것이다. 크게 혼나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나를 꾸짖지 않으셨다. 봄여름 간절기용으로 장만해 놓으셨던 것이다. 노란색을 띄는 크림색 바탕에 검정색과 브라운색의 네모무늬가 기하학적으로 찍혀있던 천이었는데.....
한복은 관리가 필요한 옷이다. 옛날에는 한복을 빨려면 바느질 했던 옷을 모두 뜯어서 빨고 다시 바느질을 했다고 하셨다. 세상에나. 그래도 이제는 동정만 떼고 세탁한 후 다시 동정만 새로 달면 되니 얼마나 편해졌나고 하시는 게다. 동정달기. 그 일을 어느 날부터 내가 하고 있었다. 손끝이 여문 편은 아니었지만 눈도 밝고 손도 작았던 나는 몇 번의 연습 후에 곧잘 동정을 달았다.
요즘 사극에 나오는 한복의 동정은 여자 배우의 한복에 달려있는 것도 폭이 넓어 보인다. 내가 달았던 동정은 폭이 1센티미터 정도 밖에 안 되었었다. 한복도 유행이 심하다니 그땐 그랬고 지금은 그런가보다. 동정달기는 완성되었을 때 앞섶의 뾰족한 선과 여미면서 들어가는 안섶의 동정 선이 딱 맞아 일직선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입었을 때까지의 품을 생각하면서 동정의 위치를 잡는 것이 제일 중요했었다. 요즘은 동정을 어긋나게 달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동정을 겉에서 봤을 때 바느질 흔적이 남지 않게 바느질 땀을 뜨는 것이었다. 동정은 하얀 종이로 심지를 삼고 얇은 나일론 천으로 감싸여 있었다. 바느질은 나일론 천을 잡아 꼬매는 것인데 천이 미끌거리기도 하고 실들이 잘 뜯겨져 나가기도 했었다. 빳빳하고 하얀 동정이 제대로 각 잡힌 듯 잘 달리면 한복은 새로 만든 것처럼 테가 났다.
내친김에 계란과자를 사서 먹어 봤다. 버터링 쿠기의 맛이 되다만 듯 심심한 맛이다. 아기용이라서 건강한 맛인가? 계란과자를 먹으며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먹었던 과자들이 뭐가 있었나 다시 기억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샤브레, 맛동산, 빠다코코넛, 웨하스. 두 분이 좋아하셨다. 내가 이제는 나를 키우셨을 때의 할머니 나이가 되어버렸는데 여전히 같은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이 든 탓이다. 흠. 역시 샤브레가 최고다.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