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랙산드로와 디오게네스 일화. 너무 유명해서 너희들도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 세계를 정복한 알랙산드로가 금욕주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는 백성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 통치 철학을 바로 세워야 했으니 이름난 철학자를 옆에 두고 싶었던게지. 원래 고민 많은 권력자들은 옆에는 쓸만한 브레인이 있어야 하는 건 만고의 진리잖아.
그런데 역사에 오래 남은 철학자들 중에 물욕이 별로 없는 사람이 더러 있더라.
속세의 영화를 다 버리고 고행을 통해 진리를 깨우친 석가와, 마귀의 유혹이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희생한 예수는 말해 무엇할까. 이들은 신의 경지에 오른 성인들이라 친다고 하더라도 마치 고행을 즐기듯 가난하게 산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디오게네스는 알랙산더가 제공하겠다는 부귀영화보다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한줄기 햇빛을 더 원했다지?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을 넘어 오래 회자되는 역사 속 주인공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겠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디오게네스가 고향에서 쫓겨나 아테네로 가서 안니 스테네스라는 금욕주의 철학자의 제자가 된 이유다. 디오게네스는 사실, 위조 화폐를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고향에서 쫓겨났다더구나. 디오게네스가 금욕주의 철학자가 된 이유는 이솝우화 속 여우와 신포도를 연상케 하지 않니? 위조지폐를 만들 만큼 돈을 원했지만 자신의 좌절된 욕망 앞에서 ‘돈 그까짓 것 차라리 없는 삶이 더 낫지.’ 하며 합리화해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가끔 그가 오른 경지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으니까.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불안해하면서도 돈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 같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 딱히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비난하기도 하고, 그들의 도덕성에 대해서 지레짐작하며 비웃기도 했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건 분명 분명 돈을 천시하는 척, 배고프지 않은 척, 냉수 마시고 점잖게 이 쑤시는 선비사상에서 비롯된 마조히즘이거나 나는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니 미리 포기해버리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 참으로 아니러니 하게도 돈에 초연 한 척하면 할수록 돈의 노예가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점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어노는 유토피아가 아닌지라, 어정쩡하게 선비 흉내를 내며 돈을 떼어놓고는 결코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더라. 그걸 이제와 깨닫는 게 참으로 한심 하지만 어쩌겠니. 디오게네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와서 너희들에게 미안한 것 중 하나는 진즉에 너희들에게 돈 공부를 시키지 못한 것이다. 내가 몰라서 더 그랬겠지만 너희들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단지 교육받지 못한 죄 밖에 없다.
부디 이제라도 돈 공부를 하거라. 우선, 금리공부를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가진 돈만으로 물건을 살 수 없다는 것, 하다못해 신용카드를 쓰는 것부터 평생 벌어도 내 돈만으로 집을 사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요즘 세상에 목돈을 들고 가 가재도구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누구나 은행이라는 돈 장사와 현명하게 거래를 해야 한다는 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언제 어떻게 돈을 빌려야 유리할 것인지 잘 살피려면 금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겠더구나. 세상 물정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다음으로 환율 공부는 필수로 해야 한다. 우리 가족처럼 미국, 캐나다, 영국, 한국에 찔끔찔끔 돈을 조금씩 가지고 있을 때 환율이 가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겠지만 사실, 진짜 부자들은 주식거래보다 환율 변동에 더 예민하다는 걸 알기 바란다. 옛날 옛적, 지하경제를 쥐락펴락하던 검은손들이 지하 금고에 미화를 쌓아두고 있다는 말이 전설처럼 회자될 때, 나는 왜 그들이 미화를 금과 같은 가치로 여기는지 몰랐었다. 하지만 이제 알듯도 하다.
미국의 돈은 세상 모든 돈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 화폐이며, 미국이 망해 없어지지 않는 이상, 미화의 가치는 미국 인들이 맘대로 정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래서 너희는 세계 경제를 보려면 미국의 정치 경제를 주시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환율공부를 해야 한단다.
부동산. 참. 상처가 많은 단어구나. 살집이 갖는 가치를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아파트를 집으로 여기지 못했다. 그저 잠시 머물다 여가를 즐길 나이가 되면 작든 크든 나 혼자만 누릴 수 있는 내 땅 위에 ‘집’에서 하늘을 보며 살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아파트에 대한 욕심이 없었단다. 돌이켜 보면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실상 한국에서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재산이었는데 외국을 오가며 그 감각을 놓치고 말았구나. 나는 여전히 아파트보다 땅의 가치에 끌리지만 그건 그냥 내가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서 생긴 가치관의 오류였더구나. 너희들은 너희가 사는 곳, 앞으로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길 바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의 가치는 그렇게 결정되더구나. 그리고 의외로 심리적 요인에 의해 집값이 오르고 내린다는 점도 잊지 말아라.
물론 나는 아직도 남들이 살고 싶은 그곳이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닌 게 문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는 미련함, 남들과 욕구가 달라 생기는 문제를 끝내 바로잡지 못할 것 같구나.
주식과 가상화폐는 솔직히 나를 더 헷갈리게 한다. 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IMF 금융 위기를 맞았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바닥을 친 주식을 사서 갑자기 돈을 벌었다가 또 금세 빈털터리가 되고 빚까지 떠안는 꼴을 목격하면서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당시 주식으로 잃은 돈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인생의 무너져 복구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사람도 있고 아직도 그 고통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믿을까? 나는 가끔 혼자 구시렁거린다." 아냐, 아냐. 나는 주식은 안 할 거야" 그러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고개를 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솥뚜껑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예전에 커다란 자라를 보고 크게 놀란 탓이란다.
가상화폐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만도 나는 시간이 오래 걸렸더랬다. 사실 지금도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십여 년 전, 너희 아빠가 나에게 가상화폐라는 게 나왔는데 그걸로 커피를 사 마실수 있다는 말을 했단다. 그래서 내가 그냥 돈으로 커피를 사면 되는걸 왜 그런 복잡하고 이상한 걸로 커피를 사느냐고 그랬지. 그런데 그랬던 가상화폐가 하나에 몇천만 원씩이나 한다지? 내가 도대체 뭘 놓친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단다. 그럼에도 세상은 내가 모르는 곳으로 자꾸 흘러가고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그나마 뒤라도 따를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자식에게 살면서 부디 요행을 바라지 말고 성실하게 일해서 기반을 다지고 차곡차곡 삶을 쌓아 올리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해야 모범적인 부모가 아닐까. 그런데 혼돈의 시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시대에 나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성실하게만 살라고 말할 수 없구나.
아무리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해도 지식과 경험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더라. 그래서 항상, 투자를 할 때는 올인하지 말고, 모두 잃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남겨두어라. 그리고 나처럼 미련하고 무식하게 정석만 따르지 말고 복권을 사는 것처럼 주식도 사고 가상화폐에도 관심을 가져 보거라.
경제는 불확실성이 가장 큰 매력이더라. 부디 엄마가 알려주지 못한 재테크 지식을 이제라도 충실히 공부해서 돈을 따르기보다 돈을 몰고 다니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하더라. 맞는 말씀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알랙산드로스가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는데 실패했다면 금욕주의 철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디오게네스가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세상을 호령했다면 햇빛 한줄기가 그토록 간절했을까?